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아 미안해"

고하승 칼럼 | 기사입력 2021/01/18 [06:05]

"정인아 미안해"

고하승 칼럼 | 입력 : 2021/01/18 [06:05]

지난해 10월 13일, 생후 16개월의 아이가 차디찬 응급실에서 숨을 거뒀다. 당시 아이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몸이 멍투성이였고, 찢어진 장기에서 발생한 출혈로 인해 복부 전체가 피로 가득 차 부풀어 올랐다. 숨진 아이의 이름은 정인이다.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정인이는 입양 271일 만에 하늘로 떠난 것이다.


이 뉴스를 대할 때마다 정인이가 겪었을 고통에 눈물이 나고, 양부모의 천인공노할 짓에 분노가 치솟는다. 어른으로서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이런 현실 앞에서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으로 밤에 잠을 청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마 국민 대다수가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대체 입양되어 양부모와 같이 지낸 지난 271일 동안 정인이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정인이의 몸에 남은 수많은 학대의 흔적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정인이가 숨을 거두기 전에도 온몸에 멍이 든 걸 알아차리거나, 차에 오랜 시간 방치된 것을 목격하거나, 영양실조 상태를 직접 진단하는 등 학대 정황을 발견한 용기 있는 어른들은 5, 6, 9월에 걸쳐 무려 세 번이나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하지만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수사가 이뤄지거나 정인이가 양부모로부터 분리되는 등의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수사기관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16개월 어린 정인이의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 결과 정인이는 2020년 10월 13일에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하게 학대를 당했고, 심정지 상태에서 이대목동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결국 그날 저녁에 사망했다. 국립과학수사원에서 조사한 결과인 피해자인 정인 양의 사인이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 즉 폭행에 의한 사망으로 드러났다. 부검한 결과 췌장 절단 및 후두부와 쇄골, 대퇴골 등이 골절됐다고 하니 그 폭행의 강도가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장간막 출혈과 소장 및 대장의 파열, 췌장 절단과 같은 손상은 모두 압사나 교통사고와 같은 급격하고 강력한 외부충격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적어도 췌장이 절단되려면 배가 척추에 닿을 정도로 납작하게 눌릴 정도여야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소견이다.


한마디로 살의를 가지고 그 어린 생명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입양모 장하영과 입양부 안성은 단순히 ‘아동학대치사’ 혐의가 아닌 ‘살인’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는 게 국민의 정서다. 그렇게 엄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만 ‘제2, 제3의 정인이 사건’을 방지할 수 있다.


아울러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세 번의 기회를 날린 경찰에 대해서도 무겁게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특히 정치권은 정인이 사건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은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캠페인은 종이에 '정인아 미안해'라는 문구와 자신이 쓰고 싶은 말을 짤막하게 작성해 인증 사진을 찍고 SNS에 게재하는 방식인데 웬만한 정치인들은 다 참여했다. 그게 끝이다. 마치 무슨 유행처럼 챌린지에 참여하고는 다시 무심한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는 그들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다.


이래선 안 된다. 우리는 정인이를 살릴 수 있었다.


앞서 지난 2014년 10월 26일, 25개월 된 입양아가 양부모의 상습적인 학대로 인해 숨진 사건이 있었고, 2013년 8월 14일에는 의붓어머니로부터 폭행당해 8살 어린 의붓딸이 장간막 파열에 따른 복막염으로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2011년 12월에는 아동 보호시설을 전전하다 4살 때 입양가정에 돌아온 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친모에 의해 욕조에 감금, 물고문과 학대를 당한 뒤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었다.


진즉 어른들이, 특히 정치권이 이런 사건들에 관심을 가지고 대응책을 마련했더라면, 정인이 의 죽음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정인이에게 정말 미안하다. “정인아, 미안해~”

 

<고하승:시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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