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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파업에 사망선고·사망진단서 등 불법의료 떠맡는 간호사들" 간호사가 '의사당직'까지 떠맡지만 영역 침범은 싫은 의사들

정현숙 | 기사입력 2020/09/06 [00:18]

"의사 파업에 사망선고·사망진단서 등 불법의료 떠맡는 간호사들" 간호사가 '의사당직'까지 떠맡지만 영역 침범은 싫은 의사들

정현숙 | 입력 : 2020/09/06 [00:18]

전공의 업무 상당부분 PA 간호사가 대체해도 '법적보호' 반대하는 의사단체의 '이중성'

'새우 등 터진' 간호사.. "노조파업 때도 응급실 비우진 않는데 파업 후 업무 폭증"

서울대학교병원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본원에서 정부의 4대 의료정책 반대 홍보전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정부 투쟁 성향을 띈 의사들의 집단파업으로 의료공백이 현실화됐다. 전공의와 전임의, 교수들까지 진료 거부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간호사들이 의사들이 해야 하는 고유 업무를 떠맡는 것은 물론 환자들의 항의에도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수인계도 없이 중환자실, 응급실 등 필수유지 인력까지도 진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로 인해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를 대신하고 있으나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번 사태로 중증 환자들의 수술이 무기한 연기되고 응급실도 환자 치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사망환자들도 발생했다. 전공의가 의료현장을 이탈한 가운데 일부 교수와 PA간호사만으로는 정상적인 병원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병원들이 만든 '비상진료체제'가 사실상 PA(Physician Assistant)간호사 및 일반 간호사에게까지 의사 업무를 전가하는 '불법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보건의료노조는 3일 진행한 [의사 진료거부 규탄 및 당정 면담 요청을 위한 긴급기자회견]에서 지난달 21일 이후 시작된 전공의 집단 업무 거부로 의사업무가 PA간호사와 간호사들에게 전가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례들을 소개했다.

노조가 소개한 사례를 보면 “전공의 부재로 비상진료체계가 급조돼 인턴·전공의 업무를 간호사들이 하고, PA가 의사 당직까지 서게 하는 병원”이 있었던가 하면, 전공의 업무의 대다수를 하고있는 PA의 업무가 폭증해 환자 사망선고, 사망진단서까지 PA에게 전가되는 상황도 나왔다. 이밖에 교수가 당직인 날 교수 사번, 비밀번호를 간호사에게 알려주고 아예 처방을 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전공의 업무의 대다수를 하고 있는 PA들의 업무가 폭증하고 있다. 이 가운데 환자 사망선고와 사망진단서 등 의사의 고유 업무마저도 PA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어떤 병원에서는 교수가 당직인 날, 간호사에게 본인의 사번과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아예 처방을 내라는 지시까지 해 간호사들이 황당해 하고 있다"라고도 전했다.

노조는 “전공의 집단 업무 거부로 의사업무가 전가되어 PA 및 간호사들은 업무가 가중되고 환자·보호자들의 항의에 감정노동 또한 심각한 상태”라며 “무엇보다도 전공의 전임의들의 업무 거부는 환자들의 안전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전문의에게 업무 인수인계도 없이 전공의들이 나가버려 간호사가 전공의 업무를 숙지하고 있지 못하면 환자치료 과정이 해결이 안되는 상황”이라며 “PA 및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를 전가하는 불법의료가 폭증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냥 의료행위를 못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한 환자의 케모포트 바늘 삽입이 의사의 부재로 못하고 말초정맥주사를 간호사가 해야하지만, 혈관 찾기가 어려워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고 환자도 힘들어하고 있으며, 항암 스케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물론, PA가 항암 처방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오 정책국장은 "응급실 상황은 더 심각하다"라며 "CPR 상황에서 인턴이 없어 간호사가 번갈아가며 당직인턴 1명과 심장압박과 앰부배깅(ambu-bagging)을 시행한 사례도 있었고, 응급실 진료 접수를 할 의사가 없다며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돌려보내거나, 응급실 폐쇄로 타지역 환자가 2시간 만에 응급실에 왓으나 결국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동안 병원노동자들이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에 나서면 온갖 탄압과 방해를 서슴지 않던 병원 경영진과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전임의들의 집단진료거부 행위를 적극 지지하거나 후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넘어 의사의 업무까지 커버해야 하는 간호사들은 불법의료라는 두려움과 숙련되지 않은 업무를 해야 한다는 걱정 속에 의사들이 없는 진료 현장을 지키고 있지만, 환자들의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제로 환자들은 아무리 의사면담을 요청해도 만나 줄 의사가 없어 기다림의 연속이며, 입원 및 퇴원 역시 의사의 오더 지연으로 대기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환자에게 진통제, 변비약, 수면제 등 즉각 처방이 필요한 약을 처방받는 데 반나절 이상 시간이 소요되고, 이 때문에 간호사에게 항의하는 일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간호사들이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환자를 위해 병원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은 환자들의 불편에 대한 불만까지도 응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병원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외래 예약, 수술, 진료 연기 등이 발생함에 따라 환자들의 항의와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같은 항의를 간호사들에게 퍼부으면서 감정노동과 업무스트레스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데일리'에 따르면 국내 의료 현장에서 PA 간호사는 근거법령도 없이 남용되고 있다. PA 명칭 자체는 미국, 캐나다 등에서 시행하는 PA 제도에서 따온 것이지만, 합법적인 제도로 운영되는 이들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의사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PA간호사라는 이름으로 의사 업무 보조 인력을 채용해왔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PA 간호사들이 의료법 위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의료행위를 하고 병원은 업무 효율화를 명목으로, 보건당국은 인력부족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이를 묵인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의료사고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PA간호사들이 법률적인 보호조차 받을 수 없어 PA간호사를 제도화해야한다는 요구가 이어져왔다.

실제 2018년 3월 전문간호사 관련 의료법이 개정돼 올해 3월에는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문화하는 규정이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법제화가 무기한 연기됐다.또 올해 코로나 돌발 변수가 생기기 이전에는 의사 집단에서 전문성 명목으로 전문간호사 의료행위의 명문화에 반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 제도화가 더디게 진행된 사정도 있었다.

경영 관점에서 의료를 보는 병원 단체는 PA 제도화에 적극적이었으나, 간호사 업무의 지나친 확대를 경계하는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들은 PA 제도화에 부정적이었던 것이다. 1만명 넘는 PA 인력이 운영되는 것이 현재 국내 의료현장 현실임에도 의사단체의 ‘자기영역 지키기’ 집단 이기주의가 발휘된 셈이다.

이같은 이중적인 모습 뒤에는 집단휴진에 나선 전공의들이 인력 부족으로 대학병원의 전공의 혹사 문제를 비판하면서도 의료시장에서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의대정원 확대에는 반대하는 태도와도 흡사하다. 전공의 파업 후 업무 전가가 더욱 심화된 상황에서 PA간호사의 법제화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록된 것도 이같은 상황을 반영한다고 매체는 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보건의료노동자들이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할 때도 환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응급실·중환자실을 비운 적은 없다”라며 “전공의들의 집단진료거부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더 이상의 소중한 생명을 잃게 하지 않기 위해선 지금 즉시 응급실과 중환자실만이라도 복귀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같은 공간에서 협업을 하는 동료이자 노동자로서 이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보건노조는 “공공의료와 의료공공성의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는 그 누구도 아닌 국민이다. 그런데도 일부 의사들은 지금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묶어두고 극단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라며 “공공의료와 의료공공성 추진을 마치 일부 의사집단의 허락을 얻어야만 가능한 전리품처럼 내버려 둘 수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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