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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6.15> 21주년 워싱턴 행사 참관기...80평생 처음 보는 아주 이색적 기념행사

김환태 | 기사입력 2021/06/15 [13:32]

특별한 <6.15> 21주년 워싱턴 행사 참관기...80평생 처음 보는 아주 이색적 기념행사

김환태 | 입력 : 2021/06/15 [13:32]

 

            특별한 <6.15> 21주년 워싱턴 행사 참관기

                   (80평생 처음 보는 아주 이색적 기념행사)

 

                                                                                                         이흥노 미주동포

 

어제 (6/11), <6.15워싱턴 위원회> (양현승 대표위원장)는 콜럼비아 메릴렌드 소재 후난식당에서 아주 특별한 기념행사를 가졌다. 코로나 펜데믹 때문에 처음으로 치루는 대면행사이고 더구나 비가 요란하게 쏟아지는 날씨인데도  무려 30여 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기념행사는 일반적으로 대동소이 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이야기는 지면상 생략하고 통상적인 행사에서 볼 수 없었던, 차별화 되는 특이한 점만 골라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행사 시작과 동시에 가장 먼저 최근 작고한 재미동포 지역 통일인사에 대한 묵념이 있었다. 강철은 전 한인회장과 함석헌연구회의 안병순씨 두 분이다. 이들은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만드는 일에 아낌없이 헌신했다는 걸 상기하면서 이제 저 세상에서 편히 쉬기를 기원했다. 민족의 평화 번영에 기여한 인사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주최측 자세에 머리가 절로 숙여질 뿐 아니라 앞으로 본받아야 될 본보기라 여겨진다.

 

▲ 6.15 공동선언실천 워싱턴위원회가 11일 콜럼비아에서 6.15 공동선언 기념식을 가졌다.(출처:미주한국일보)

 

행사의 일부인 강연회와 행사 참가자들의 발언이 흥미진진 했다. “자주적 민족문제 해결의 원칙”이라는 제목의 <6.15워싱턴> 고문인 김정현 여사의 강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는 우리 민족의 당면한 절체절명의 과제가 ‘자주’로 무장하는 것이라면서 ‘자주의 원칙’이 남북 정상선언 합의들의 진짜 핵심이라는 걸 강조했다. 자주의 부재 때문에 지구상 유일한 분단을 비롯한 모든 민족의  고통과 비극이 속절없이 연장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사와 청중들 간 이렇게 완전 혼연일체가 된 경우는 처음 본다. 솔직히 말해서 김 여사의 강연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나는 철저하게 매혹되고 말았다. 이름을 날리는 어떤 평론가들이나 전문가들 보다 더 세련되고, 솔직하고, 특히 청중의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강연이었다는 걸 고백하고 싶다.

 

도중에 머리를 식히려는 듯 뼈있는 농담을 해서 폭소를 자아내곤 했다. 전문가 조차 탄복케 할 능수능란한 강연기법이 동원된 것이다. 김 여사는 90년 평양통일음악회에 재미동포 예술단 일원으로 참가했던 뒷이야기를 소개했다. 이 범민족통일음악회는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과 김 여사의 남편인 안용구 선생 (피바디 음대 교수) 그리고 남측대표단장 황병기 이화여대 교수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공연이 끝나고 주석단에 앉았던 안용구 선생이 차를 타고 막출발하는 데,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팔을 흔들며 “용구야! 용구야!”라고 크게 고함치는 바람에 안 선생이 차에서 내렸다. 왠걸 가까이 가서 보니 모두 서울음대 동창생들로 전쟁당시 떼를 지어 방북길에 올랐던 음악도들이 이제는 어엿한 북녘의 음악가들이 됐다. 서로 얼굴을 비비며 껴안고 울기만 했다고 한다. 남편이 탄  1호 차가 출발을 못하니 뒷차들이 대기할 수 밖에 없었던 걸 목격한 김 여사는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음악회에서 독창을 불러 극찬을 받았던 김 여사는 통일음악회에 참가한 재미동포 예술단원들과 함께 금강산 관광길에 나섰다고 한다. 단원들 중 나이가 좀 많았다고 생각돼선지 건장하고 아주 멋쟁이 젊은 청년이 김정현 여사 안내원으로 배치됐다고 한다. 김 여사는 젊고 미남인 청년이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한 인테리라선지 교양이 넘치고 이야기 상대로는 아주 제격인 청년이라 매우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금강산을 오를 때에 젊은 청년의 부축을 받으니 황홀할 정도로 좋았다고 실토를 한다. 그런데 하산 할때에 그 청년이 예고 없이 돌연 “이제부터는 오마이라 부르갔시유”라 말하자 너무 큰 충격으로 그만 쓰러질 지경이었다고 고백했다. “젊어서는 죽자고 쫓아다니는 사내들을 걷어차기 바빴는 데”라며 옛날을 희상했다.

 

방청객 일부는 김 여사의 진실고백이라는 말도 나왔다. 하기야 당시 김 여사가 환갑줄에 들어서기 직전이니, 마음이야 젊지 않았겠는가? 이때에 김 여사는 ‘오마이’ 대신 차라리 ‘누님’ 정도로 부르겠다고 했다면 그렇게 실망 원통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 또 한바탕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곤 울적한 기분을 전환키 위해 노래 한 곡을 선사하겠다고 나섰다. 남편 안용구 선생의 서울음대 동창이자 평양 음악계 원로의 걸작 영화 ‘월미도’의 주제곡이라고 설명했다. 노래솜씨는 기성 성악가를 뺨칠 정도라 모두들 혀를 내밀었다. 모두가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어서 김 여사는 재미동포 예술단 중에 한 이산가족이 북녘 가족들을 만난 사연도 이야기 했다. 그 주인공은 고향에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두고 단신 월남해 미국 까지 와서 성공한 음악가로 활동 중이라 했다. 거지신세가 됐거나 남의집 식모살이나 하리라 짐작했던 어머니와 동생들을 상봉키 위해 고향엘 갔다. 왠걸 혈육들만 수 십 명들이나 되는데, 농장의 모든 성원들이 나와서 자신을 환영했다고 한다. 근 반 세기만에 가족을 찾은 재미동포 음악가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이 이렇게 건강하고 훌륭하게 성장한 것은 전적으로 ‘집단생활’의 은혜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고 한다.

 

끝으로 질의응답 시간에 많은 참여와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가장 인상적인 발표자는 최승홍 박사였다. 그는 ‘세계은행’에 근무할 다시 해외에서 입국시 미정보당국이 서울의 군사정권 종식에 참여한 것에 대해 시비를 걸었던 일화를 소개했고, 김대중 선생 구명운동에 참여했던 게 가장 자랑스럽다고 했다. 70년 대에 ‘자유공화국’ 발행인 장성남씨와 같이 민주 통일 운동에 참여했던 것도 값진 역사라고 회고 했다.

 

한편, ‘선스 라디오’가 행사를 끝까지 녹화 취재한 것에 대해 감사할 뿐만 아니라 ‘6.15워싱턴’ 임원들에게도 큰 고무가 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종합적 평가를 한다면, 김정현 여사의 강연솜씨는 기존 전문가와 완전히 차별화 되는 새로운 기법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초야에 묻히게 방치해선 절대로 안 된다. 이 소리는 나만이 아니라 참석자 전원으로 부터 이구동성 터져나온 이야기다. 한 평생 처음 보는 신선하고 이색적인 기념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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