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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를 읽고...

정인대 칼럼 | 기사입력 2021/04/04 [07:08]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를 읽고...

정인대 칼럼 | 입력 : 2021/04/04 [07:08]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이 경향신문의 토요 고정 칼럼 '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에 4월 3일자로 기고한 "권력을 쥐고 돈까지 갖고 싶었던 '586'의 시대는 종말로 향하고 있다"를 읽고 그의 '언어의 향연' 일부를 소개합니다. 칼럼니스트 박성민은 정치 관련 책을 많이 읽고 저술도 많이 하고 있는 정치계의 지성입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현재 정치 컨설팅 분야에서 최고의 상징적 위치에 있음에도 자신의 판단과 의지, 개념을 직접 언급하는 대신 일반인들은 누구인지 모를 사람들의 언어를 차용, 우회적으로 장식하고 있음이라 하겠습니다. 정치와 경제를 넘나들 정도의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박성민의 기고문 중, 기억하고 싶은 단어와 문장들을 소개합니다.

 

 

                          지난 3월 30일, KBS 초청 서울시장 후보 토론회에서 박영선 후보와 오세훈 후보의 인사

 

'민주화 엘리트'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학생운동권의 지도부였던 일부 엘리트들은 20대부터 엄청난 상징 자본을 얻었다. 그 후 30년 이상 정치적 엘리트의 삶을 누렸던 그들의 시대가 종말을 맞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화 엘리트의 페르소나가 벗겨진 것은 아이러니다. 역시 역경을 이기긴 쉬워도 풍요를 이기긴 어려운 것인가.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2011년에 <강남 좌파>라는 책에서 강남 좌파 논쟁의 본질은 '이념'이 아니라 '엘리트' 논쟁이라고 날카롭게 통찰했다…강남은 모두가 갖고 싶고, 닮고 싶은 세련된 매력을 상징한다. 학벌, 부, 권력을 모두 가진 사람이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순간 '강남 좌파'라는 이 시대 최고의 상징 자본을 손에 넣었다. 

 

통찰은 부족하고, 성찰도 없으니 '현찰'만 쫓는 게 586 엘리트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 강남 좌파든, 강남 우파든 이념이 아니라 대한민국 0.1%의 엘리트가 사는 방식이 문제의 핵심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까지만 해도 '깨끗하지만 무능한 진보'와 '유능하지만 부패한 보수'의 프레임이 작동했지만 지금은 둘 다 무능하고 둘 다 부패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사랑하면 행복하고 못 가진 것을 사랑하면 불행하다"는데 보수·진보를 떠나 엘리트의 불행은 '못 가진 걸 사랑한' 욕망 때문이다. 이명박은 피에르 부르디외가 <구별 짓기>에서 말한 '아비투스'를 위해 돈, 권력, 도덕 순으로 ‘상징 자본’을 얻으려 했다. 그는 물질적 권위에 만족하지 않았다. 도덕적 권위도 갖고 싶었다. 

 

오늘날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부를 축적한 젊은 기술자들이 사상가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돈이 많고 기술을 이해한다고 지혜가 더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진리로 받아들인다. 다니엘 부어스틴이 <이미지와 환상>에서 통찰한 대로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진다"고 믿는 시대다. 

 

'586 민주화 엘리트'들은 이명박과는 반대로 도덕, 권력, 돈의 순으로 상징 자본을 쟁취했다. 그들 역시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지 못한 것에 집착했다. 이미 권력, 정의, 명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돈마저 갖고 싶었다. 지지자들은 부패의 상대적 크기로 옹호하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도덕을 상징 자본으로 정치를 했기 때문에 그건 일종의 사기죄다. 

 주화 엘리트가 걸어온 길을 오구라 기조의 기준으로 보면 '286'은 재야의 선비였고, '386' '486'은 개혁적 사대부였으나 '586'은 타락한 양반이다. 도덕적 쟁투에서 이기면 모든 것을 얻고, 지면 모든 것을 잃는다. 민주화 엘리트들이 '적폐 청산' 같은 도덕적 슬로건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지난 3월 31일, 부산 CBS 라디오 초청 토론회에서 김영춘 후보와 박형준 후보의 인사

 

586 민주화 엘리트들은 무능·위선·부패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재야의 선비'도 아니고, '개혁적 사대부'도 아니다. 그저 돈과 자리만 탐하는 '타락한 양반'일 뿐이다. 정치는 비즈니스가 됐다. 제사장과 선지자의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도 모두가 돈과 권력을 찾아 부나방처럼 날아든다. 모두가 '업'에는 관심 없고, 오직 '직'에만 눈독을 들인다. 

 

정체성이 약하니 윤리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다. 이미 오래전에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는데도 아직도 개혁의 주체인 양 행세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민주화 엘리트들의 약속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정신적 권위의 몰락과 민주주의 시스템의 붕괴로 돌아왔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지식인, 언론, 시민운동가, 학자들은 침묵을 넘어 부끄러움도 없이 어용과 사쿠라를 자처한다. 극단적 진영 정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유감스럽게도 세계가 우주 이주를 말하는데 우리는 100년 전 토착왜구와 빨갱이 타령이다. 미래에 대한 통찰도 없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으니 과거를 놓고 싸운다.

 

역사학자 E H 카는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고 했는데 LH 사태는 이미 널리 퍼진 유증기에 불을 붙였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년 동안은 야당이 정권을 비판하면 "다 맞는 말인데 당신들이 할 말은 아니지"라는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이 지금은 국민의힘 오세훈·박형준을 비판하는 민주당에 그 말을 그대로 돌려준다.​

 

에토스가 무너지면 로고스, 파토스도 힘을 잃는다. 메신저가 신뢰를 잃으면 메시지는 들리지 않는다. 앨버트 허시먼은 <Exit, Voice, and Loyalty - 이탈, 항의, 충성>에서 기업이나 조직, 국가가 퇴보할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연구했다. 조직이 싫으면 남아서 항의하거나, 떠나거나, 아니면 충성하거나 셋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선거는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대안을 찾아 이탈하고, 대안이 없더라도 기권함으로써 투표로부터 이탈할 수 있다. 2017년에는 중도보수가 보수 정당으로부터 이탈했는데 지금은 중도진보가 민주당을 떠나고 있다. 적극적 정권 심판론에 (민주당으로부터 이탈한) 소극적 정권 견제론이 가세하고 있다. 

 

읍소와 투표 독려로 되돌리기 쉽지 않은 형국이다. 지난 총선 압승으로 '주류 교체 전쟁'에서 결정적 승기를 잡은 듯 보였던 민주당이 불과 1년 만에 상징 자본을 다 잠식당하고 다시 광야로 내몰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4월 7일 누가 승자가 되든지 그 결과가 내년 대선의 결과를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주류 권력을 향한 새로운 도덕적 쟁투가 시작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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