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외동포의 평양 일기 - 2.... 2009 - 2010

오인동 칼럼 | 기사입력 2020/12/18 [00:05]

한 해외동포의 평양 일기 - 2.... 2009 - 2010

오인동 칼럼 | 입력 : 2020/12/18 [00:05]

▲ 2009년 5월: 평양의학대학병원에 풀어 논 저자 고안 인공관절기와 수술도구와 교재 들왼편부터 김희만 연구실장, 문상민 평양의학대학 병원장, 박송철 외상외과장 , 장창호 정형외과 선배님, 오인동, 건너편 우성훈 정형외과장 등,,,,,,.

        

 

뉴욕 조선 유엔대사관 박성일 참사관의 여행주선에 따라 2009 5인공관절기수술기구수술법 책들을 두 대형가방에 가득 넣고 평양공항에 내리니 자그만 몸매의 곱고 이지적인 리화일 안내원이 체재기간 동안 함께한다고 했다그녀는 김일성대학 어문학과 출신으로 영어도 능통 했다고려호텔에서 가방들을 풀고 저녁에 그녀 따라 호텔식당 특실에 가니 민족과학기술협회 (외국과의 기술협조를 관활하는홍종휘 국장과 김책공대 출신  과장의 환영만찬이었다남자끼리 쉽게 통하는게  군대 얘기라 1967년 철원 휴전선 군의관 복무 얘기를 하니 홍 국장도 그뒤 그 지역에서 인민군 복무한 얘기로 번졌다그가 1984 9남의 홍수로 수재민을 돕기위해 북이 남에 식량지원할 때 쌀 등의 무게나 부피를 가마니말 등을 쓰다 보니 북남 사이에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며 뒤에 홍 국장이 국제규격으로 정리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 2009년 5월: 평양의학대학병원 인공관절 치환수술 영상 강연 1992년엔 환등기가 없어 애 먹었는데 이 번엔 모두들 만족했죠.

 

▲ 2009년 5월: 평양의학대학병원 정형외과의사들과 인공엉덩이관절 치환수술.수술하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관찰자 의사들과 수술실외 영상 중계

 

1992첫 방문때 고려호텔 강당에서 내딴에는 가장 효율적인 강연을 하려는 뜻에서 북의 인공 관절수술 현실에 대해 묻는데 솔직한 답을 받지못해 그만 화를 내고 말았던 일이 되살아왔다공개된 자리에서 자신들의 현실을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그날 밤내 강연을 들은 장창호  연구실장님이 호텔로 와서 그들의 현실과 인공관절기 자체제작에 대한 얘기를 나눴었다그랬던 장 선생님은 연상이신데 그대로 건장하셨고당시 정형외과장 문상민은 평양의학대학 병원장이 되어 반갑게 재회했다. ‘92년 방문때 내가 환등기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수술기법을 잘 보여 줄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비데오로 최신 수술법을 보여준뒤 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 2009년 5월: 북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장 문영호 원사(가운데), 리영구, 위광남 박사우리나라 로마자 국호 ‘Corea - Korea‘ 연원과 앞으로 우리나라 통일국호에 대한 대화와 토른을 계속하며 남북 학술토론회도 기대하고 있다.


 

수술을 마친 한 오후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문영호 소장이 역사연구소 위광남 실장과 리영호 연구사와 함께 찾아왔다웬 일인가 했더니 지난해 내 <Corea, Korea> 책을 받았다기에 말문이 곧 터졌다. 2002년부터 우리나라 로마자 국호연구를 USC 대학 Korea 도서관, Joy Kim관장의 도움으로 시작했다그 시절 우리나라 로마자 국호 Korea를  Corea 로 하자는 논의도 활발했다. 2003년 봄해외동포 이창주 교수가 마련한 독일 베르린 한민족포럼에서 나는 ‘Corea’ 어원의 역사를 발표했다이어 8.1, LA에서 김상일 교수가 마련한 <Corea되찾자!> 토론회에서도 한신대 서굉일 교수와 함께 강연했고, 8월 하순엔 김일성대학 영문국호 북남학술 회의’ 남측 대표가 나도 만나뵌 강만길 교수라기에 내 ‘Corea’원고를 보내 드렸었다.  

 

▲ 2003년 8-1일: 김상일 교수가 마련한 LA에서의 우리나라 이름의 로마자 국호 Corea왼편 서굉일 교수 , 오인동 - 김상일 교수


 뒤에 강 교수님이 평양회의에서 내 원고도 토론되었다고 알려주셨다그뒤 연구를 계속하며 의학도가 역사논문을 쓰자니 부족한게 많아 베르린포럼에서 만난 재독 김해순 사회학교수의 도움으로 2008년 <Corea, Korea>가 출판되자 문화부가 500부를 전국도서관에 배치했다문영호 소장은 ‘03년에 내 원고를 보고 역사학자인 줄 알았고지난해 뉴욕 유엔대사관의 박성일 참사로부터 받은 내 책을 보고  의사인 것을 알고 놀랐었는데이번엔 수술하려 왔다해서 반가워 찾아왔단다문 소장은 <겨레말 큰사전 출판위원회북측 대표였다한편 ‘07년말서길수 교수로부터 고구려-고려의 우리말 발음이 고구리-고리라는 것도 알게되어 나는 로마자 국호 는 ‘Gori’가 적합하다는데 대해 문 소장과 토의도 하며  2015 8.15에 통일국호 [고리- Gori]를 발표하고 역사학회지 <내일을 여는 역사>에도 게재됐다.

 

 수술 뒤 오후엔 리화일 동무 따라 평양의 여러 사적지와 기념비적 건물들을 살펴 보았다평양 떠나기 전날 저녘엔 양강호텔 근처 소나무 동산에 오르니 홍종휘 국장과 리 과장이 기다리고 있었다말만 들은조개구이 맛보는 날이다철판에 물에 적신 포대를 깔고 대합조개를 빼곡히 엎어놓고 깡통에 든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니 불꽃이 피어 올랐다불이 꺼질라치면 또 뿌리며 구으니 잘 익은 조갯살에서 휘발유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그 맛이 입에 착 븥으니  ‘도라지 소주  마시며 관절기 자체제작 얘기를 나눴다김채공대와 제휴해 <생체공학연구실  병원에 개설하도록 권했다마지막 수술을 마친 날함께 수술해온 박송철김희만 과장장 선생님과 정성을 다한 수술방 간호원들과도 정이 깊이 들어 아쉬운 이별을 하게 되었다.

 

▲ 2009년 5월: 철판 위의 휘발유 조개구이 + 도라지 소주 - 평양 소나무 동산남녘에선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북녘 특유의 야외 조개구이 맛홍종휘 국장 – 리규섭 과장 – 리화일 안내원과의 송별의 밤

 

▲ 2009년 5월: 송별의 정든 간호원들과 장창호 선배님, 김희만 연구실장, 박송철 과장 정성 다해 도와주는 간호원과 보조원 들

 

▲ 2009년 5월: 북 통일전선부 해외동포위원회 김관기 국장, 박철 아태평화위원100년 지기처럼 곧 서로 좋아지고마는 북녘 사람들 손 맞잡고

  저녘,  박철 참사가 와서 해외동포위원회로 가면서 그가 평양 외국어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 했다기에 촘스키 교수를 말 했더니 그의 학설이며 논리에 대해 하는 얘기가 하도 깊어서 나는 아주 질려버리고 말았다김관기 국장을 만나니 그는 ‘98년 내가 평양서 만난  박동근 교수와 ‘96 년에 재영동포 장민웅 회장이 마련한 런던 통일토론회에서 강연도 함께 한 분이었다남북 교류가 전혀 없던 80-90년대에도 유럽과 미국의 동포들은 북 학자들과 함께 만나 토론을 해왔다그 밤 김-박 두 분과 가장 깊은 통일관련 대화를 나눴다내가 연상이지만 두 분은 겸손했고 진심 어린  얘기를 나누며 박학다식의 박철은 아태평화위원인 것도 알게됐다

 

다음날 리화일 동무와 공항에 가니지난 밤에 우린 만리장성이라도 쌓았나김 국장이 기다리고 있었다수술뿐 아니라 6.15미국위의 내부갈등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부탁도 들었다드디어 지난 한 주일 매일 나와 함께 해온 화일 동무는 내가 추구하는 통일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나의 글들을 관련부서에도 전해 주는 등 크게 도왔다벌써 헤어지게 되자 미국식으로 다정한 포옹으로 이별의 정을 나누고 싶었지만 그저 악수하는 손에 힘을 주고 손 흔들며 비행기에 올랐다.  

 

▲ 2010년 6월; 평양의학대학 병원 -나의 고안 인공엉덩이관절기와 수술기구들딱닥한 큰 뼈 관절에 고정시키는 쇠붙이와 특수 플라스틱 인공관절기들사람들 몸 안에 있는 부드러운 조직은 하나도 안 보이고 몽땅 쇠붙이와 플라스틱 문상민 평양의학대학 병원장 – 검은 양복

▲ 2010년 6월: 인공무릎관절기 수술시연 :인공 뼈와 관절로 수술 에행 연습하는 정형외과 의사들왼편부터 우성훈 과장, 김희만 연구실장 – 징칭호 연구실 고문

 

 11내 칠순 생일에 김관기 국장이 축하글을 보내왔다2010 4뉴욕 북 대사관 박성일 참사가 김관기 국장이 중국 심양에 나와 있는데 나를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단다수술한 환자 중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해서 곧 국제전화로 물었더니 그냥 보고 싶어서래요환자 문제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심양이 옆집도 아닌데하다 언제까지 있겠냐 물었더니 나 올때 까지’ 라고 능청을 떨었다생각해 보니 인공무릎관절기를 확보해논지라 심양에 가지고가면 6북에 갈때 나머지 더 많이 가져갈 수 있기에 곧 심양행 비행기를 탔다김 국장은 최순철 부국장과 바빴고 저녘에야 만나 식사하며 통일관련 대화를 나눴다가지고 온 두 가방을 넘겨줬다.

 

▲ 2010년; 성공적 인공 엉덩이 + 무릎관절 치환 수술을 마치고 휴계실에서 축배 들며왼편부터 평양의대병원 정광훈 외사부장 , 민족과학기술협회 리규섭 과장과 의사 선생들 : 우성훈 – 김희만 – 박송철 – 오인동 - 장창호

 

6관절기수술보조기와 고정제들을 가득넣고 북에 갔다비행기가 허용하는 대형 가방들을 끌고 다니는 걸 보고 친구들은 북으로 이민가는 거냐며 놀렸다인공관절기 한벌이 $ 5~ 6,000인공무릎관절 뼈를 들고 수술예행 연습을 과장 선생들과 했다다음날부터 무릎관절 치환수술을 거뜬히 해냈다이런 광경을 본 문상민 병원장이 정광훈 외사지도원으로 하여금 수술실 옆방에 축하 자리를 마련케 해주셨다고 했다모두들 자랑스러워 과장선생과 리규섭 과장도 함께 축배를 들었다다행이도 내가 고안한 인공엉덩이 관절기와 부속기구들을 제작해 상품화한 회사들이 비싼 인공무릎관절기를 기증해준 덕분에 많은 수술을 할수 있었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 2010- 7.27 정전일; 6.15해외측 미국위가 마련한 미국 국무부 방문 – 남측위 김상근 위원장 일행이 성김 6자회담 대사와 킹(R. King) 국무부 북 인권대사, 이행우 미국위원장 이슿환 남측 부위원장 6.15해외위원장들과 분단조국의 통일에 관한 대화와 토론



<오인동:의학박사,재미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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