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청춘을 되 살려 볼가요? ...이화여대 휴전선경비장병 위문공연 ..1967년 백골사단

오인동 칼럼 | 기사입력 2021/02/01 [06:09]

50년 전 청춘을 되 살려 볼가요? ...이화여대 휴전선경비장병 위문공연 ..1967년 백골사단

오인동 칼럼 | 입력 : 2021/02/01 [06:09]

 

                                               아듀!   DMZ 

 

 

  

                                                오 인 동 (吳 寅 東)

 

 

                                                      Indong Oh, M.D.

 

                                                    drioh5@gmail.com

 

                                                    전화 626-200-6484

  

                                                    Pasadena, CA, USA 

 

 

 1967년 군의관으로 강원도 철원 휴전선경비 육군3사단 23연대에서 1년 복무하고 다음해 후방 춘천 80 병기대대에서 쓴 복무수기를 군사정부시절,발표할 수는 없었다. 1991년 월간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 보내니 본선에 올랐으나 당선이 되지는 못했다. 그때도 군사정부 시절이었다. 

 

50여년뒤 오늘, 2020년 코로나로 집콕하며 쌓여온 글과 사진들을 정리해 버리는 작업 중 보게된 수기 중 11장. <이화여대 휴전선경비장병 위문공연>을 보며 당시 이화여대 학생회장 지은희(전 여성부 장관-덕성여대 총장)에 보내니 곧 답신이와 그때를 함께 되돌아 봤다.그 시대를 함께한 가까운 인연들과도 함께 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2021년 1월: 53년 전 옛날을 되돌아보며.                  

 

 

 

       아듀!  DMZ

 

 

 

       차례                                                     2

 

       글 머리에                                               3

 

       1.  올챙이 의무대장의 끗발                         5

       2.  걸어가는 후송환자                                9

       3.  사격대회의 명중보장약                         13

       4.  군대 의사, 무의촌 의사                          17

       5.  무엇을 위한 신체검사인가?                     20

       6.  가야 할 머나 먼 길                                23

       7.  낙원과 지옥                                         28

       8.  검열의 허와 실                                     32

       9.  장교들의 미제 방한모                            36

      10. 후송가는 고문관들                                 41

      11  이화여대 휴전선경비장병 위문공연            46

      12. 1.21 사태로 취소된 빙상대회                    53

      13. 떠나는 지휘관, 돌아오는 고문관들              57

      14. 아무것도 헛됨은 없어라                           61

      15. 반도의 허리에 쳐지는 쇠고리철조망            66

      16. 피와 땀과 눈물의 노역                             69

      17. 아듀! DMZ                                            73

      글 뒤에                                                     75

      맺는 말                                                     76

 

 

  

 

                이화여자대학교 문리과대학 지은희 학생회장 - 23연대 부연대장에 위문품 전달

                휴전선(남북전쟁 철의 삼각지 철원지역)경비 육군 3사단 23연대 장병위문단

                          1967년 12월 29일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 5군단극장  

 

 

                            왼쪽:오인동 중위.- 위문단장 지은희 앞줄 바른편에서 3째

 

 

                               위문단원과 23연대 장교들  - 이삼희 대령: 앞줄 중앙

 

         

 

                              11. 이화여대생들의 최전방장병 위문공연

                                       - 육군3사단 23연대 철원 경비부대–

  

1967년 12월 첫 토요일, 이때쯤이라 생각해 왔던 날이다. 그동안 휴전선경비 1중대에 파견되었던 고참 최 병장과 김 일병이 돌아왔고, 고정탱크와 장벽저장고에서 안 병장, 윤 일병, 그리고  2중대의 안식교 신자 장 상병과 모 일병도 교회에 가기 위해 의무대로 들어왔다. 고문관(군 복무 부적격 병사) 색출과 후송준비에 온힘을 쏟았던 위생병들과 뿔뿔이 흩어졌던 의무대원들이 두 달만에 함께하게된 날이다. 나는 이 상사, 보좌관 정 소위와 운전병을 포함한 전 의무대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잔치판을 마련했다.

  

막걸리에 안주거리와 과자를 내무반에 푸짐히 싸놓고 그간의 피로를 마음껏 풀도록 했다.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고 놀고 싶은만큼 밤 새워도 좋다고 했다. 그날 밤 의무대는 노래와 춤과, 숟가락 젓가락으로 양은 식기와 밥통을 뚜드리며 장단 맞추는 소리로 떠나가는 듯 했다. 모두 한데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최 병장의 기타 반주에 함께 부르는 유행가며, 김 병장의 목 따는 노랫소리, 저마다의 장기를 보여준 그들은 고참도 신참도 계급장도 잊은 듯 모두 신나게 판을 이어갔다. 

 

의무대 잔치에서 신나게 놀던 위생병들을 본 뒤, 가장 힘들게 훈련받고 고되게 작업하는 보병병사들에게 일년에 한번 있는 휴가 이외에 복무의욕을 북돋아 줄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래디오에선 성탄절이 가까워지며 크리스마스캐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리 병사들에게도 흐뭇한 년말과 신나는 새해를 맞게 해 줄 뭐가 없을까 막연히 생각하던 중, 문득, 떠오른 위문공연단! 신문과 방송에서 보고 들어온  국군장병위문행사는 바로  우리같은 최전방 DMZ(비무장지역)경비부대가아닐가? 그렇다! 위문공연단을 초청해 보자. 이 부대 고참 이 상사에 물어보니 위문단이 온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문득, 대학시절부터 함께해온  경자의 동생 경희가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학생회 부회장이다.

              " 이화여대 휴전선경비장병 위문단 - 철의 삼각지 23연대로! "

와아 ~, 퍼뜩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상상의 날개는 한 없이 퍼져 나갔다. 부닥쳐 보자!

 

경희가 겨울 방학 중 학생회 활동 중에 국군장병 위문도 끼어 있단다.

"그럼 어디로?” ….. "학생처에서 정했는데 공군00부대로 가게 될 것 같아요."

서울교외에 있는 신문에서 가끔 본 공군의 본 보기 같은 부대이다.

"그래~?  서울에 있는 그런 부대에 구태여 위문이 필요할까?

위문하려면 북방 정전선을 지키는 최전방 휴전선DMZ경비부대로 와야 진짜 위문이 아니겠어?" 

하지만 어느 부대, 어떤 수속을 밟아야 되는지도 몰라 학교에서 정해주는 대로 하려던 참이라 했다.

마음에 품고 온 얘기를 다 털어 놓았다. 그녀의 눈빛이 밝아지고 있었다.

"그럼 임원들과 의논해 보고 알려 드릴게요."

 

11월 하순 이래 눈에 덮힌 우리 제1대대  중대막사 옆의 의무대 라디오에서는 안 상병이 즐겨 부르는 쟈니리의 "뜨거운 안녕"이 흐르고 있다. “ 또 다시 말해 주오 사랑하고 있다고 .......'’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위문단이 와 주었으면 하는 기대는 더욱 커졌다. 한편 정작 온다면 위문단을 어떻게 데리고 오고 또 공연은 어디서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니 덜컥 겁도 났다. 또 위문단은 온다는데 우리부대가 받을 수 없다면?  어서, 잠깐 기다리라고 해야하나? 

“…..기어이 가신다면 보내드리리…..”   

안 상병은  더 애절하게 절규하고 있다.  속만 바짝바짝 타는 며칠 이었다.

  

12월 21일, 전보 한 장!      <위문 감, 그 곳 여부 의논차  21일 7시 소공동 남지다방, 경희>

와아! 윷 가락은 던져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깊은 숨 쉬고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조대균 대대장에게 그 동안의 일을 말하니 조 중령은 놀라움과 신기함을 감추지 못하면서 곧 전화로 연대장에게 보고했다.  대대장의 짚차로 연대본부로 달렸다. 참나무 토막이 은은히 타고 있는 난로 열기 따스한 연대장실, 잔잔한 미소를 띤 이삼희 대령은 궁금한게 한 둘이 아닌 듯 했다.

  

 " …..  년말에 전방부대로 장병위문단들이 온다고 알고 있었는데 ……......"

"으음, 오 인동인 달라. 다르단 말이야" 연대장은 나를 오 중위나 군의관이 아니라 항상 내 이름을 불렀다.

“연대에 부임했을 때부터 느꼈었지. 그 비틀족 같은 머리…, 사격대회 때 엉터리 '명중 보장약' 작전 ....., 흐으음, 명문 이화여대생들이 우리연대 장병들을 위문하러 온다는 자체가 사건이며 큰 영광이지.  

오. 인. 동 !  뒤는 내가 다 지원할 테니 어서 서울 다녀오게"

  

그 날 이후 나의 생활은 청아골과 서울을 왕래하는 시간과 거리의 숨바꼭질이었다. 이화여대로 찾아가 지은희 회장과 임원들에게 중부전선 최전방 철원의 육군 백골 제3사단 23 연대로 위문을 결정해 준데 대해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질 휴전선 경비부대 장병위문은  여러분의 기억에 오래 오래 남을 아름다운 추억이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날자를 정하고 공연내용을 협의했다.

  

한편, 위문단을 맞게될 우리 연대도 바빠졌다. 위문단 수송, 위문 공연장, 음악밴드 준비, 위문 날의 장병 재배치 및 이동, 위문단원들의 식사 등등 할 일이 많았다.  그 준비에 시달리던 간부 장교들은,

 "오 중위, 군의관이 갑자기 정훈장교라도 됐나? ….여대생들 온다고 마음만 들뜨게 해 놓고….."    

 "방금 기동훈련이 끝나 좀 쉴까 했는데?"    한 마디씩 하는 건 분명 진반 농반 이었지만 나는,

 "이봐, 오죽하면 군의관이 이런 일을 할라고? 그래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사병 복지가 하늘에서 떨어지나 아니면 사기앙양이 땅에서 솟느냐 말이야? "

 " 어.., 이거 왜 이래? 한마디 해 본 건데 흥분하지 마시오, 하하......"   

 

마지막 단계로 위문단원들의 공연연습장에 들려 우리 '23연대가'와 보병이 가장 즐겨 부르는 군가의 

악보를 건네주었다. 음감이 빠른 단원들은 생전 처음 불러보는 투박한 군가를 피아노 반주에 따라 어렵지 않게 소화해 냈다. 공연연습을 참관하고 교정을 빠져 나왔다. 상점 유리창 마다 네온불빛이 휘황했고 삼삼오오 걷고 있는 청춘남녀들의 물결 속에 징글벨 음악이 흐르고 있다. 이런 모습들은 두껍게 눈 덮인  전선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북적대는 서울을 뒤로하고 청아골 가는 한산한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12월 29일 이른 아침, 선도 찦차와 디젤트럭 두 대는 추운 대기를 뚫고 미아리 고개를 넘어 북으로 달렸다. 인솔교수를 찦차에, 20여명의 위문 단원들은 천막으로 뒤 칸을 씌운 야전군 트럭에 탔다.

 악기와 녹음기와 무대 의상들은 위문품과 함께 뒤 따르는 트럭에 실었다. 그런대로 수학여행 갈때 같은

 기분들로 노래 부르며 달리는 트럭 속에서 오늘의 일정을 설명해 주고 위문단원들과 함께 가사를 외울 겸해서 '23 연대가'와 육군 군가 '진짜 사나이'를 씩씩하게 불러 제꼈다. 

 

의정부를 지나고 운천을 지나 계속 북으로 올라가니 기온이 더 떨어졌고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서는 차가 몹시 흔들리고 몸은 얼어만 왔다. 열어 놓은 트럭뒤 천막문으로 빨려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으려고 닫았더니 속은 어두워지고 추위는 달라지지 않았다. 노래하던 단원들의 입은 더 이상 열릴 줄 몰랐고 담요로 덮고, 쓰고, 부둥켜안고 발도 굴러봤지만 몸은 얼어 오기만 했다. 이 겨울 아침에 군대 버스도 아닌 야전용 트럭에 여학생들을 태우고 전방으로 몇 시간을 달려가겠다고 계획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위문은커녕 이러다간 부대 도착 전에 모두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나는 선도차에 연락해 차량을 모두 세웠다. 트럭바닥에 깔았던 가마니를 밭 위에 펄쳐 놓고 디젤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훨훨 타오르는 모닥불 주위로 모두들 바짝 다가가 언 몸을 녹였다. 따스한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다시 북으로 휴전선을 향해 달려야 했다. 

 

11시 좀 지나, 문혜리 5군단 군인극장에 도착해 출연자 준비실로 들어갔다. 장병들은 설자리도 없이  극장을 메웠고 사단본부에서 나온 군악대장 백 소령의 컴보밴드는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무대감독이 된 것처럼 무대 앞뒤를 왔다갔다 하며 진행을 도왔다. 갑작스런 휴전선의 상황변화로 연대장님은 DMZ로 나가셨다고 했다. 부연대장이 위문단에 환영사를 했고 애교있는 눈 웃음을 띈 지 회장이 답사를 하고 병사들 위해 준비해온 위문품  서류를 전하고 장교들에게는 이화여대의 교표가   인쇄된 손수건을 건넸다. 그동안 분장을 마치고 무대의상으로 바꿔입은 그녀들은 얼만 전, 추워떨던 여대생이 아니라 모두 아름다운 기성배우요 가수로 변했다. 

 

백 소령 밴드의 반주에 따라 지은희 위문단장이 씩씩하게 하낫, 둘 셋의 구령에 따라 전 위문단원이 선창하는 '선조 단군을 빛나게 하는 …..' 으로 시작하는 <23연대가>로 막은 올랐다. 이 여대생들이 어떻게 우리 연대가를 아는가 하고 장병들이 어리둥절해 하더니 2절부터는 위문단장의 지휘에 따라 장병이 모두 일어서서 함께 노래했다. 무대위 위문단원들과 극장 안 병사들의 열기는 시작부터 화끈해 졌다. 크리스마스 캐롤, 민요, 희극적 가사로 바꿔 부르는 대중가요, 고전무용, 4중창, 그리고 연극의 순서로 프로는 진행되었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학생회 지 회장이 무대에 나와 느닷없이, 

 

"여러분! 지금부터 여러분들 중에서 10명을 뽑겠습니다. 행운의 당첨자들에게는 다음 주부터 10일간의

휴가가 주어질 겁니다. 그러나....  그러 ?//?? ...." 와아- , 와아- !” 극장이 떠나갈듯한 함성에 지 단장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부연대장은 멍했고 나는 더 더구나 놀랐다. 이건 각본에 없는 일이다. 환호하는 병사들을 진정시키고 지 단장은 이것은,

 

"미리 계획된 일이 아니어서 연대장님은 모르십니다. 다만 우리가 여러분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입니다."

 들떴던 장내의 흥분이 잠시 가라 앉는 듯 했다. 그러나 지 회장은 계속해서, 

 "부하를 사랑하시는 연대장님께서는 저희들의 제의를 꼭 들어 주실 것으로 굳게 믿습니다.”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오며 장내가 시끌벅적해 졌다. 벙벙하게 무대에 오른 부 연대장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었지만 어쩔 수 없어 우선 허가한다고 하니 장내는 다시 물 끓듯 소란해 졌다. 행운의 병사들이 단원들의 손으로 뽑혀 무대 위에 오르면 단원과 뽑힌 병사는 축하와 감사의 악수를 교환했다.  공연은 다시 계속되었고 사회자가 노래 부를 병사는 무대에 올라오라 하니 한꺼번에 여럿이 무대 위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위문단원과 함께 노래를  해 나갔다. 여자가 남자역까지 분한 단막희극을 끝으로 위문단원과 병사들이 일치되어 부르는 군가 ‘진짜 사나이’의 노래 속에 공연의 막은 내리기 시작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  " 

 

연대 장교식당에서 그녀들은 생전 처음 먹어보는 군대식사를 마치고 휴전선으로 향했다.  DMZ 경비로 극장에 못 온 병사들을 현지에서 위문하기 위해서였다. 위문단 전원을 싣고 갈 적당한 차량이 없어 절반의 단원만 찦차와 의무대 구급차에 탓다. 지난 가을, 형식적 검열 뒤의 허탈감에 구급 찦차 운전병을 제치고 혼자 몰고 갈대숲을 달렸던 새나라 들판은  눈 속에 고요히 잠자고 있었다. 우리 위문단은 또 북으로, 휴전선으로 향했다. 

 

남방 한계선 목책선 곁에 짙은 색안경을 끼고 검은 가죽장갑에 은색 지휘봉을 든 이삼희 대령이 단원들을 맞이했다. 그는 저 건너 북 인민군경비초소를 가리키며 이곳의 지형과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단원들이 곳곳에 세워 논 망원경으로 북쪽을 들여다 보다가 인민군 병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멈칫 놀라 눈을 떼고, 철조망을 만지며 감회에 젖는 단원들. 그렇다, 이곳이 바로 남과 북을 갈라놓고 동족끼리 반목하며 서로 두려워 하고 있는 1953년의 정전경계선이다. 위문단원들은 두툼한 방한복장에 총을 거머쥔 경비병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지하벙커에 모인 병사들에게 빵과 위문품을 나눠주고 장병들 앞에서 흥겨운 노래로 그들을 격려했다. 차가운 해가 서산 마루에 질 무렵 우리는 연대장을 선두로 꽁꽁 얼어붙은 한탄강을 건너 남쪽으로 향했다. 

 

위문단원들은 연대장실 난로를 둘러싸고 몸을 녹였다. 이어서 벌어진 환송연에서 지 단장은 이 연대장에게 미리 의논도 없이 휴가자를 선발한 경위를 설명하고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이 여대생에게 어찌 저렇게 기발하고 담대한 착상이 떠올랐는지 놀랄 뿐이었다. 참석자들의 시선이 모두 이삼희 대령에 쏠렸다. 생각에 잠겼던 연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오늘 여러분은 가장 적절한 때, 가장 필요한 대상에, 가장 큰 위문을 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위문단장에게1일 명예연대장의 권한을 부여합니다! "

 

위문단원 모두가 박수로 환호했다. 이삼희 연대장은 백골 사단장의 감사장을 위문단에 전했다. 그리고,

이화여대의 휴전선경비장병위문은 3사단 전체의 부러움이 되었고 우리 연대에는 영광이었다고했다.  

지은희 회장과 장경희 부회장은 큰 벽거울을 연대장에 선물했다.

 

                      "축 발전 23연대.  이화여대 장병위문단   1967년 12월 29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단원들이 노래 몇 곡을 불렀다. 이번엔 나보고 노래하라는 단원들의 성화에 답해,

"오늘 이 춥고 황량한 야전지로 여러분을 유혹해 온 저를 용서하십시오. 

여러분을 맞은 이곳 장병들은 오늘, 전에 없던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휴전선 경비부대를 찾아온 여러분도 긍지와 보람을 느꼈을 줄로 압니다. 

 이곳 중부전선의 정전선 경비부대 장병들에게 들려 준 노래, 보여준 춤들은 

병사들의 가슴에 따뜻한 체온으로 오래 ~ 오래 간직될 것입니다."

  

      이별의 시간이 됐다. 지 단장이 일어나며 이 연대장의 손을 잡고 이별가를 선창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손에 손 잡고 ……,   ".... , 오늘은 떠나지만 내년에 또다시,  안녕히 안녕히, 이십 삼 연대[I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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