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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한국은 잊지 않습니다, 한국을 도운 당신을”

김환태 | 기사입력 2020/12/04 [06:30]

뉴욕타임스 “한국은 잊지 않습니다, 한국을 도운 당신을”

김환태 | 입력 : 2020/12/04 [06:30]

우리정부가 지난날 평화봉사단원으로 파견되어 봉사했던 미국인에게 코로나 사태를 맞아 마스크 등 방역물품을 선물한데 대해 선물받은 장본인의 감동 소감을 뉴욕타임스가 보도한걸 교포 온라인 매체 '뉴스프로'가 번역 전재한 것을 옮겨 기사로 편집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NYT “한국은 잊지 않습니다, 한국을 도운 당신을”

 

– 한국정부, 55년 전 미국 평화봉사단 샌드라 네이썬 씨에 선물

– 가난과 질병, 북한의 위협 속에서도 배움의 열망 드높던 한국

– 경제 강국, 방역 강국으로서 과거 도움 줬던 사람들에게 감사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월 20일자 보도에서 “She Helped South Korea in Its Time of Need. In the Pandemic, It Repaid Her.(그녀는 도움이 필요했던 때 한국을 도왔다. 팬데믹 시국에 한국은 이에 보답했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수십 년 전 평화 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봉사했던 뉴욕의 샌드라 네이썬에게 이제는 경제 강국이 된 한국이 “코로나 19 서바이벌 상자”라는 선물을 통해 감사의 표시를 했다고 전했다.

 

뉴욕에 거주하는 75세의 노인으로 나날이 폭증하는 코로나19 확진자 숫자의 보도에 고립감을 느끼고 있던 네이썬 씨. 젊은 날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1966년부터 68년까지 한국의 한 지방에서 여고생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그녀에게 한국 정부로부터 도착한 위문품은 어떤 의미였을지, 기사는 그 남다른 소회를 그녀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하고 있다. 네이썬 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었던 당시 그녀의 나이는 대학을 갓 졸업한 21세. 한국에 파견된 최초의 평화 봉사단의 일원으로서 춘천의 한 여고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당시 아이들은 신발도 신지 않고 다녔으며 저녁이 되면 천장에서는 쥐가 뛰어다녔고 수도 시설이 없어 겨울에는 씻기 위해 얼음을 깨야 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또, 한국에 머무는 동안 겪었던 미 해군함정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과 간첩 김신조 사건 등 북한의 위협적 도발을 기억하기도 했다.

 

누구 하나 외투 없이 지내던 겨울, 해가 비치는 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수업을 할 정도로 추웠지만, 학생들의 배움의 열망을 통해 강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네이썬 씨는 회고하고 있다. 그녀는, 장내 기생충이 있던 병약한 학생을 미군 의사에 데려가 치료받게 한 뒤, 그 학생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따뜻한 달걀 몇 개를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절실했을 양식을 감사의 표시로 건네받았던 엄혹한 시절을 훌쩍 뛰어넘어 한국은 이제 세계 속의 경제 강국으로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가장 잘 통제하고 있는 국가로서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로 위협받는 미국의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지난 8월 네이썬 씨는 패키지를 보내주겠다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제의를 받았고, 그녀는 아마 한국 정부 홍보물일 것으로 짐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11월 초 네이썬 씨에게 배달된 “코로나19 서바이벌 상자”라는 라벨이 붙은 소포 안에는 “한국을 위한 귀하의 헌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마스크 100장과 마스크 외에도 장갑, 화장품, 인삼캔디, 비단으로 만든 부채, 한국의 전통 거북이 디자인이 새겨진 은수저 2세트가 들어 있었다고 기사는 전한다.

 

기사는 국책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지난 10월 평화 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514명에게 코로나19 서바이벌 상자를 보냈다고 발표했으며, 이근 이사장은 동봉된 편지에 “평화 봉사단으로부터 받은 도움에 크게 힘입어 한국은 이후 경제적으로 획기적인 성과를 이루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말했다. 네이썬 씨는 “지난 11월 7일, 상자가 도착한 날은 역설적으로 조 바이든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날이었다” 며 패키지가 주는 멋진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서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야 패키지를 열었다고 말하면서 “마법 같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글, 박수희)

 

<편집자 주> 평화봉사단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1961년 설립되어 주로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단체이며 가장 많이 활동한 분야는 교육과 의료이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뉴욕타임스의 기사 전문이다.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s://nyti.ms/370LyjE

 

She Helped South Korea in Its Time of Need. In the Pandemic, It Repaid Her.

그녀는 도움이 필요했던 때 한국을 도왔다. 팬데믹 시국에 한국은 이에 보답했다.

 

Decades ago, a young American woman served an impoverished South Korea as a Peace Corps volunteer. Now the country is an economic powerhouse, and it decided to send her a token of its gratitude.

수십 년 전, 젊은 미국 여성 한 명이 평화 봉사단의 일원으로 빈곤국이었던 한국에 봉사했다. 현재 한국은 경제 강국이며, 그녀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하기로 했다.

 

Sandra Nathan teaching a class in South Korea in the late 1960s as a Peace Corps volunteer. via Sandra Nathan

1960년대 후반 평화 봉사단의 일원이었던 샌드라 네이썬이 한국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출처-샌드라 네이썬   2020년 11월 20일, Choe Sang-Hun SEOUL,

 

South Korea — Sandra Nathan spent 1966 to 1968 in a South Korean town as a young Peace Corps volunteer, teaching English to high school girls. Fifty-two years later, Ms. Nathan, now back in the United States, received a care package from South Korea that nearly brought her to tears.

 

한국 서울 – 샌드라 네이썬 씨는 평화 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의 한 지방에서 1966년부터 1968년 까지 여고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52년 후, 미국에 거주중인 네이썬 씨는 한국으로부터 위문품을 받고 눈물을 쏟을 뻔 했다.

 

Ms. Nathan, 75, had been feeling increasingly isolated at home in Stephentown, N.Y. Reports about the exploding number of Covid-19 cases in the United States had made her anxious about going outside, where experts warned of second and third waves of infection.

네이썬 씨(75세)는 뉴욕주 스티븐타운에 있는 자택에서 점점 더 크게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폭증하고 있다는 보도와 2차, 3차 유행에 대한 전문가의 경고는 그녀가 외출하는 것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Then, early this month, she received a packaged labeled “Covid-19 Survival Box.” It was a gift from the South Korean government that contained 100 masks and other items “as a token of our gratitude for your dedication to Korea.”

그리고 이달 초, 그녀는 “코로나19 서바이벌 상자”라는 라벨이 붙은 소포를 받았다. 그 소포는 한국 정부가 보낸 선물이었고, 그 안에는 “한국을 위한 귀하의 헌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마스크 100장 및 기타 물품이 들어있었다.

 

“It was as if this box had been traveling to me since 1968,” said Ms. Nathan, a retired civil rights and labor lawyer. “ There was something magical about the box. Some people, Korean people, very far away wanted to make sure that I was OK; that I had what I needed to fight a bad disease. They behaved as though they cared and were responsible for me.”

민권과 노동 변호사로 일하다 은퇴한 네이썬 씨는 “이 상자가 1968년부터 나를 향한 긴 여정을 헤쳐 온 것 같았다”라며 “그 상자에는 마법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 사람들이 내가 무사하기를, 내가 나쁜 질병인 코로나와 싸우기 위해 필요한 물품을 갖추고 있기를 바랬다. 한국인들은 마치 나를 보살피고 책임지는 것처럼 행동했다”라고 말했다.

 

Decades ago, South Koreans felt similarly toward Ms. Nathan and 2,000 other Peace Corps volunteers. When the young Americans served as teachers and health care workers between 1966 and 1981, South Korea was a third-world country stricken by disease, a dictatorship, poverty and destruction left by the Korean War.

수십 년 전, 한국인들 역시 비슷한 감정을 네이썬 씨를 비롯한 2,000여 명의 평화 봉사단원들을 향해 느꼈다. 1966년에서 1981년 사이 미국의 젊은이들이 교사와 의료진으로 봉사할 당시 한국은 전쟁으로 인한 질병, 독재, 빈곤, 파괴로 고통 받던 제3 세계 국가였다.

 

South Korea is now one of the richest countries in the world, and its response to the coronavirus pandemic has been held up as an example for other nations, even as it deals with a small uptick in cases. In October, to pay back some of its debt, the government-run Korea Foundation said it was sending its Covid-19 Survival Box es to 514 former Peace Corps volunteers.

이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이며,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소규모 확진자 증가를 겪고 있긴 해도 다른 나라에 본보기가 되어 왔다. 국책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은 지난 10월 은혜를 갚기 위해 평화 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514명에게 코로나19 서바이벌 상자를 보냈다고 발표했다.

 

“Thanks in no small part to the help received from the Peace Corps,” the Korea Foundation’s president, Lee Geun, said in a letter in the box , “Korea has since achieved an economic breakthrough.”

이근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은 상자에 동봉한 편지에서 “평화 봉사단으로부터 받은 도움에 크게 힘입어 한국은 이후 경제적으로 획기적인 성과를 이루었다”고 밝혔다.

 

South Korea was a country stricken by disease and poverty in the time Ms. Nathan and other Peace Corps volunteers spent there. Kim Chon-Kil/Associated Press

네이썬 씨를 비롯한 평화 봉사단원들이 봉사하던 당시 한국은 질병과 빈곤으로 고통 받던 국가였다.

 

Ms. Nathan joined the Peace Corps after graduating from the University of Chicago. She was among the first volunteers to arrive in South Korea and was assigned to Chunchon, in the north, where she taught English at a local high school. She was 21.

네이썬 씨는 시카고대학을 졸업한 뒤 평화 봉사단에 합류했다. 그녀는 한국에 파견된 최초의 평화 봉사단의 일원으로서 북쪽 지방인 춘천에 배치되어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당시 그녀는 21살이었다.

 

The country around Chunchon was beautiful. Its pine trees were graceful, and azaleas covered its hills in spring. But most of the streets were dirt roads. Children went outside without shoes. After dark, Ms. Nathan could hear rats running across ceilings. Plumbing was generally nonexistent.

춘천시 주변은 아름다웠다. 소나무는 우아했고 봄이 되면 진달래가 언덕을 뒤덮었다. 하지만 거리 대부분은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었다. 아이들은 신발도 신지 않고 밖을 나다녔다. 날이 저물면 네이썬 씨는 쥐들이 천장을 가로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수도 시설은 거의 되어 있지 않았다.

 

“An ongoing debate among volunteers was whether Time or Newsweek was more absorbent,” Ms. Nathan said in an email interview. “Toilet paper was unavailable.”

네이썬 씨는 이메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원봉사자들은 타임이나 뉴스위크 중 어느 것이 더 흡수력이 좋은가 늘 논쟁을 벌이곤 했다. 화장실 휴지라는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Both magazines came with pages blacked out by government censors. Crude anti-communist propaganda was everywhere. During her stay in South Korea, North Korea captured a U.S. Navy ship, the Pueblo, off its coast and sent armed commandos across the border to attack the South Korean presidential palace.

두 잡지 모두 정부 검열관에 의해 까맣게 칠해진 페이지들이 있었다. 조잡한 반공 선전물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네이썬 씨가 한국에 있을 당시 북한이 근처 연안에서 미 해군 함정 푸에블로호를 나포했고 국경으로 무장 특공대를 보내 한국 대통령 관저를 공격하는 일도 있었다.

 

On winter mornings, Ms. Nathan broke the ice in a plastic container in order to wash. Her school was a sad and drafty place where classrooms were heated by a single charcoal stove.

겨울날 아침이면 네이썬 씨는 씻기 위해 플라스틱 통의 얼음을 깼다. 네이선 씨가 일하던 학교는 숯불 난로 한 대로 교실을 덥히던 우울하고 추운 곳이었다.

 

“I began to feel uncomfortably cold so that when I was not teaching, I regularly followed the circling sun as it flooded through the windows around the school building,” she said. “Even when it was very cold, students did not wear coats to school or to morning assemblies, and probably no one had a coat.”

네이썬 씨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워서 수업이 없을 때면 학교 건물 창문으로 들어오는 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옮겨 않곤 했다. 매우 추웠지만 학교에 올 때나 조례 시 외투를 입은 학생은 없었다. 아마 학생 누구도 외투가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But Ms. Nathan developed strong emotional ties with her students, who were eager to learn English. She once took a poor and sickly girl to an American military doctor for treatment for intestinal parasites, a common problem in Korea back then. The girl’s mother later arrived at the school and presented Ms. Nathan with several warm eggs, soft gray feathers still attached.

하지만 네이썬 씨는 영어를 배우기를 열망하는 학생들과 감정적으로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녀는 당시 한국에서 흔한 질병이었던 장내 기생충이 있는 가난하고 병약한 학생을 미군 의사에게 데려가 치료받게 한 적이 있었다. 학생의 어머니는 후에 학교에 찾아와 부드러운 회색 닭털이 아직 붙어있는 따뜻한 달걀 몇 개를 네이썬 씨에게 선물했다.

 

“The eggs, which I am sure my student and her mother themselves needed, expressed such gratitude that I was close to tears,” she said.

네이썬 씨는 “확신컨대 그 달걀은 그 학생과 어머니에게 아주 절실했을 것이다. 그런 고마움의 표시에 눈물이 날 뻔했다”고 말했다.

 

The care package from South Korea that Ms. Nathan received. via Sandra Nathan

네이썬 씨가 한국으로부터 받은 위문품. 샌드라 네이썬 제공.

 

The irony of the reversal of fortunes during the pandemic did not escape her.

대유행 시기에 뒤바뀐 운명의 아이러니가 네이썬 씨에게 일어났다.

 

South Korea continues to keep the coronavirus largely under control, thanks in part to its aggressive contact tracing. Although it has recently faced a small rise in infections, it is nothing compared to what is happening in the United States, where Gov. Andrew M. Cuomo of New York has announced harsh new restrictions in Ms. Nathan’s home state.

공격적인 동선 추적을 비롯한 시스템의 덕분으로 한국은 코로나바이러스를 대체로 통제하고 있다. 최근 감염이 소폭 증가했지만 미국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네이썬 씨가 거주하는 뉴욕 주(州)의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는 강력한 새로운 규제를 발표했다.

 

In August, she received the offer from the Korean Foundation to send her the gift box. She accepted, wondering if it was merely a public relations stunt for the Korean government.

지난 8월 네이썬 씨는 패키지를 보내주겠다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제의를 받고, 아마 한국 정부 홍보물일 것으로 짐작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I did not think much about it until the box arrived on Saturday, November 7, ironically the day that the U.S. presidential election was called for Joe Biden,” she wrote.

“지난 11월 7일 토요일에 상자가 도착할 때까지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날은 마침 역설적으로 조 바이든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날이었다”고 말했다.

 

Ms. Nathan said she delayed opening the package for about a week because she wanted to preserve the wonderful feeling that it gave her.

네이썬 씨는 패키지가 주는 멋진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서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야 패키지를 열었다고 말했다.

 

In addition to the masks, the box also included gloves, skin-care products, ginseng candies, a silk fan and two sets of silver chopsticks and spoons with the traditional Korean turtle design.

상자 안에는 마스크 외에도 장갑, 화장품, 인삼캔디, 비단으로 만든 부채, 한국의 전통 거북이 디자인이 새겨진 은수저 2세트가 들어 있었다.

 

“I am a practical person, not usually given to ideas unfounded by fact,” wrote Ms. Nathan. “But there was definitely something magical about the box.”

네이썬 씨는 “난 실용적인 사람이고 주로 사실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편이지만 패키지에는 분명 마법 같은 것이 있었다”고 말했다. [출처: 뉴스프로] 

 

 
[저작권자: 뉴스프로, 기사 전문 혹은 부분을 인용하실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십시오.] https://thenewspro.org/2020/11/23/in-the-pandemic-it-repaid-sandra-na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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