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에서 불혹(40세)도 되기 전에 마치 정치를 다 아는 듯 함부로 재단하고 규정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이준석이다. 하버드대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이준석은 한국에서 아이들 교육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다가 박근혜의 눈에 들어 정치에 입문해 소위 ‘박근혜 키즈’라 불렸다. 하지만 이준석은 정치에 입문한 지 10년이 넘도록 무관의 제왕이었고, 대신 여의도보다 유튜브에서 주로 활약했다.
탄핵된 박근혜의 정치 키즈 이준석
2012년 대선 때 이준석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만났고, 대선 때 과감하게 경제민주화를 도입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자 촉망 받는 젊은 정치인이 되었다. 하지만 박근혜가 국정농단으로 탄핵되자 정치적 암흑기를 맞았다. 이준석은 지역구인 노원구에 출마했으나 연거푸 낙선했다. 이후 그는 여러 유튜브에 나와 특유의 입담을 과시했는데, 그 바람에 20대와 30대 남성들 사이에 인기를 얻어 급기야 당대표까지 되었다.
하지만 이준석은 윤석열이 국힘당 대선 후보가 되자 틀어지기 시작했고, 한참 동안 서로 갈등하다가 극적인 화해를 해 윤석열 당선에 기여했다. 그때 가로세로연구소가 이준석 성상납 사건을 터트렸는데, 공교롭게도 그후 이준석은 그토록 미워하던 윤석열과 ‘원팀’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성상납 사건이 무혐의가 났다. 그후 이준석이 김건희의 공천 개입에 대해 “선의의 조언이다”라고 말해 오해를 샀다.
대선 때 윤석열을 밀었던 이준석은 소위 윤핵관들에게 ‘눈엣가시’로 찍혀 그 유명한 ‘체리따봉’ 사건으로 결국 당을 나가 신당을 차렸다. 총선 때 경기도 화성에서 당선된 이준석은 비례대표도 2석을 얻어 소위 ‘원내정당’이 되었다. 이준석 신당이 비례대표를 두 석 밖에 얻지 못한 것은 한국 정치가 워낙 양극화된데다, 이준석이 이낙연 신당과 합당해 선명성을 흐렸기 때문이다. 두 당은 며칠 만에 헤어졌다.
이준석이 민주당 수박 받아들인 것은 패착 중 패착
민주당에서 이준석 신당(개혁신당)으로 간 이원욱(화성정), 조응천(남양주갑), 양향자(용인갑)는 10%도 얻지 못하고 모두 낙선했다. 이준석이 거대 양당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신당을 만든다 해놓고 정작 올드보이들을 영합한 게 패착이었던 것이다. 이낙연 신당으로 간 설훈, 홍영표도 보기 좋게 낙선했다.
국힘당으로 간 이상민과 김영주도 낙선했다. 이재명을 비토한 세력들이 민심의 응징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모두 민주당 중진들로, 총선이 끝나자 비로소 자신들의 선택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실감했을 것이다. 그밖에 민주당에서 ‘수박’으로 통하는 박용진, 박광온 등도 낙선했다. 수박들이 거의 몰살당한 것이다.
김건희 공천 개입 불똥이 이준석으로 튀어
김건희 공천 개입 사건으로 정국이 들썩거리고 있는 가운데, 엉뚱하게 화살이 이준석에게 쏟아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뉴스토마토가 처음에 보도를 할 때만 해도 이 사건은 김건희가 김영선에게 지역구를 창원에서 김해갑으로 옮기라고 했다는 게 주요 이슈였다. 그 자체만으로 공천 개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스토마토가 2차 보도를 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김영선이 2022년 재보선 때도 윤핵관들이 미는 검사 출신이 탈락하고 엉뚱하게 김영선이 공천되었는데, 그때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명태균이라는 사람이었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명태균은 경남에서 활약하는 사람으로 윤석열과 김건희는 물론이고 이준석과 김종인과도 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석 당대표 될 때 도움 준 명태균
보도에 따르면 명태균은 이준석이 당대표가 될 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2022년 재보선 때 국힘당 대표는 이준석이었고, 윤상현이 공천관리위원장이었다. 그런데 김건희 공천 개입 사건이 터지자 이 두 사람이 묘하게 김건희를 비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런 정황으로 봐 2022년 재보선 때 이미 김건희가 명태균의 추천으로 김영선을 공천하는 데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점은 명태균이 지인에게 한 말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이게 보도되자 김영선과 명태균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사살이 아니라고 했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
체코에서 귀국할 때 표정이 어두운 김건희
뉴스토마토 보도가 논란이 되자 명태균은 김건희와 문자를 주고 받은 사람은 자신이고, 그때 김건희는 공천을 해줄 힘이 없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했으나, 관련 증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건희가 김영선에게 보낸 문자를 여러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말도 있고 보면, 이게 터지면 김건희는 수사를 받아야 한다. 김건희가 체코에서 귀국할 때 표정이 어두운 이유도 그것 때문으로 보인다. 국힘당도 “터질 게 터졌다”며 방어가 불가하다는 의원들이 많다.
한편 뉴스토마토의 2차 보도엔 김영선이 출마지를 김해갑으로 옮겨 총선을 준비했으나 경선도 치러보지 못하고 컷오프되었는데, 그때 비대위원장이 한동훈이었다. 따라서 김영선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김건희가 격노했을 수 있다. 그 후 김건희가 한동훈에게 보낸 문자가 공개되어 논란이 된 것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이준석 명확한 입장 안 나타내면 정치적 위기 올 수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에 터진 김건희 공천 개입 사건을 제5차 윤-한 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윤-김 갈등이다. 어차피 용산의 주인은 김건희이기 때문이다. 이준석도 그걸 알고 김건희를 비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 같은데, 그게 그의 정치적 발목을 잡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이준석은 한동훈 체제가 무너지면 다시 국힘당으로 들어갈 생각을 잠시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정치 생명은 끝날 것이다.
뉴스타파 2차 보도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국힘당에서 컷오프된 김영선이 개혁신당을 노크한 후 칠불사에서 이준석과 천하람을 만나 비례대표를 논의했다는 점이다. 그때 김건희가 김영선에게 보냈다는 문자를 본 이준석은 이게 문제가 되자 가장 먼저 “선의 조언이었다, 공천 개입이라 보기에는 뭔가 완결성이 부족하다”고 언론에 나와 말했다. 마침 이준석 성상납 사건이 무혐의로 끝나자 이때부터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번에 터진 공천 개입 사건에 대해 제대로 해명을 하지 못하면 이준석이 정치적 위기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정치계에서 이준석은 ‘웃자란 풀’에 불과하다. 말로 하는 정치는 누구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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