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는 이따금 국민의 이념 성향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부터 국민의 이념 성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항상 중도가 핵심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보수와 진보로 대별되는 구조에서 중도는 이념이 아니지만 보수 성향의 정권이나 진보 성향의 정권이 집권할 때 중도가 줄어들었다가 그들의 정책 실패가 이어지면 중도로 전환되면서 늘어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중도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보수와 진보세력의 진부한 모습이 싫어서라고 합니다. 좌파 진보도 싫고 극우 보수도 싫은 실사구시적 중도 성향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노무현 정권의 참여정부 출범이후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해 왔습니다. 보수는 현재의 질서를 존중하는 편이라고 한다면, 진보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에 의하여 자주 인용되었던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와 함께 언제부터인가 중도라는 단어가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중도적 개혁이라는 용어가 회자되면서,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안정적 개념을 담은 의미로 미화되었습니다. 점차 국민들 머릿속에 중도라는 개념이 마치 이념인 것처럼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은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들 단어들이 내포하는 의미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수구와 보수를 같은 의미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개혁과 진보라는 단어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국민들에게 혼란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서서히 정치의 과열로 인해 진영논리가 등장하면서 보수와 진보라는 세력이 고착화되었고 개념을 깨우치기 시작했습니다.
보수라는 말은 인권보장, 복지국가, 지역화합, 선진한국 등과 같이 국민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를 지키고 보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수구는 부정선거, 정경유착, 부정부패, 권력남용 등과 같이 썩어 빠지고 청산해야 하는 것들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보수는 일정한 변화를 유지하며 발전을 기도한다면, 수구는 변화를 거부하고 개혁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진보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것을 도입한다는 뜻으로 무엇인가 나아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혁은 변화를 인위적으로 추진하는 방법 및 과정을 말하는데, 기득권 세력의 구성원들에 의하여 위로부터 추진되는 변화를 의미하므로 현상의 구조를 변경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혁은 구시대의 낡은 가치와 부정적 기득권을 추구하는 수구 세력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지 국민이 추구하려는 가치를 보전하는 보수 세력을 대상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개혁주의자란 반드시 진보주의자는 아닌 것입니다. 중도를 표방하는 개혁주의가 등장하는데 제가 말씀드린 수구와 보수의 차이점 그리고 개혁과 진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이념에 대한 개념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보수도 싫고 진보도 거부하는 이유는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들이 정치에서 보여주는 잘못된 행태가 주요 원인입니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살펴보지 않고 일방적 정책을 주입시키고 강요하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를 혐오하게 만들고 자신의 지지층이었던 보수를 중도로 전환시켰습니다. 현재 윤석열 정권에서는 보수세력이 줄어들고 있는데 중도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함석헌 옹은 “선거는 좋은 정치인을 뽑는 것이 아니고 덜 나쁜 정치인을 선택하는 행위”라고 말했고 플라톤은 “우리가 정치를 외면하면 할수록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경고를 했습니다. 이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정치적 명제라 하겠습니다. 결국 중도란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중도층이 늘면 늘수록 우리나라 정치의 미래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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