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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시인 이적 목사, 종미 예속 백성 거부, 항미(抗美)의 한길

문해청 | 기사입력 2021/05/13 [00:10]

반미시인 이적 목사, 종미 예속 백성 거부, 항미(抗美)의 한길

문해청 | 입력 : 2021/05/13 [00:10]

  

▲ 故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이적 목사 젊은 시절

 

“북녘 남녘 해외 1억 겨레가 힘을 모아 자주통합조국을 우뚝 세우자” “일어나자 휴전선 가서 북조국도 바라보고 남조국도 바라보고 힘을 돋우자” “밭에 가서 굉이질도 해보자” “미제의 승인 5공 학살투쟁 깃발도 다시 들자” 

 

촛불민중항쟁 성과로 출발한 문재인 민주정부가 6. 15 정상회담 실현을 위해 북녘 남녘 정상회담 및 북미정상회담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허나 한미워킹그룹에 발목 잡혀 통일실천은 한계를 보이자 공약불이행 경고로 북남연락사무소를 북녘에서 폭파했다

 

 

[국민뉴스=문해청 기자] 북녘 남녘 정치적 긴장관계가 고조 되는 가운데 미국 국방 강성 군수복합체 독수리 비호 아래 ‘불 난 집에 화약을 터트리는 형국’의 북녘 침략 심리전쟁수단 고무풍선선전물(삐라)을 반북단체 박상학 씨가 살포했다 북녘 지도부가 나라존립의 자존감을 짓밟는 만행으로 규정하고 응징할 것을 공포했다. 

 

▲ YTN방송 대북전단 살포 토론회 이적 목사(민통선평화교회) 박상학 대표(자유북한운동연합)


 

대북전단살포 반북단체 박상학 씨(이하 박 씨)와 반미시인 이적 목사(이하 이적 목사)가 YTN방송에 출연했다. 이를 이적 목사 SNS 정보관계지원통신망 페이스 북에 밝혔다. 

 

「박상학론」

 

박상학을 처음 만난 것은 이명박 정권 때이다 이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민통선에 출몰하여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을 띄웠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그 위용을 자랑했다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대북전단 살포반대 투쟁위>>를 결성하여 직접 그들을 저지키로 했다 반미 시인 이적 목사와는 그때부터 인연이 되었다. 

 

대북전단 살포현장에서 경찰은 지켜만 볼뿐 전혀 저지 하지 않았다 이적 목사 대북전단 살포 반대팀과 박상학 반북팀이 몸싸움이 벌어지면 말리는 역할만 했다 박상학은 욕을 잘했다 “빨갱이 새끼들”은 점잖은 욕이었고 위아래 구분도 없이 마구 우리를 향하여 욕설을 퍼부었다. 

 

▲ 박상학 대표(자유북한운동연합)



박 씨는 심지어 봉고차차량 지붕위에 올라가 길을 막고 있는 경찰을 향하여 “이명박 개새끼가 시켰냐”고 당시 대통령을 향하여도 욕설을 퍼부었다 이적 목사는 그때서야 저자(박 씨)의 뒷배는 미국임을 깨달았다 미국의 ‘슈쟌솔티’는 자주‘판문각’에 나타났고 ‘박상학’에게 기금 전달식을 하곤 했다 우리가 야유를 퍼부으면 박 씨는 당당하게 욕설을 퍼붓곤 했다. 

 

박 씨는 자기들의 과업(대북전단 살포)을 막는 이적 목사를 제 1방해자로 지목하여 내게 죽일 듯이 으르렁 거렸다 그들(박 씨 반북팀)은 일시를 정하여 대북전단 살포를 하겠다고 언론에 알렸다 그러면 대북전단 살포 반대팀 이적 목사 등 경기지역의 민중이 찾아가 그들(박 씨)의 살포를 방해 했고 막는 때도 있었고 그들의 추적에 실패하는 때도 있었다. 

 

이적 목사는 어떤 때는 경찰이 그들을 도와주는 때도 있었다 박상학 저자가 앞으로 큰일 낼 자라는 것을 현장에서 깨달았다 미국을 뒷배로 하여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며 그 때를 회상했다. 

 

이적 목사는 한 번은 YTN방송에서 ‘대북전단 살포 찬성 반대 토론’이 있었다 그때 방송 마치고 나면 두들겨 패 버리라 작정하고 장정동지들 몇 명을 데리고 갔다 그때 혼자 있는 박상학이 너무 얌전하였다 키도 작고 덩치도 주먹만큼 작았다. 고 했다. 

 

그 당시 방송 대기실에서 장정들과 기다리고 있는 이적 목사를 본 박 씨는 YTN방송 끝나자 말자 방송국 뒷구멍으로 도망가 버렸다 YTN방송국 PD가 낌새가 이상하자 도망치게 했다 이적 목사는 언론에 줄기차게 박 씨 뒤에 미국이 있다고 설파했고 배후조종자 미제의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금은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이 만들어져 3년 이하의 징역형이 만들어져 있어도 박 씨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징역 3년을 살아도 대북전단 살포를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그는 전단을 살포했어도 그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적 목사는 미국에서 한국정부에 압력을 넣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박 씨는 누구인가? 현대판 ‘이완용’이다 외세(미국)를 등에 업고 조국의 분단고착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 박 씨 하나 처단 못하는 한국의 법, 그 법은 반미를 외치는 우리에겐 유독 잔혹하다. 

 

이적 목사는 한미정치관계의 본질은 바로 신식민지의 땅 이기 때문이다 법이 못 막으면

 

우리라도 또 나서야 할 때이다 그러나 이제는 박 씨가 비공개로 뿌리고 있어 정보가 없어 막고 싶어도 못 막는 현실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 한미 굴욕협상 규탄

▲ 실화소설 삼청교육대 정화작전 이적 著(자서전)

 

“신식민지의 공권력조차 허망해 보이니 이일을 어쩌랴”하며 이적 목사는 토로했다 

 

최근 미대사관 앞 현장기도회에서 이적 목사(‘반미투쟁본부’ 상임대표, 민통선 평화공동체 대표 목사, 『나는 왜 맥아더동상을 화형하였나』 저자, 『삼청교육대 정화작전』 저자)는 지난 투쟁의 무용담을 밝혔다 “일요일 미대사관 반미 집회 후 서울에서 1박하고 조선동아폐간 집회 참가했다” “집에 와서 어제부터 방에서 나가지를 못했다” “몸이 나른하고 밥맛도 없고 일에 대한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 국회 5공화국 비리조사특위 삼청교육대사건 진상조사 증언자 이적 목사

 

▲ 맥아더 동상 철거를 위한 방화 퍼포먼터

▲ 1차 2018년 7월 27일, 2차 2018년 11월 14일 미제심판, 맥아더 동상 화형식집회 그날의 사진



“잠을 자도 깊은 잠에 빠지지 못하고 늘 토막잠이다” “지난 10여 년간 몸을 너무 혹사해서 무력증인가? 감옥살이 휴유증 인가?” “지난 김포 애기봉투쟁의 긴 여정과 싸움 그리고 재판투쟁, 대북전단 살포와 길고 길었던 전쟁, 반미투쟁과 맥아더투쟁, 2년여의 감옥투쟁 등으로 몸을 추스를 사이 없어 정신력으로 버텼다” 

 

 

▲ 철책선에서 평화의 길 통일의 길 평화협정 체결하라

 

▲ 평화협정 미군철거 이적 목사 구속 석방 운동

▲ 이적 목사 출소 환영회 포스터

▲ 반미통일투사 이적 목사 출소 환영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거


“할일은 태산 같은데 일의 의욕이 감소하고 잠만 오니 나이 값을 하는가 싶다” “안학섭 선생님의 90세 투쟁열정에 비하면 아직 “쇠발의 핏 데” 그 원인이 무엇인가?”“곰곰히 생각에 젖는다” “사상적 무력증인가? 아니면 육신적 조울증인가?” 

 

“일어나자 휴전선에 가서 북조국도 바라보고 남조국도 바라보고 힘을 돋우자” “밭에 가서 굉이질도 해보자” “미제의 승인 5공 학살투쟁 깃발도 다시 들자” “서재 걸린 옥살이 죄수복을 눈에 담고 일어서자 서자” “나의 몸 조국에 더 쓸모 있도록 만들자” 

 

「함께 깨어야 산다」 - 이적 - // 맥아더와 미국은 / 이땅의 분단 주범이다 / 종신형을 살더래도 / 다 태울수만 있었다면 / 다 태워버리고 싶었다 / 소영웅주의가 아니다 / 이것이 조선인의 /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 신식민지의 분단 현실과 / 미국에 대한 내 분노는 아직도 잠재울수 없다 // 분단조국을 건질수 있다면 / 방화범이어도 좋다 / 숭미 북맹에서 깨어나 / 오직 민족이 다함께 하는 다종다양의 항미투쟁만이 살길이다 / 자주통일 그날까지 싸우자 //

 

▲ 한미연합군사훈련 규탄

▲ 찢겨진 성조기 찢겨진 이승만 사진

▲ 양키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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