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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미얀마 사태에 대한 제3의 입장’ 매일노동뉴스 ‘김승호의 노동세상’

문해청 | 기사입력 2021/04/09 [10:01]

[조명] ‘미얀마 사태에 대한 제3의 입장’ 매일노동뉴스 ‘김승호의 노동세상’

문해청 | 입력 : 2021/04/09 [10:01]

  

 

▲ 독립한 미얀마(버마) 연방이 공산주의게릴라와 소수민족의 봉기 등으로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게 되었다. 1962년 네윈이 주도가 된 군부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지금까지 군부통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네윈의 통치는 미얀마(버마)를 국제사회에서 외톨이로 만들었다. 1988년 8월과 9월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미얀마(버마) 군부는 유혈 진압을 하게 되고, 이때 무려 1천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이 저항운동이 1988년 8월 8일 일어났기 때문에 8888 시위라고 부르고 있다.

 

[국민뉴스=문해청 기자] 김승호 대표(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는 5일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인간의 생명, 사회제도 양면을 두고 북녘 남녘 분단 된 노동현실에 과연 어떤 입장을 갖고 노동자가 연대해야 할 것인지 ‘미얀마 사태에 대한 제3의 입장’을 밝혔다. 

 

미얀마 사태를 둘러싸고 민중운동 안에 입장이 분열돼 있다. 한쪽은 문제를 단순하게 봐서는 안 되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한쪽은 복잡할 게 없다, 단순하게 보면 된다고 말한다. 한쪽은 미얀마 군부를 쿠데타 세력으로 규정하고 아웅 산 수치의 민주화운동 세력과 적극 연대한다. 다른 한쪽은 아웅 산 수치는 제국주의의 대리인이라고 판단하고 이들과의 연대에 소극적이다. 

 

우리에게 미얀마라는 말보다 버마라는 말이 익숙하다. 필자는 태백산맥 동쪽 해안지방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어느 날 라디오를 켰는데 이북 방송이 흘러나왔고 이북과 ‘비르마’ 간의 축구가 중계되고 있었다. 당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비르마’가 도대체 어느 나라인지 궁금했다. 

 

이 버마가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살인마 전두환이 이 나라를 방문했다가 국부 아웅 산 묘지에서 폭탄테러를 당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돌아온 사건을 통해서다. 그 정도로 우리는 이 나라에 대해 아는 바가 적다. 

 

이런 나라에서 일어난 정치적 충돌을 단순하게 보는 게 맞는가 복잡하게 보는 게 맞는가. 단순하게 봐야 하기도 하지만 복잡하게 봐야 할 필요도 있다. 정치군부가 부정선거를 구실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저항하는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있으므로 이는 군부쿠데타임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단순하게 보라는 말에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전개되는 정치는 나라 이름을 미얀마로 부를지 버마로 부를지를 놓고 분열돼 있을 정도로 복잡하다. 

 

1988년에 거대한 반독재 민중항쟁으로 최고 권력자 네 윈이 2선으로 물러난 가운데 새로운 군부독재정권이 등장했다. 1989년 이 군사정권은 ‘버마’라는 호칭은 영국 식민지시대의 잔재인데다 버마족 외의 다른 소수민족을 아우르지 못했다면서 135개의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명칭인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 국호를 변경했다. 

 

현재도 민주화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군사정권에서 붙인 국명인 미얀마와 현 국기를 거부하고 버마라는 호칭과 옛 국기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영국 정부 등도 반체제 인사들의 예를 따라 버마라고 부르지만 미얀마 정부의 항의가 이어지자 미얀마와 버마를 혼용하고 있다. 2003년 아웅 산 수치는 방한 중 대한민국 취재진들에게 국명을 ‘버마’로 표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등등. 

 

이에서 보듯 나라 이름과 국기에 대해서까지 대립하고 있는 이 나라의 분열에는 단순한 정치체제상의 민주와 군사독재 문제를 넘어 국가 정체성 문제가 걸려 있다. 

 

그런데 사태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인터넷 신문 ‘민플러스’는 지난 2월23일 ‘[긴급진단] 미얀마 사태에 대한 고찰 - 단순한 반독재 민주화 시위로만 볼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는데, 이 글은 과거의 군부독재에 대해 변호하는 입장에 서 있을 뿐 아니라 사실관계를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 

 

이 글은 1962년 군부쿠데타 이후 들어선 네 윈 군부독재 정권에 대해 사회주의 정권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네 윈을 정점으로 하는 정권과 체제는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사회주의 정권이라면 어째서 공산당을 적대시하는가. 미얀마 군부는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소수민족 분리독립 투쟁 제압과 더불어 공산당 척결을 자신의 사명으로 설정했으며 이것을 자신의 권력독점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네 윈 정권 시절의 사회경제체제는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아니라 군부관료가 주도하는 국가자본주의 체제였다. 박정희의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사회주의가 아니듯이 네 윈 체제도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은행과 주요 산업을 국가가 소유하고 통제한다고 해서 사회주의는 아니다. 

 

다만 국내적으로 사적 독점자본을 육성하지 않았다는 점과 영국·인도·중국 같은 외국자본을 축출하고 국제관계에서 반제국주의와 비동맹 노선을 취했다는 점에서 박정희 체제와는 달리 진보적 측면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다. 

 

▲ 미얀마 횃불행진 집단시위



그러나 이런 긍정적 측면들이 있었음에도 군부독재 세력은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민중의 힘에 의거하지 않고 거꾸로 위로부터의 억압적 국가기구의 힘에 의거했다. 이런 반민주적 성격은 민중의 거부와 저항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저항의 대표적인 예가 1988년의 혁명적 봉기였다. 네 윈 체제는 사회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니었다. 그저 반제국주의·반외세 민족주의 체제였다. 이런 체제가 정당성과 효율성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80년대 말에 실패했고 그 국가자본주의 체제마저 점차 해체됐다. 그런데도 군부독재의 잔재는 온존하고 있다.

  

그러면 버마 민주화운동 세력은 어떤가. 국내 언론이나 정치권은 거의 다 아웅 산 수치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을 정치군부에 대한 대안세력으로 전제하고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 또 미국 주류 언론이나 정치권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 이 지점에서 조·중·동과 한겨레·경향이 다르지 않다. 

 

군부 쿠데타에 대해 저항하는 자유주의 세력은 대안세력으로 지지할 만한가. 서방세계가 군부의 대안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이 세력은 우리나라에서 김영삼이 민주화 투쟁 당시 그랬듯이 미국 민주화기금(NED)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들은 한국처럼 미·영 제국주의 국제질서에 수직적으로 통합되는 속에서의 자본주의 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정치를 추구한다. 

 

한국의 자유주의 정당과 꼭 같다. 그러므로 진정하게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이나 정치세력 또는 운동세력이라면 리비아 사태, 시리아 사태, 베네수엘라 사태 때와 같이 미 제국주의가 퍼뜨리는 편향된 뉴스나 주장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미얀마에는 아웅 산 수치나 그를 추종하는 친자본 세력과 달리 착취당하고 억압받고 있는 노동자·민중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은 급진민주적이고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지향을 갖는다. 이 나라의 진정한 대안인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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