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정치하는 나라 미국

김영석 칼럼 | 기사입력 2021/01/09 [00:05]

부자가 정치하는 나라 미국

김영석 칼럼 | 입력 : 2021/01/09 [00:05]

▲ 2021년 1월 6일 오후 3 시, 연방의회 의사당 의장단을 점거한 시위대 *사진출처 : 게티 이미지

미국은 누구의 나라일까?  과연 미국은 ‘인민'이 세우고 ‘인민'의 주권이 행사되는 진정한  ‘인민’의 나라일까? 헌법에 명시되었으니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아 자문자답해본다. 몇 가지 장면을 재 조명해 보겠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누구의 말씀? “87년 전...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이라는 서두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링컨의 게티즈버그(Gettysburg) 연설에 한 문구다.  

이 연설은 게티즈버그 전투가 있은 후 4개월 후에 전장에 세워진, 전몰장병을 위해 꾸려진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였다. 자신이 직접 연설문을 작성했다고 알려진 링컨의 연설은 아마도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적 문구이자 가장 많이 인용될 것이다. 이 문구에는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명시한 건국의 이념인 인간 평등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자신이 일으킨 시민 전쟁이  모든 국민들에게 평등과 자유를 가져다 준 ‘인민' 투쟁임을 규정한 것이다. 시민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장병과 민간인의 죽음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 인민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초석이 될 것임을 간절히 바라는 소망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이 문구는 이제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답고 명쾌하게 정리된 민주주의 개념을 가진 나라가 미국이라고 모두가 믿고 싶겠지만 과연 미국인이 정말 ‘인민'의 나라인지 곱씹어 보게된다. 조금이라도 양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미국은 ‘인민'과는 거리가 멀고 아예 인연이 없다고도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누구의 나라일까? 미국을 조금만 안으로 들여다보면 링컨의 연설 문구만큼 단순하고 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다. 미국은 부자와 기업의 나라이고, 엘리트의 나라다. 정치 엘리트, 관료 엘리트, 군사 엘리트 그리고 대중문화의 엘리트가 주권을 장악하고 행사하며 대부분의 정치적 문화적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미국만큼 주권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미국에서의 주권은-다른 나라도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마치 자동차를 살 때 선택하는 옵션 조항 같다. 주권의 종류가 세분화되었고(이 것은 끝없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용 방법도 제각각이다. 흥미로운 것은 업그레이드와 다운그레이드가 동시에 발생한다. 부를 얻으면 주권의 질은 상승하고 부를 잃으면 하락한다. 우리는 이렇게  발생하는 제현상들을 가리켜 통칭해서 ‘자유'라고 부른다. ‘자유’를 자유롭게(!)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재량권이 각자에게 주어진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미국에서의 자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조금 더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이를 계급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고찰하겠지… 계급에 따라 누리는 자유가 달라지는 것을 당연시한다.  가끔 주변에서 계급의 수직상승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성공’이라고 부른다. 이민자에게 성공의 신화는 무한한 자극과 동력으로 작용한다. 한심할 정도로 보잘것없는 크기의 자유가 성공을 통해 확대되고 풍부해진다.

미국이 계급사회라는 것은 누구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이다. “당연하지.” 문제는 논리의 모순이다. 건국이념에서도 그렇고 헌법에서도 그리고 링컨의 연설에서도 미국은 평등의 사회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건국이래 지금까지 평등해 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평등해질 것 같지도 않다. 한 사회에 다양한 계급과 계층이 존재하고 공존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의 우위에 서서 정치할 수도 있다. 단 평등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계급 간의 적대적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렇게 쉽게 설명되는 것이 평등한 사회인데 좀처럼 실현되지 않는다. 마치 이상 사회를 묘사하는 것처럼 실현 불가능하다는 관점이 널리 퍼져있다.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몇몇 계급이 매우 이기적으로 자유의 대부분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8월 28일 조지아주 연방 상원 의원 <죠니 아이잭슨 Johnny Isankson>은 신병을 이유로 사임을 표명했다. 2004년, 2010년 그리고 2016년까지 세 번의 연임을 거치면서 입지가 단단해진 중진의원이 돌연 사임을 선언한 것 자체가 쇼킹한 사건인데 진짜 세상을 놀래킨 뉴스는 그다음이었다. 그는 주 법에 따라 주지사에게 후임자를 지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때부터 하마평에 오르는 주요 인사를 상대로 물밑 접촉이 있었을 테고 지명은 합리적인 수순을 밟았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12월 4일 조지아주 주지사 <브라이언 캠프 Brian Kemp>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의외의 인물을 상원의원으로 지명했다. 바로 그녀가 이틀 전 상원의원 재선거에서 초선이나 다름없는 민주당 후보 <라파엘 워녹 Raffael Warnock> 에게 0.6%의 차이로 패배한 <켈리 로플러 Kelly Loeffler>였다. 그녀가 상원 의원으로 지명된 사건은 많은 논란을 야기시켰다.  이전까지 그녀는 여성 사업가로서 이름이 꽤 알려져 있었다. MBA 과정을 수료하고 곧바로 몇몇 대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후 꽤 잘 나가는  투자회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이 곳에서 최고경영자이자 소유주인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그 후광을 업고 성공한 여성 사업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이 부분까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그녀의 행보는 억측과 무리수로 가득 차 있다. 그녀가 처음으로 정치권에 발을 디딘 것은 2014년으로 추정된다. 연방 하원 또는 상원 선거에 후보로 등록했으나 예비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러다 2019년 12월에 혜성처럼 나타나 연방 상원 지명자로 대중 앞에 나선 것이다. 언론은 신데렐라의 등장처럼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그녀의 등장에 주목했지만 비판 일색이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어리둥절케 한 것은 그녀의 출생지역이었다.  일반적으로 연방 상원 의원은 그 지역에서 출생한 토착민이 출마하는 것을 관행으로 여겼다.  그녀는 일리노이즈(주)출신이고 결혼 전까지는 시카고 등지에서 줄곧 활동했었다.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이 일천했던 것은 그다음의 논란거리였다. 조지아주에 거주하는 기라성 같은 정치 엘리트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했고 지역 언론 역시 날 센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당의 지도부와  당사자인 주지사 <브라이언 캠프>와 사임을 표명했던 전상원 의원 <죠니 아이잭슨>은 짐짓 모른 체 하며 그녀의 지명을 공고히 했다.  언론이 줄곧 파헤쳤던 비리는 주로 그녀의 남편이었다. 막대한 부를 동원해 상원 자리를 돈 주고 샀다는 주된 내용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비리와 탈세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확인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그녀가 단숨에 상원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남편이 십여 년간 공들였던 기부금 때문이었다.  재선거 결과는 참담했다. 박빙의 차이로 탈락했으니 그 참담한 심정이야 오죽하랴... 이제는 끈 떨어진 갓 신세로 전락했지만 그녀가 상원 의원직을 수행하던 지난 일 년간 그녀는 미국 역사상 재산이 가장 많은 상원 의원으로 기록되었다.   

 2021년 1월 6일 연방의회 의사당 건물에는 새벽부터 빨간색 모자를 쓰고 사냥할 때 입는 위장무늬로 가득한 재킷을 걸친 데모 군중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오가 다 되어 올 수록 시위대의 수가 불어났고 의사당을 경비하던 경찰 역시 그 수를 늘려가며 대오를 갖추기 시작했다. 산발적으로 모여 구호를 외치거나 깃발을 흔들어 대던 시위대가 의사당을 에워싸기 시작한 때가 오후 1 시경 이었다. 의사당 전면을 배경으로 시위대가 계단에 올라 깃발을 흔드는 사진이 바로 이때 촬영된 사진들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바이든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고 시위대의 해산을 종용함과 동시에 트럼프를 맹 비난했다. 그 와 동시에 메릴랜드(주)주지사는 주방위군의 출동을 명령했다. 몇 분 간격으로 정치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유력 정치인들은 SNS 또는 방송 인터뷰를 통해 평화적 시위를 촉구했다. 트럼프 역시 트위터를 통해 평화적 시위를 부탁하고 가급적 집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 했다. 의사당으로 향하는 모든 길목은 차단되었고 지하철 역시 운행이 중단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은 산발적이었고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험악한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오후 2 시경 한 시위대원이 펜스 부통령의 집무실을 무단으로 침입한 후 취임식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부터 였다. 누군가가 의사당을 점거해야 한다고 격양된 소리를 외치며 시위대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시위대가 굳게 걸어 잠근 의사당 정문으로 몰려갔고 다급해진 경찰이 최루탄을 쏘아댔다. 뭉게구름처럼 의사당 정면에서 최루탄이 피어오르는 사진이 찍혔던 시각이다. 대략 오후 2 시 30분… 곧이어 성난 시위대가 의사당 정문을 부수고 회의가 진행되고 있던 의사당으로 난입했다. 이 와중에 시위대 중 한 명이(여성) 경찰이 발사한 총에 사망했다. 곧이어 의사당은 시위대에 의해 점령당했다. 오후 3 시가 다 되었을 때였다. 같은 시각에 관록의 <미치 맥코넬 Mitch McConnell> 연방 상원 의장은(공화당) 의장의 지위와 역할로서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시위대를 향해 그리고 국민을 향해 쉴 새 없이 많은 말을 쏟아냈다. 아마도 그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험악하고 증오에 찬 단어를 사용하여 시위대의 행위를 비판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세계 언론은 깜짝 놀라서 의사당의 내부를 속속들이 생중계하고 있었다. 

시위대가 노린 것은 연방 상원과 하원이 한자리에 모여 차기 대통령을 형식으로 선출하는 의회 의식을 방해하고 정통성에 타격을 입히기 위한 것이었고 보기좋게 성공했다. 비록 몇 명의 희생자(경찰 포함 4 명)가 발생했으나 그들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극적으로 전 세계에 타전되었다. 마치 이 것은 이전부터 불거져 오던 연방 붕괴의 첫 조짐을 보여주는 것 같아 한 편으로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도 한다. 아마도 대다수의 평범한 미국인이 느끼는 공통의 감정이 아닐까 싶다. 비슷한 불안 심리는 증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어제(1월 6일) 오전까지만 해도 증시와 바이든 정부의 출범으로 약간 들떠있던 상태였었다. 그러나 시위대의 의사당 점거 소식이 들려오면서 증시는 싸늘하게 식었고 이자율은 덩달아 하락했다. 오늘(1월 7일) 아침까지도 증시와 이자율은 변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제의 충격이 꽤나 컸었나 보다.   

언론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국가 시스템의 붕괴였다.  건국이래 처음으로 자국민에 의해 폭력적으로 점거당한 사건에 주목했다. 연방제도의 붕괴를  가장 우려했다. 시위대의 다수는 과거 시민전쟁 당시 남부군이 사용했던 남부연합군의 깃발을 흔들어댔다. 이미 남부 지역 상당수가 연방의 붕괴를 공공연히 외치고 있었으므로 그 곳 출신의 시위자들이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행태라 볼 수도 있겠지만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그 깃발이 휘날린 것은 상징성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시위대 중 일부는 “우리는 승리했다!”라고 외치지 않았던가…  다른 나라였다면 이런 종류의 의사당의 점거였다면 반역죄에 해당된다. 국가전복을 획책했기 때문이다. 시민전쟁 당시 남부군은 연방에서의 탈퇴를 선언했고 독자적인 국가를 수립하려고 했다. 

▲ 2021년 1월 6일, 연방의회 의사당을 점거하던 와중에 경찰의 총격으로 희생된 31세의 애슬리 배빗, 트럼프 지지자로 알려졌고 퇴역 군인이다. 다수의 언론에서는 백인 시위대가 백인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했음에도 백인 사회가 동요하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 왜 이렇게 다르게 반응하는지 필자도 궁금해지기는 마찬가지다.

각국의 정상들도 우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은 지금까지 ‘민주주의의 교과서’로 인정받고 있었다. 일부 정상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은 지난 역사에서 민주주의의 귀감이었다.” 라고 찬사를 보내면서도 망가져 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은 심정을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동맹국에서 보내는 우려감은 헌정 질서의 파괴다. 자국에 전달될 파급 효과에도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울러 미국이 망가져 갈 때에 초래할 경제 파탄이 내심 걱정이다. 

그러나 미국이 우려할 만큼 쉽게 망가질수 있을까?  아무리 사태가 엄중했더라도 빠르게 수습될 것이고 시민들도 심리적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아마도 취임식 이후 정치와 사회는 정상적인 패턴으로 되돌아 갈 것을 확신한다. 상처가 깊어졌고 균열이 분명하게 보였다는 것이 문제다. 이전까지 미국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사회는 균형 있는 조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사회적 통념이었다. 그러나 그 신화는 허구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미국의 실체는 수많은 상처와 수많은 균열로 가득한 거대한 집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소요사태가 엄중해서 그런지 언론에서 희생자와 시위대의 성격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소위 트럼프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그렇다.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빨간색 MAGA 모자를 쓰고, 트럼프 지지라고 밝히는 티셔츠를 입고 성조기를 흔든다. 아니나 다를까 거의가 백인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백인 중에서도 경제적 하층에 속하는 백인이다. 백인과 트럼프 지지자라는 이미지를 벗겨내면 저소득층으로 분류되는 소외계층이다. 건국이래 지금까지 소외된 백인은 말없이 묵묵하게 자기 목숨을 연명해가며 살아왔다.  1, 2차 세계대전에서도 묵묵히 총알받이 역할을 담당했다. 목숨 값으로 받아낸 연금이 삶을 연장하는 동아줄이었다. 한국전쟁에서도 베트남 전쟁에서도 그리고 아프간 전쟁에서도 그들의 역할은 같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일반인이 생각하던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빈곤은 대를 이어 세습되고 있다. 그들이 누를 수 있는 문화적 혜택도 극히 제한적이고, 대다수가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신음하고 있다. 생활의 모든 것이 악순환의 연속이다. 상대적으로 소수계 인종들이 누리는 경제적 안정은 눈엣가시다. 백인으로서 누리던 상대적 우위도 이미 상실한 지 오래다. 그들이 트럼프를 택한 것은 그의 인물 됨됨이 때문이 아니다. 어찌 보면 상극이나 다름없는 계급적 차이를 극복하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화풀이와 분풀이의 구실을 구체화시켰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이 교묘하게 그들의 심리를 이용한 측면이 강하다. 만약 분노의 배출구를 현실화시켜주지 않았다면 이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소요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과연 미국이 그들이 꿈꾸는 것처럼 온전한 백인우월주의 정권이 들어서면 안정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트럼프 개인의 탐욕과 무지를 비판한다. 필자 역시 그가 보여준 리더로서의 자질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저 이삼류 정치인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할까…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엔딩 크레딧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 자신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미국 정치의 허구와 속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듯하다. 만약 의도한 것이라면 이러한 그의 역할과 소신에 박수를 보낸다. 같은 공화당 소속이면서도 그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비판하는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과연 트럼프보다도 자질이 뛰어날까? 아마도 임기 4 년 내내 또는 후보 시절까지 합쳐 정치인으로서의  전 기간 동안 그는 기성 정치인과 그들만의 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를 따른다는 시위대의 의사당 점거 사태로 어쩌면 트럼프의 정치적 생명은 여기까지 일수도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그의 응석을 받아주기에는 부담이 너무도 크다.  

일각에서는 제 3의 당을 꿈꾸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제3의 당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제3의 당은 항상 주목받아왔다. 다만 지금까지 제3의 당이 기회주의자의 정치적 등용문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트럼프가 제3의 당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전과의 전혀 다른 모양새를 띄게 된다. 그는 대통령을 역임했고 지지층이 견고하다. 그가 만일 양당체제를 허물기 위한 커다란 정치적 대안을 품고 있다면 그래서 그 모험이 성공한다면 미국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미국인에게는 미우나 고우나 트럼프의 모험을 지켜봐야 할 숙명이 주어지는 것 같다.

참고: 연방상원 의장 <미치 맥코넬>의 어제(1월 6일) 발언:
I want to say to the American people the United States Senate will not be intimidated. We will not be kept out of this chamber by thugs, mobs or threats. We will not bow to lawlessness or intimidation. We are back at our posts. We will discharge our duty under the Constitution and for our nation. And we're going to do it tonight.
This afternoon, Congress began the process of honoring the will of the American people and counting the Electoral College votes. We have fulfilled the solemn duty every four years for more than two centuries. Whether our nation has been at war or at peace, under all manner of threats, even during an ongoing armed rebellion and the Civil War, the clockwork of our democracy has carried on.
The United States and the United States Congress have faced down much greater threats than the unhinged crowd we saw today. We've never been deterred before, and we will not be deterred today. They tried to disrupt our democracy. They failed. They failed. They failed to attempt to obstruct the Congress.
This failed insurrection only underscores how crucial the task before us is for our republic. Our nation was founded precisely so that the free choice of the American people is what shapes our self-government and determines the destiny of our nation – not fear, not force, but the peaceful expression of the popular will.
Now, we assembled this afternoon to count our citizens' votes and to formalize their choice of the next president. Now we're going to finish exactly what we started. We'll complete the process the right way by the book. We'll follow our precedents, our laws and our Constitution to the letter. And we will certify the winner of the 2020 presidential election. Criminal behavior will never dominate the United States Congress. This institution is resilient. Our democratic republic is strong.
The American people deserve nothing less.

 

<김영석:재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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