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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미국 대선 엿보기-7...극우야 또 바람 일으킬래?

김영석 칼럼 | 기사입력 2020/01/24 [14:30]

2020 미국 대선 엿보기-7...극우야 또 바람 일으킬래?

김영석 칼럼 | 입력 : 2020/01/24 [14:30]


▲ 극우주의자들의 망동의 현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Radicalism 즉 급진주의는 좌파사상을 일컫는 대명사처럼 쓰였다. 그런데 1990 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이슬람 극단주의와 함께 세계 정치사의 키워드의 하나로 극우파 급진주의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소련연방이 붕괴되었던 그 다음 해인 1992년, 스탠퍼드대학 교수이며 관변 정치경제학자이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신의 논문을 통해 좌파의 역사가 종말을 고했다는 도발적인 선언을 마치 국무부 대변인처럼 읊어댔다. 자유세계가 승리에 도취되어 축제의 밤에서 깨어나지 못하던 그 시각에 지구촌 곳곳에서는 다종 다양한 형태의 극우주의 세력이 우후죽순처럼 발호하였고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끝 모를 증오와 대결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1992년 단행본으로 출간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논문, 역사의 종언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에서 그는1989년 냉전이 종식되는 순간을 역사의 종말이라고 주장하였다. "역사의 종언"이란 민주주의와 자유경제가 승리함으로써 사회제도의 발전이 종결되어 사회의 평화와 자유와 안정이 계속 유지된다는 주장이다. 후쿠야마는 1989년 냉전이 종식되는 순간을 역사의 종말이라고 하였다. 그 근거로 이념적으로 헤겔이 말한 인간의 욕구에 대해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성이 보장될 때 충족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이를 가능케 하는 정치제도가 바로 민주주의 정치제도라고 보았고 이를 궁극적이고도 역사적으로 최종적인 정치 체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적인 관점에서 냉전이라는 기간 동안 민주주의 체제는 파시즘과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많은 투쟁을 거치면서 승리를 거머쥔 만큼 더 이상 민주주의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이념과 철학 체계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역사가 종말에 도달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후쿠야마가 말한 역사의 종말은 갈등이나 소규모의 전쟁과 같은 것들까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의 발전을 가져올 만한 투쟁이 더 이상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역사의 종말 이후 시대인 민주주의 시대는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를 다 충족시키면서도 더 이상 정신적인 욕구마저 없는 인간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물질적인 욕구에 만족하면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투쟁을 더 이상 하려 하지 않고 포기해버리게 되는 상태에 이를 것임을 니체의 개념을 빌려 마지막 인간이라고 하였다. 냉전 종식 이후의 세계를 보면 인간은 세계 공동 시장화를 통해서 경제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 있으며, 동시에 민주주의 체제가 보편적이고 가장 정당한 정치 체제로 사실상 인정되고 있다. 인간은 심리적, 정신적인 원초적 욕구가 만족되는 세계에 도달하였으며 역사는 그 절정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냉전의 종식과 함께 역사의 종말 선언을 한 것이다. -출처:위키피디아


극우의 지성 후쿠야마 교수

유럽과 중남미에서는 파시즘의 몰락으로 한동안 숨죽이고 있던 극우주의 세력이 다양한 형태로 되살아나고 있다. 정치 세력화한 극우주의 세력은 보수적 정권마저도 위협하며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극우주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망동(폭력과 폭언)은 기본이고 음해와 모략, 암약과 배신 그리고 살인까지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치안이 극도로 악화된 중미와 남미에서는 주요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극우파가 저지르는 만행으로 파행의 과정을 겪는다. 폭력이 일상화된 콜롬비아와 브라질에서 조차 극우정권이 들어서는 과정은 파행의 연속이었다. 구동구권이던 동유럽에서는 신나치주의 사상이 세균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던 우크라이나에서는 과거 나치즘이 주장하던 백인우월주의를 선전하는 극우단체의 광적인 거리 행사로 해마다 몸살을 앓고 있다.


극우파가 저지르는 폭력과 테로의 목적은 사회 구성원간의 반목을 조성하고 편 가르기를 위함이다. 이들의 목표는 분명하다. 정권을 잡고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작은 나라부터 집어삼키는 극우주의의 영향력이 점점 큰 나라로 확산되는 모양새가 매우 위협적이다. 조만간 북아메리카 대륙까지 집어삼킬 듯이 덤벼들고 있다. 미국이라고해서 극우주의 광풍이 피해 가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언제라도 휩쓸려 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정치는 균형과 안정을 이상적 가치로 여겼다. 타협과 협조의 기술을 바탕으로 공생의 정치구조가 실현된다. 미국인 스스로도 미국의 정치제도를 가리키며 인류 역사상 가장 발전된 민주주의 제도라며 자평한다. 그러나 경제적 불평등과 계층 간의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정치제도의 기반이며 나라의 근간인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 지역 간의 불균형이 그 주요 원인이다. 미국식 민주주의 제도의 위기를 보여주는 징표로서 시민의식의 상실을 거론한다. 수준 높은 시민의식은 사회를 운전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단단하던 중산층이 해체되면서 시민의식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 빈자리가 대립과 반목의 정서로 채워지고 있다. 대립과 반목은 극우주의 세력이 창궐하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극우주의 세력이 정치권의 중심이 되는 세상, 차별과 폭력이 일상화되는 세상을 그 누구도 바라지 않겠지만 미국의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파가 몰고왔던 바람은 토네이도처럼 강력했다. 2012년 이후부터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호황을 누리고 있는 미국에서 극우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 아이러니하겠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필연적인 결과였다. 미국 역사상 계층간의 소득 불균형이 이렇게까지 크게 벌어진 적이 있었던가…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속도로 계층 간, 지역 간의 소득격차가 나날이 벌어지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와는 달리 농촌과 지방의 극빈화 현상은 극우주의자 증가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회적 갈등의 파고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미국 사회가 계층 간 지역 간의 불균형으로 분열의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2018년에 <퓨 리서치>에서 작성한 여론조사 자료에 따르면 10명중 6명(63%)의 성인이 경제적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경제적 여건(소득과 문화적 수준)에 만족한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33%에 불과했다. 본 여론조사의 핵심적 내용은 당적 또는 당 지지 성향에 따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층은 경제적 불균형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관점이 보수적이었다. 빈부의 차이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을 개인의 능력과 게으름에서 찾는다. 지극히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한 것이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현행 경제시스템이나 정치 시스템 특히 사회안전보장제도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성을 보인다. 그러나 2008년 대불황 이후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계층 간, 직업군 간의 소득의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지면서 불평등의 문제를 경제 외적인 요소에서 찾으려는 경향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퓨 리서치>에서 동일한 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했던 2014년에는 경제시스템의 불균형을 호소하는 공화당 지지층은 45% 였으나 불과 4년이 지난 2018년도 조사에서는 57%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에서 뿐만 아니라 정파와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계층에서 경제적 불균형을 심각한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경제적 문제가 사회적 문제인 소외와 차별로 전이된 것이다.


https://www.pewresearch.org/fact-tank/2018/10/04/partisans-are-divided-over-the-fairness-of-the-u-s-economy-and-why-people-are-rich-or-poor/


2014년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의 최측근으로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스티브 배논>은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을 대표하는 극우주의논객이다. <스티브 배논>의 등장이 그저 우연이었을까? 원래 그의 직업은 헐리웃에서 인정받던 프로듀서였다. 엔터테인 사업과 정치는 원래 닮은 꼴이다. 대중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데 이골이 난 그의 재주는 워싱턴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특히 대선과 같은 빅이벤트에서 경험이 풍부한 프로듀서는 종종 결정적 역할을 하곤 한다. 정치초년생 트럼프에게 <스티브 배논>은 도깨비방망이 같은 존재였다. 이전까지 워싱턴 정가는 명문가 출신의 점잖은 인물이거나, 전문 지식을 두루 갖춘 학자나 전문 관료 출신의 정치가들이 드나드는 성역과 같은 곳이다. 시정잡배나 ‘잡놈' 출신이 기웃거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성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여론에 밀려 쫓겨난다. 아무리 천하제일 한량 <트럼프>라도 할지라도 ‘잡놈'에 불과했다. 그러나 <스티브 배논>의 관점에서 보면 워싱턴 정가는 어릿광대들이 뛰노는 장터에 불과했다. 금수저 출신의 트럼프를 거칠고 투박한 대중정치인으로 포장하여 등장시키자 대중은 환호했으나 워싱턴의 정계는 잠시 계산기 앞에서 추춤거렸다. 트럼프를 받아들이려면 워싱턴 정가를 지배하던 기존의 질서와 공식을 잠시나마 허물어야 한다. 트럼프를 외면하게되면 대중으로 부톤 날아오는 비판의 화살을 맞아야 했다. 2014년 대선 당시 최고의 스타는 <버니 샌더스> 였다. 좌파후보에게로 쏠려가는 민심의 바람을 다시 보수쪽으로 향하게 하려는 워싱턴 정가의 의도대로 트럼프 카드가 선택되었다. 그러나 극우파 집권 시나리오에는 포퓰리즘이라는 도구가 있었다. 고차원적이던 정치적 담론은 사라지고 선동과 구호만 난무했다. 이전까지 미국 정치에서는 볼 수없던 후진국형 선거가 되버렸다. 기성 정치권은 탄식과 비판으로 일관 했지만 대중은 현실을 직시했다. 절반의 대중은 버니샌더스가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랬고 절반의 대중은 축제를 즐기듯 환호했다. 스티브 배논의 역할을 평가할 때 종종 등장하는 수식어가 “정치를 인민의 눈높이에 맞췄다.” 는 것이다. 원래 시민의 것인 정치를 시민의 몫으로 다시 되돌리려는 배논의 노력에 진정성을 느낄 정도였다. 그의 각본과 연출에 따라 대선의 전과정은 치밀하게 구성된 영화처럼 트럼프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스티브 배논>의 특기는 언론을 통한 선동과 여론 조작이다. 기성 언론에는 극우주의 이미지를 풍기는 트럼프 후보에게 할애할 지면이 처음부터 없었다. <배논>이 집중한 곳은 비록 소수지만 정예화된 극우언론매체와 트위터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적극 활용하여 여론의 반응에 순발력있게 대응한 것이 주효했다. 주요 언론으로 부터 외면받는 불리한 조건을 스스로 극복하면서 정치를 장외로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가 지배적 지분을 소유한 Breitbart News (Breitbart.com)를 최전방에 배치하여 기성 언론과의 전투를 벌였다. 강경보수파의 결집체인 <티파티> 와도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스티브 배논>이 전략적으로 집중했던 여론 작업의 성과로 극우주의나 극우파에 대한 일반인의 선입관을 개선시키는 효과도 나타났다. 극우파 역시 통치철학이 있고 국정운영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대중에 각인시켰다.


극우주의 세력의 좌충우돌식 선거운동의 최종 목표는 범보수층의 새판 짜기였다. 그 결과 극우주의의 거센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보수층이 마지못해 합류하는 형국으로 범보수층은 속속 결집했다. 선거 막판까지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하던 공화당 지도부에서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분위기에 이끌려 트럼프 후보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선거 이후 분석된 평가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던져준 백인 유권자의 절반이 극우주의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거구도는 극우 대 보수의 대결이었다. 국우주의자의 맹목적인 트럼프 사랑 말고도 보수적 유권자는 애국주의에 몰두한 선거였다. 힐러리의 이메일 계정 논란과 그것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정보기관이 개입했는지 의혹을 제기한 소위 러시아 스캔들의 실체도 그 근본에는 애국주의 코드가 깔려있다.

https://www.wsj.com/articles/american-patriotism-is-worth-fighting-for-11571413398


American Patriotism Is Worth Fighting For

In the U.S., love of country involves dedication to the ideals of liberty and equality—a demanding legacy that we can’t afford to lose.

www.wsj.com

최근의 선거에서 보수적 정서의 평범한 미국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왜 극우주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일까? 크고 작은 선거에서는 모든 후보가 당적에 상관없이 애국주의를 호소하며 표심을 자신에게 끌어들이려고 한다. 민족주의 정서가 없는 미국인에게 애국주의는 팍스 아메리카니즘의 실현을 말한다.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므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고전적 의미의 제국주의적 사상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트럼프식 표현이 아메리카 우선주의다. 팍스 아메리카니즘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극우주의 사상이 미국을 지배해야 한다. 그 사상을 실천하는 극우주의 정권이 들어서야 무력침공과 정권 전복, 약탈과 폭거 등 제국주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평화공존은 외교적 문구에 지나지 않으므로 국가 간의 전쟁을 일으킨다 해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

극우주의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탄생한 트럼프 정권이지만 그 누구도 극우파 정권이 출범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본질적으로 20세기 이후 미국에 세워졌던 모든 정권이 극우주의를 바탕한 것이지만 그 누구도 극우주의 정권이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만약 2020년 선거에서도 성공하여 제2 기 트럼프 정권으로 이어진다면 시대를 구분하는 이정표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그 어느 시기에도 트럼프 정권만큼 극우주의적 색채를 노골적 드러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020년 대선에서도 또다시 극우의 광풍이 몰아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객관적인 자료가 극우 바람은 이미 잦아들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극우파 유권자의 숫자가 줄어든 것도 아니지만 지난 대선과는 다르게 보다 성숙하고, 주인다운 입장에서 행동하고 작전을 구사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무엇보다도 객관적으로 꾸려진 환경이 극우분자들의 준동을 억제시킬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절반에 가까운 미국인이 백인 우월주의자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복수의 여론 조사 기관에서는 백인우월주의와 극우파와 관련된 내용을 가지고 심심치 않게 여론조사를 행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 조사 결과를 예로 들자면, 응답자의 49% 가 극우주의 망동을 ‘매우 위험한' 문제로 받아들인다고 대답했고, 19%의 응답자가 ‘위험한 수준'으로 인식한다고 대답했다. 반면에 대수롭지 않다거나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25%에 불과했다. https://today.yougov.com/topics/politics/articles-reports/2019/08/15/white-supremacy-trump-fox-ne

미국인의 의식구조 변화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도 극우주의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2014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비롯한 모든 후보가 애국주의에 호소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단단하던 미국인의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다. 갤럽은 미국인의 애국심을 추적하는 조사를 해마다 해오고 있다.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애국심은 9.11 테로 사건 직후인 2003년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70%의 응답자가 미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 이후 이 수치는 끊임없이 하락하여 2019년에는 45%로 떨어졌다. 본 조사를 처음 실시한 2001년(55%)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다. 2014년 대선 당시에도 애국심 지수는 55% 였다. 2019년에 실시한 동일한 조사에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있었다. 2019년 6월에 실시된 조사에서 현 정치 시스템에 자부심을 묻는 질문에 68%의 응답자가 ‘NO’라고 대답했다. 현 정치권과 정치문화에 대한 냉소적 정서가 넓게 퍼져가고 있다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https://news.gallup.com/poll/259841/american-pride-hits-new-low-few-proud-political-system.aspx

극우주의 바람으로 당선된 트럼프 정권을 민주당 지지자를 포함한 절반의 유권자가 인정하지 않는다. 선동과 조작으로 이루어낸 반쪽짜리 정권이라 정통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국론이 둘로 쪼개졌다는 내외의 비판은 평론가의 수식어가 결코 아니다. 반쪽짜리 정권이라는 비판은 감수하더라도, 추락하는 국가적 위신을 멈춰 세울 방법은 없어 보인다. 외교에서 날마다 낙제 점수를 받아오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2020년 대선에서 극우의 바람을 다시 보게 될까?

탄핵으로 몰리거나, 지지도가 급락하거나, 공화당 내부에서 조차 하야를 종용한다면 극우주의 바람을 일으켜 위기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을까? 추측하건대 그럴 일은 전혀 없어 보인다. 여론은 이미 지난 3년 동안의 숱한 경험을 통해 극우주의의 바람을 허용하지 않을 태세다. 바람을 일으켜 당선된 대통령이 얼마나 허황되고 실속이 없는 것인지는 교훈으로 남겨졌다.

극우주의의 선동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공화당이 더 잘 알고 있다. 설상가상 다시 바람을 일으켜 재선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후과는 고스란히 당이 떠안게 된다. 당 정체성에 혼란이 가중되고 자칫 지지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 또한 세대 간의 갈등을 떠앉게된다. 2022년의 중간 선거는 진작에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위기를 자초는데 굳이 극우파와 손잡고 바람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극우주의 바람을 원치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존심과 승부욕이 강한 성격의 소유자다. 재선에 도전하는 유리한 입장에서 이번만큼은 정정당당히 정책과 실력으로 맞붙어보고 싶을 것이다. 스티브 배 논을 내친 것처럼 이제는 성가신 존재인 극우파와는 거리를 두고 싶어 하지 않을까...

<김영석:재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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