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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공사판(理判事判 供辭判)에 대해

정인대 칼럼 | 기사입력 2024/07/20 [00:02]

이판사판 공사판(理判事判 供辭判)에 대해

정인대 칼럼 | 입력 : 2024/07/20 [00:02]

 



'이판사판 공사판(理判事判 供辭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뭘 하다가 잘 안되거나 막다른 지경에 이르면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판과 사판은 ‘화엄경’에서 나온 말로서 세계의 차원을 이(理)와 사(事)로 설명하는데, 이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의 세계에 대한 판단이며 사판은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에 대한 판단이라고 합니다.

 

‘이판사판’ 자체는 불교용어가 아닌 합성어이지만 이판과 사판은 불교용어입니다. 국어표준사전에 이판사판은 ‘막다른 데에 이르러 어찌할 수가 없게 된 지경’이라고 합니다. 뾰족한 방법이 없어 막다른 상황에 도달했음을 일컫는데, 조선시대 불교 승려의 두 부류인 이판승(理判僧)과 사판승(事判僧)을 합쳐서 부르는 말입니다.

 

 


조선의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에 의해 승려들은 천인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끝이자 막다른 선택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부정적인 의미로 ‘마지막 궁지’ 또는 ‘끝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승려들은 불교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두 가지 방향에서 활로를 모색했습니다.

 

사찰을 존속시키는 것과 불법의 맥을 잇는 방향으로 승려들은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일부 승려들은 폐사(廢寺)를 막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견디면서 사찰의 유지에 헌신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속세를 피해 운둔하면서 참선과 독경으로 불법을 이은 승려도 많았습니다. 전자를 사판승(事判僧) 혹은 산림승(山林僧)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이판승(理判僧) 혹은 공부승(工夫僧)이라고 했습니다.

 

 


사판승(事判僧)은 주로 잡역에 종사하거나 시주를 다니면서 사찰의 유지와 살림에 힘썼고, 이판승(理判僧)은 승려의 본분을 다해 참선을 통한 수행에 힘썼습니다. 이 같은 사판승과 이판승 사이에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일부 사판승에는 교리에 어두운 범승이 있었고, 이판승은 공부에만 치중함으로써 불교의 외형적 발전에 그다지 큰 기여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양자는 상호 보완의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폐사를 막음으로써 불법의 명맥을 이은 것은 사판승의 공로이고, 부처님의 혜광(慧光)을 전하고 불법을 이은 것은 이판승의 공로였습니다.

 

 


불교에서는 어떤 것을 의논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반드시 여러 대중의 논의를 거치게 하였는데 이를 대중공사(大衆供辭)라고 하며 보통 줄여서 공사(供辭)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판승과 사판승이 한 자리에 모여 공개회의를 통해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이 과정을 이판사판 공사판(供辭判)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사용하는 이판사판 공사판(工事판)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오늘날 이판사판 공사판이란 말은 막다른 지경을 일컫는데, 과거 이판승과 사판승의 협의체인 공사판과는 전혀 다른 뜻입니다. 그러나 당시 억불숭유를 헤쳐 나가는 스님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점에서 역경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넘어서 나아가는 지혜와 용기로 '이판사판 공사판'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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