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을 오남용하는 검찰·법원에 대한 실효의 징계절차가 이 땅에는 없다...법무장관 지휘·감찰권 발동에 댓글 검사들의 ‘검난’에 부쳐

최자영 칼럼 | 기사입력 2020/11/05 [21:07]

공권력을 오남용하는 검찰·법원에 대한 실효의 징계절차가 이 땅에는 없다...법무장관 지휘·감찰권 발동에 댓글 검사들의 ‘검난’에 부쳐

최자영 칼럼 | 입력 : 2020/11/05 [21:07]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수사권·기소권·감찰권 등을 보유한 검찰에 묻는다”고 하면서 검사들을 비판했다(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그는 “2007년 당시 이명박 후보의 BBK 관련 혐의, 2013년과 2015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범죄 의혹, 2015년 5월 진동균 전 검사의 사직 처리 등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사건들이 진실이 드러나고 마침내 유죄판결이 난 지금, 자성의 글이나 당시 수사책임자와 지휘라인에 대한 비판은 왜 하나도 없느냐”고 묻고, "검찰은 무오류의 조직이라는 신화를 여전히 신봉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문제제기 자체에 문제가 있다. 검찰이 수사를 잘못했는데도, 그냥 묻기만 하고, 자체반성이나 자체 비판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한국 검찰이 세상 어디에도 보기 드문 수사권·기소권·감찰권 등 막강한 권력을 몽땅 틀어쥐고 고무줄 잣대로 쥐락펴락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다. 그것은 그 막강한 권력의 오·남용을 처벌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검찰 자신이 ‘무오류의 신화를 신봉하고 있다’고 비난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다. ‘무오류’가 될 수 없는 인간, 검찰의 공권력 행사를 마치 ‘무오류’인 것처럼 의제하고, 징계·처벌의 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제도적 결함은 한 나라의 치명적인 약점이기 때문이다. 그 제도적 결함은 검찰 자신이 아니라 입법의 국회는 물론 그 국회를 닦달하여 개선 보완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책임이다.
 
 
식민지배나 독재정부도 아닌 이른바 다소간 ‘민주정부’라고 자위하는 현재에도 이 같은 제도적 허점이 여전히 상존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시민들 자신에게 반성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민초가 제도적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허점을 노려서, 언론조차 민초를 우롱하고 있다. 법무부장관의 감찰권 지시를 윤석열-추미애의 개인적 권력 게임으로 환원하려는 언론의 선동과 사주는 눈물겹다. 선택적 수사, 선택적 의혹 등 검찰조직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지금까지 저질러온 비리가 윤석열, 한동훈 등 개인 검사의 처신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권력 구조적인 문제를 애써 은폐하기 위해 언론이 앞장서서 다시 시민들의 눈을 가리려고 하는 것이다.
 
 
윤석열 가족의 비리의혹 등에 관련하여 법무부장관 추미애가 수사지휘권과 감찰권을 발동한 것이 검찰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아니, 오히려 ‘살아있는 (청와대 아니면 법무부장관) 권력’이 마치 ‘죽어있는 권력’의 검찰을 핍박하는 것처럼 핵심이 전도되고 있다. 지금까지, 아니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숫한 비리의 온상인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 앞에 핍박받는 ‘죽은 권력’인 것처럼 포장되고 있고, 댓글을 단 검찰들은 ‘독재’ 권력에 저항하는 ‘용기’ 있는 사도로 미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총장 윤석열을 비롯한 일부 검찰의 항명은 검찰 자체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안하무인 독선적 검찰조직의 문제는 검찰뿐 아니라, 법원, 헌법재판소 등 사법권력 전반에 걸쳐있는 총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 들 사법기관 중 어느 한 곳이라도 바로 서 있었다면, 아무리 수사권·기소권·감찰권을 죄다 장악한 검찰이라고 해도 그 어딘가로부터 미리 견제 당했을 것이고, 급기야 오늘 ‘검란’이라고 불리는 일부 검찰의 항명도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의 항명은 법원, 헌법재판소 등에 의한 견제기능이 바르게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그것은 한국 사법권력의 병리적 상태를 총체적으로 노정하는 것이 된다.
 
 
그 한 예가 검사의 불기소에 대한 헌법소원의 금지이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2007)에 통과된 개정형사소송법(제262조)에 의하면, 그전에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불복으로 헌법소원할 수 있었던 것을 그 후부터 금지했다. 자의적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불복을 고등법원 재정심리로 한정하고, 헌법소원의 길을 막음으로써, 검찰의 권력 오·남용에 대한 견제가 한층 더 불가능해졌다. 그 견제장치의 제거로 인해 막강한 권력의 검찰 기소독점권 남용은 불 보듯 뻔하게 더욱 심화되었다. 노무현은 진실로 검찰개혁을 원했으나, 오히려 견제 받지 않는 검찰의 권력을 강화하는 역설을 연출했다. ‘꿈 따로, 현실 따로’였던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검찰뿐 아니라, 일반 법원에 대한 견제 기능도 상실했다. 법원의 재판을 거친 사건은 헌법소원을 금지한 것이 그러하다. 이 같은 불구는 군부독재 정권 전두환의 작품으로서, 이미 헌법재판소 탄생(1987년 헌법)과 함께 만들어진 헌법재판소법(제68조 1항)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울신문(2020.11.1.) 보도에 따르면, 한 검사가 ”어차피 추장관은 나갈 사람인데, 누구 좋으라고 검사들이 공개적 반발을 하겠나“라고 했단다. 바로 이것이다. 검사들은 임명직이고 선출직이 아니다. 선출직 정부는 적어도 5년에 한 번씩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검사들은 철밥통이다. 정권은 바뀌어도 검찰 조직은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그 임명직 검사의 월권에 대해 아무런 검증이나 처벌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김남국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검사 비리에 대한 고소의 기소율은 0.1%에 미치지 못한다. 보통 다른 사건은 40%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검사들은 아무리 공권력을 오용, 남용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중이 제 머리 못깍는데, 검사의 처벌 여부를 검사들이 자체(셀프) 결정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증거조작은 물론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방식으로 사건 처리를 한 것으로서 세간에 알려진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권력을 가진 자가 저렇듯 쳐박히는 판인데, 힘없는 민초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올해, 그러니까 공수처 출범을 바로 코앞에 둔 올해 있었던 일이라는 말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2020형제32650)에서 검사의 부실수사 및 공문서위조 관련 혐의의 고소가 있었다. 민초가 검사를 고소했더니, 아예 고소인 조사도 없이 최모 검사가 불기소처분한 사건이다. 대구지검에서 “국립암센터 혈액종양과에서 난소암 진단을 내렸다”고 허위사실을 기재하여 불기소처분했다는 취지의 고소 사건이었다. 상식으로 생각해도 난소암 진단을 어떻게 ‘혈액종양과’에서 내릴 수가 있겠나? 그것도 국립암센터에서 말이다.
 
 
그런데 서울중앙지검에서는 다시 동 센터 “혈액종양과에서 난소암 진단”을 내린 것“이 문제가 없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했다. “국립암센터 의무기록에 기재된 <난소암 진단> 취지를 객관적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였다고 주장하나” 문제가 없다라는 취지로 적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난소암 진단> 취지”라는 뜻을 가만히 풀어보면 마치 국립암센터 의무기록에 <난소암 진단>을 한 것처럼 오해하기 쉬우나, 사실 그런 진단은 나온 적이 없었고, 고소인도 국립암센터에서 <난소암 진단>을 내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주장한 적이 없었다. 국립암센터 ‘혈액종양과’에서 ‘난소암 진단’을 내린 것이라고 없는 사실을 검찰이 주장한다면, 동 암센타에서는 당장 명예훼손으로 검찰을 고소할 일이다.
 
 
있었던 사실을 말하자면, 국립암센터 ‘혈액종양과’에서는 ‘난소암 진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그저 “난소암 진단에 대해 2차 의견을 받으로 왔더라”고 적었을 뿐이다. 기초적인 사실조차 왜곡하고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하고, 또 그것을 시정하지 않고 정당화한 이 사건에는 당시 대구지검에 검사로 재직한 윤석열도 연루되어 있다. 그 윤석열의 연루됨은 개인 인품의 격조와는 별도 차원에서 검찰조직의 한 산물, 한 나사의 역할에 불과하다.
 
 
검찰 개혁은 개혁의 당위성에 의한 것일 뿐, 윤석열이 말하는 ‘살아있는 권력’에 의한 검찰 탄압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또한 ‘살아있는 권력’인 검찰조직이 자행한 비리는 거시적으로 검찰뿐 아니라 법원, 헌법재판소 등 사법기관 전반에 걸친 자체정화 기능의 마비에 기인한 것이고, 미시적으로는 권력자들 간의 거래뿐 아니라 수많은 민초가 승냥이 같은 검찰 조직에 의해 시달리고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공권력을 농락하는 검찰의 무대까리 없는 행패의 정도는 상식과 상상을 초월한다.(출처:프레스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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