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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이제서야 맞는 이들의 20세기적 욕망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1/01/12 [00:08]

21세기를 이제서야 맞는 이들의 20세기적 욕망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1/01/12 [00:08]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작곡가가 구약성서 창세기 안의 니므롯이라고 했던' 를 몇 번이고 돌려 듣다가 아예 전곡 연주를 들으며 까닭모를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새벽입니다. 그냥 나이먹어서 그렇거니 하고 있습니다만, 어쩌면 최근에 제가 가졌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복잡하게 뭉쳐져 있다가 이 새벽에 실타래처럼 풀려서 그러려니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위에 걸어놓은 건 세월호 참사 다음날에 연주된 겁니다. 그래서 영상 안에서 수원교향악단의 김대진 지휘자는 세월호 조난자들의 명복을 빌며 아울러 생존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안타깝게도 첫 생존자들 이외에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었지만. 그리고 그 사건이 거대한 기폭제가 되어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첫 탄핵이 이뤄진 건 3년 후였습니다.

한 시대의 종막이 느껴지는 것을 느낍니다. 솔직히 아직까지 그렇게 커다랗고 의미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느껴지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몰락, 그리고 우리가 아직은 그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새로운 시대의 등장을 느끼게 합니다. 21세기라는 세월의 타래 역시 이제서야 풀리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되돌아봐야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세계의 질서라는 것에 대한 회의, 날것으로의 우리 모습, 그리고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계에서 어떤 위상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지... 새로운 질서는 우리에게 기존의 질서를 분명히 부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날것의 욕망들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스스로 막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에 대한 욕망은 우리 모두가 함께 전진해야 할 길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중의 하나입니다. 땅이라는 그 한정성이 분명한 자원에 대한 욕망은 사람들이 함께 이뤄야 할 목표라는 대의보다는 당장 '내집마련'과 '내 집값'이라는 눈앞의 이익에 함몰되어 그 앞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 때문에 함께 이뤄낸 혁명의 대의가 소진되더라도, 당장 내 집 옆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과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고, 보수야당은 그 지점을 매우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바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낸 주역이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 여기에 그 널리고 널린 임대 아파트들이 아니었다면 저는 어떻게 제 삶을 여기서 안정적으로 잡아나갈 수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저 보증금으로 두 달치 월세정도의 가격(처음 미국에 와서 살았던 아파트의 월세는 4백달러, 보증금은 960달러였습니다)을 내고 입주해 그곳에서 4년인가를 살다가 지금 어머니께서 살고 계시는 집을 사서 이사해 들어갔습니다. 그 아파트의 평수가 대략 850스퀘어피트였으니 우리네 단위로 환산하면 1스퀘어피트가 0.0281 평이므로 공용면적까지 합산해 생각하면 28평 정도가 됐던 셈입니다. 게다가 이런 아파트엔 거의 입주민들을 위한 기본적인 레크레이션 룸과 수영장이 딸려 있으니, 이 정도면 참 괜찮은 주거생활을 누린 셈이고, 미국에서 가족이 없거나 특별히 집에 투자할 의향이 없다면 그냥 이런 임대아파트에 사는 게 더 편하기도 합니다.

결혼하고 나서 신혼살림도 1베드룸 아파트에서 시작했고, 직장 때문에 오리건 가서도 아파트 생활을 하다가 다시 시애틀로 올라왔을 때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샀습니다. 아무튼 부동산 때문에 목숨 건 적이 없어서, 집 없는 이들의 고통을 정확히는 모릅니다. 저는 아직도 전세 제도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들을 알기 전에 미국에 왔기 때문에. 그리고 이곳의 방식대로 살았고, 모기지 제도를 통해 집을 구입했고, 이자율을 낮추기 위해 두어 번 재융자를 받았고, 집에 대해서 특별히 욕심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매우 기본적인 것들이 '욕망의 대상'이 되는 사회가 그 욕망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빼앗긴다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글쎄요, 잘은 모르지만 만일 한국에서 주거에 대한 투기 수요가 사라지고 모두가 적절한 가격에 주거가 보장된다면 그게 부동산으로 인한 투기수익의 실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이들이 같이 삶을 윤택하게 누리는 바탕이 되지 않을까요? 이 욕망들 때문에 학교는 사다리 걷어차는 기술만을 가르치고, 훨씬 더 인간적일 수 있는 삶의 공간들에서 협동과 창조의 에너지를 박탈당하고 있는 게 지금 한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아닐까요?

정치는 이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이뤄낼 수 있는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세력들이 가장 저열하게도 이같은 욕망들을 자극해 자기들의 존재 이유를 만들고 자기들의 영향력을 유지하려 하는, 그런 세상을 정상이라고 봐야 할까요?

새벽이 지나 이제 아침이 됐습니다. 흐린 일요일 아침, 두 잔의 커피를 마시고 났더니 정신은 각성되었지만 몸은 조금 피곤함을 느끼고 있네요. 그래도 일부러 움직이려고 합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피트니스 센터들이 문을 연다고 하니 일 마치고 나면 운동하러 가야지요. 이 판데믹의 시대, 우리의 삶이 팍팍하지만, 그래도 이 시간은 우리를 다시 돌아보고 인간이 함께 이 지구 위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라고 주어진 시간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합니다.

맨손체조 좀 하고, 동네 한 바퀴 뛰고 돌아와야겠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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