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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도 교조화되면 망한다는 걸 명심하라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1/01/19 [00:05]

자본주의도 교조화되면 망한다는 걸 명심하라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1/01/19 [00:05]

 



평소에 일요일이라고 해서 늦게 일어나는 편은 아닌데, 오늘은 모처럼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나 어머니 집에 왔습니다. 아침으로는 아내가 해 준 맛있는 오트밀 포리지, 그러니까 야채 죽 같은 것을 먹고 속 든든하게 챙기고 나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둘만 집에 있으니 이런 저런 대화들을 많이 하는데, 최근엔 우리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밖에 없습니다. 아내도, 저도 둘 다 이 코로나 판데믹 동안에 전혀 경제적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이 많아 고생을 했으면 했지, 경제적으로는 여느 해 보다 풍족하고 윤택했습니다.

그렇지만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참 마음이 그렇습니다. 내 배달구역에서만 해도 아파트 렌트비가 밀려 결국 쫓겨나는 사람들도 보고, 코로나로 인해 숨진 손님도 있고, 일이 끊기면서 처음엔 어떻게 스티뮬러스 첵, 그러니까 긴급재난 지원금과 대책으로 살아가다가 그것마저 끊어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시애틀 시로 들어서는 곳곳마다 서서 구걸하는 이들을 보면, 지금 이 시대가 21세기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시애틀 시에선 이 판데믹이 일어나기 전 대대적인 개발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개발 사업들은 필연적으로 지대의 상승을 가져왔고, 그것은 세금의 인상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건물주들은 오른 세금을 입주자들에게 부담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고, 그 결과 시애틀의 임대료는 엄청난 폭으로 올랐습니다.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한 달 임대하는 돈이 평균 2천달러를 웃돌았으니 말 다 했지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의 모기지 페이먼트보다도 더 많은 돈을 임대료로 내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시애틀은 매력 없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이런 상황을 조금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판데믹 이후 시애틀 지역의 아파트 임대료는 16% 정도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렌트를 내지 못해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은 계속해 늘어났고, 시에서 퇴거 금지령을 내렸지만 그 기한이 지나자 갑자기 집에서 쫓겨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걸 일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손을 내미는가 하는 것, 저는 그것이 정치의 본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라는 이가 4선 대통령이 됐던 건, 그가 미국이 가야 할 방향, 무엇보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온 것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의 편중을 막기 위해 부자들에게 엄청난 세금을 걷었고, 그것을 뉴딜이라는 정책을 통해 미국 사회가 지금까지도 잘 사용하고 있는 인프라들을 조성하며, 이 작업에 필요한 재원들, 특히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인건비를 이렇게 엄청난 세율로 부자들로부터 걷은 세금으로 마련한 겁니다. 자본주의가 유연성을 띠며 교조화되지 않은 덕에, 미국은 그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지요.

코로나 판데믹은 마치 대공황 때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이런 파격적인 정책을 생각하며 미래의 경제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아무튼 전 세계 자본주의는 그 대공황 때 이후처럼 사회주의적 발상을 끌어다가 이번 위기를 어떻게든 넘기고 있습니다. 그건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처음에 전 국민을 상대로 재난지원금 보편지급을 했지요.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성공한 사회주의'적' 정책 아닙니까?

문제는, 이런 것들이 앞으로도 계속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제 세상의 패러다임이 바뀐 거지요.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만들어 낸 건 바로 이 바이러스인 셈입니다. 그 바이러스로 죽은 사람들도 많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의 무한경쟁 패러다임도 판데믹에 의해 죽은 거라는 사실을, 우리가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홍남기 부총리의 선별지급 논리는 말 그대로 '교조적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그의 경직된 사고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때인데... 교조주의는 누구에게나 해악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주의도 교조주의 때문에 망했고, 자본주의도 이 교조주의 때문에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홍남기도 알아야 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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