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노 워싱턴 시민학교 이사
평양은 자금 남북한 정세를 “전쟁 중인 적대적 관계”라 규정하고 있다. 이는 가감 없는 정확한 진단이라고 해야 맞다. 이미 심리전을 비롯해 저강도의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어디서나 “전쟁은 시간 문제”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린다.동시에 절대 다수 국민으로 부터 완전히 외면당한 윤석열의 지지율이 20% 미만으로 떨어지고 도처에서 윤 정권 타도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있다. 그래서 더는 참을 수 없다면서 원로 지식인1,600명이 나서서 “우리 모두 일어나 나라를 지킵시다”라는 구호 아래 기자회견을 했다.
최근 전쟁 도발과 계엄령 조치에 동원될 모든 부처에 모조리 윤석열 최측근 (충암고 동창)으로 채우는 공작이 막 완료됐다. 이것이 전국적 규모의 성토 규탄에 불을 질러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지금 윤석열은 정치적 최대 위기에 서 있다. 이 심각한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전쟁 도발과 계엄령 반대 세력, 그가 말하는 소위 “반국가 세력” 척결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게 일반적 공론이다. 그의 무능, 부정부폐, 국정농단, 남북 관계 파탄 등은 끝내 나라를 거의 말아먹고 말았다. 어느 것 하나 거덜나지 않은 게 없다.
북의 인공위성 발사 (23년 11월)를 빙자해 윤 정권이 마지막 남은 군사합의, 즉 남북 간 충돌 방지 안전장치를 뽑아버렸다. 이어 대북삐라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 재개했다. 시도 때도 없이 평양을 겨냥해 한미 한미일 다국적 군사훈련을 바다, 육지, 하늘에서 연중무휴로 실시하고 있다. 그걸 혼자도 아니고 외국군과 함세해서 평양 지도부 참수작전 <작계5015> 훈련 까지 해대고 있다. 이는 윤석열 자신과 한미일의 추잡한 흉계에 부역하기 위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해 전쟁 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더 끔찍한 건 광복절을 맞아 ‘8.15 독트린’을 발표해 ‘흡수통일’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이 독트린이란 일방적으로 북한을 남한 체제로 흡수하겠다는 검은 속셈을 드러낸 것으로 전쟁도 불사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여기서 지난 연말과 금년 초에 평양이 왜 굳이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발표했는 지에 대한 배경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남측을 향해 “제발 신경 쓰지 말고 살자”고 통사정을 한적도 있다. 북측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 대응하는 풍선 삐라와 확성기 방송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인 것 같다. 그간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수 많은 합의 선언들이 단 한 건도 이행된 것이 없다. 이게 평양의 새대남정책 전환의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남녘의 보수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평양의 입장에서는 북한 붕괴에 초점이 맞춰진 형식적 통일 외침이었다고 밖에 달리 볼 도리가 없을 것이다. <6.15 선언>을 비롯한 달콤하고 번지르르한 각종 선언과 합의들이 거덜난 근본 이유는 외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민족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노예 근성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자주성 결여 때문에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았다는 말이다. 남북 관계가 절정을 이뤘을 때도 ‘북한 주적’과 <작계5015> 폐기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합의 이행엔 무관심이고 상대방을 붕괴시켜 먹겠다는 불순한 의도다.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는 속담이 제격이다.
<9.19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을 기해 야권으로 부터 남북 관계에 대한 새 제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문 전 대통령은 북의 대남정책 변화에 발맞춰 비핵화 해법과 평화프로세스를 새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윤 정부는 그럴 의지도 역량도 없다”면서 평화 세력과 시민들이 아를 감당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재명 민주대표는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라는 자주적 인식을 바탕으로 화해 협력의 문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국 대표는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한반도 갈등을 이용하려는 자들이 평화를 좀먹고 있는데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이고 평화적인 민족적인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북한 붕괴에 근거한 박 정권의 통일 대박론이나 윤 정부의 자유통일론 등이 신뢰 구축과 평화 의지 없이 통일을 말하는 생생한 증거라고 말했다. 윤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해 “좋게 얘기하면 힘에 의한 평화고 그냥 얘기하면 전쟁 불사”라고 하면서 남북 관계와 한반도 주변 상황을 최악의 대립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헌법의 영토 조항 수정, 보안법과 통일부 폐지 등도 촉구하고 나섰다.
발언자들이 모두 문 정권 인사들이다. 나라를 거덜내는 윤석열에게 권력을 넘겨준 책임에서 이들이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문 정권 인사들의 발언과 주장이 더 신뢰를 얻고 더 가슴에 와닿으려면 먼저 실수를 인정하고 뉘우치는 자세가 필요하건만…참으로 아쉽기 짝이 없다. 그러나 현 한반도 환경과 정세에 걸맞는 주장과 제안 보따리를 풀어놓은 것은 아주 시의적절한 값진 선물이라고 평가돼야 마땅하다. 특히 평양의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대남정책에 대해 합리적 실질적 대응을 내놨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될만 하다.
‘8.15 독트린’을 ‘흡수통일’이라고 문 대통령은 규정했다. 그는 전임 정권들이 고수해오던 흡수통일 폐기 원칙을 윤석열이 깨버렸다고 비판했다. 이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이재명 대표가 “한반도 운명의 주인은 우리”라면서 자주를 틀어쥐고 화해 협력의 문을 열어젖히자”고 외쳤다. 그는 자주가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본 것이다. 임 전 실장의 “신뢰 구축과 평화에 대한 의지 없이 통일 논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발언은 정확한 진단이다. 신뢰를 완전 상실한 윤 정권이 전쟁 도발과 계엄령 준비를 다 갖춰놓고 통일 운운하는 건 적반하장이다. 차라리 ‘도둑이 매를 드는 격’이라고 해야 맞다.
윤석열은 국무회의 (9/24)에서“한반도 상황이 매우 엄중하고 위험하다”고 하면서 “힘과 원칙에 의한, 무력이 아닌 평화적 자유통일을 추구한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임종석 전 실장의 ‘두 개 국가론’을 반헌법적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 힘 대변인도 “김 위원장과 발맞춰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반국가 세력이고 헌법 유린의 매국 행위”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추경호 국힘당 원내대표를 비롯 대부분 여권 인사들과 강성 보수 세력은 입을 맞춰 북한을 추종하고 동조하는 행위라며 일제히 입에 거품을 물고 맹비난하고 나섰다.
얼마전, 황태희 통일부 고위 관리는 평양의 두 국가론을 “정권 유지 자구책, 흡수통일 회피 수단, 내부 통제 강화 명분 쌓기”라고 혹평한 바 있다. 한반도 전쟁 위기를 더욱 더 고조시키면서 윤석열은 뻔뻔하게게도 평화 통일 소리를 하고 있다. 통일 전위대라 불리는 남측 <범민련>과 <6.15위원회>가 당면한 한반도 정세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이름으로 현실과 정세에 적응 순응하는 대응책을 마련하고 새출발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야권 재야에서도 주도적 통일 세력과 동시에 보조를 맞춰 같은 대응 대처에 나섰다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임 실장을 비롯한 문 정권 인사들의 현실 적응 노력 자세는 좀 늦은감이 있기는 하나 옳았다는 평가를 하는 데에 인색하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 우리가 반드시 해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는 하루속히 윤 정권을 몰아내는 일이다. 이를 성취하는 데에 문 정권 인사들이 앞장서서 공을 세워야 한다. 국민에게 진 빚을 갚는 길이기도 해서다. 통일 소리만 들어도 질겁을 하던 극우보수 세력, 특히 윤 정권이 이제는 통일 세력이라고 거들먹거리면서 진보 세력을 향해 반통일, 반헌법적, 반국가적 세력이라고 몰아부친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잘 닦아놓은 통일의 길로 더 전진하기만 하면 통일의 종착역에 도달할 수 있었건만, 불행하게도 뼈속까지 친미 친일 패거리의 등장으로 통일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우리 분단 역사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자주성 결여가 통일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자주를 틀어쥐면 못할 게 없다는 취지로 자주를 강조한 이재명 대표 연설을 한 번 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적대적 관계의 두 국가는 적개심을 버리고 먼저 사이좋은 이웃이 되도록 노력하는 게 바람직하고 정상이다. 이것은 개인이나 국가 간에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다.
이웃 간 상부상조하고 공생공존 하노라면 웃음이 있고 평화 번영이 오게 마련이다. 평화와 번영이 찾아들면 통일을 하지 말래도 다음 세대가 절로 통일의 문을 열어젖힐 거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통일 없는 분단 80년의 역사는 자주, 평화, 번영이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아무도 넘보지 못할 멋진 희망찬 대국의 꿈을 실현하려면 통일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선 인구 영토가 확장돼야 한다. 전쟁 비용이 경제 발전에 투자되고 남북 교류 협력이 활성화 되면 경제 대국이 된다. 이것이 통일인 것이다. 진짜 통일은 우리의 다음 세대가 기어코 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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