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3일, 새민연은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 해체' 집회를 열었다. 새민연은 'MBC 해체 집회를 처음으로 연 단체가 바로 새민연'이라고 소개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비서관이 보수단체로 하여금 특정 언론사의 언론인을 고발하도록 사주한 정황이 확인됐다. 김대남 전 대통령실 시민소통비서관 직무대리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가 통화한 내용이 담긴 5시간 30분 분량의 녹음파일에서다. 27일 <언론장악 공동취재팀>으로 탐사 취재한 뉴스타파 기사를 전재한다.
공동취재팀은 지난 10개월간 보수 시민단체와 대통령실이 유착한 정황을 포착하고 취재를 해왔다. 이런 가운데 전직 대통령실 비서관이 자신의 재직 당시, 정권을 비판한 언론인들을 고발하는 배후 역할을 했다고 자백한 발언을 확보한 것이다.
이명수 기자는 지난해 9월, 보수 유튜버 관련 취재를 하다가 김 전 비서관을 알게 됐다. 이후 40여 차례에 걸쳐 통화했으며, 때로 만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을 의심할 만한 대화가 오갔다. 이에 대해 김 전 비서관은 "소문을 듣고 과장해서 말한 것"이라며 자신이 뱉은 말은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김 전 비서관의 발언 중 허위로 보기 어려운 대목도 있었다. 자신이 대통령실에서 근무할 당시에 김건희 여사를 비판하는 다수의 언론인들을 고발하도록 조치했다는 발언이다. 문제의 대화는 지난 4월 3일에 이뤄졌다.
김대남 전 대통령실 시민소통비서관 직무대리(이하 김대남) : 지금 이럴 때 네 몸값을 키워. 왜 가만히 있어?
이명수 기자 : 제가 보도만 하면 고발하고 조사받으러 가야 하고 귀찮아서 아무것도 안 했어요.
김대남 : 야, 니네 백은종(서울의소리 대표)이 하고 있지, 그 서울의소리 니네 고발하고 막 이런 거 있잖아 시민단체…. 국힘(국민의힘)에서, 국힘에서 한 것보다도 여기 시민단체에서 한 게 몇 개 있어.
이명수 기자 : 그렇죠. 예 알고 있어요.
김대남 : 그거 다, 그거 다 내가 한 거야.
이명수 기자 : 형님이? (함께 웃음)
김대남 : 야, 그러니까 봐라. 내가 용산에 있을 때 너 우리 새민연이라고 그 진짜 정말 솔직히 우리 보수 우파 플랫폼인데, 신문에도 광고도 많이 나가는데. 그렇게 그 난리를 치면서 그렇게 고발도 해주고 백은종이도 고발해야지, 그다음에 또 여사(김건희 여사) 난리 쳤던 놈들도 내가 몇 군데를 고발을 해줬는데, 그런 나를 부수고 이렇게 밀어내? - 김대남-이명수 기자의 통화 녹취록 중(2024.4.3.)
공동취재팀이 김대남의 발언을 검증한 결과 일부는 사실로 확인됐다. 김대남은 통화에서 "국힘에서 (고발)한 것보다도 여기 시민단체에서 (고발)한 게 몇 개 있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에서 직접 고발할 수 없으니, 보수 시민단체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고발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대남은 '새민연(공식 명칭은 새로운미래 새민연)'이라는 단체의 이름도 언급했다. 그는 이 단체가 보수 우파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대화의 맥락을 보면 새민연이 특정 언론인들을 고발하도록 자신이 뒤에서 실력을 행사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런데 실제로 2022년 9월 26일, 새민연은 MBC와 박성제 사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속어를 사용해 논란이 된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보도가 허위라는 취지였다. 새민연은 이날 오후 3시에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작·왜곡 보도 피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허위·조작·가짜뉴스를 일삼는 MBC는 해체하라. 대통령의 사적인 대화를 방송에 내보내 국가 망신을 시킨 기자들을 퇴출하라”고 외쳤다. 2022년 9월 26일, 새민연은 대검찰청에 MBC와 박성제 당시 사장 등을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새민연 관계자 이순임 씨(전 MBC 제3노조 위원장)는 2022년 11월 24일 고발인 조사를 받은 뒤 자신의 SNS에 “서울경찰청에서 2시간 동안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국가 발전과 사회 통합 걸림돌이 되고 있는 MBC!!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적었다.
김대남이 고발했다고 지목한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 측은 "고소 고발 사건이 너무 많아서 새민연이 실제로 우리를 고발을 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동취재팀과 연락이 닿은 전직 새민연 직원은 "새민연이 MBC와 백 대표 고발한 사실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에 취재진이 "새민연이 백은종 대표 등 시민단체를 고발한 이후 다른 고발을 한 것도 있냐”고 묻자 “그 이후로 한 건 없다”고 답했다.
김대남과 새민연의 '고발 사주' 공모 의혹이 만약 사실이라면, 심각한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다. 권력기관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시민단체를 동원해 고발을 사주하고, 수사기관을 동원해 압박하는 방식으로 비판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건 헌법을 유린하는 중대 범죄다.
“그 난리를 치면서 고발도 해주고”...‘관제 데모’도 지시했나
“(새민연이) 그 난리를 치면서 고발도 해주고”라는 발언에선 김 전 비서관이 새민연으로 하여금 정권을 옹호하고 특정 집단을 비난하는 일종의 '관제 데모'를 벌이게 했을 가능성도 포착된다.
새민연은 MBC 고발 3일 전(2022년 9월 23일)에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 MBC 정문 앞에서 규탄 대회를 열었다. 또 고발 당일부터 약 한 달 동안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통령실, 매국 MBC 기자를 즉각 퇴출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1인 릴레이 퇴출 운동’ 시위를 벌인 사실이 있다.
자발적인 집회 시위를 빙자해, 대통령실이 사실상 여론을 조작하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장면이다.
"(새민연이) 신문에도 광고도 많이 나가는데’는 김대남의 발언도 사실인지 검증해봤다. 실제로 새민연은 <조선일보>와 <문화일보>, <서울신문> 등에 광고를 다수 게재한 것으로 확인된다. 공동취재팀이 새민연 발기인 총회 이후부터 최근까지 신문사 지면 광고를 전수 조사한 결과 ▲2022년 8월 10일자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새민연이 주최한 광복절 77주년 기념 행사 광고가 ▲같은 해 12월 9일자 <서울신문>에는 “윤석열 정부는 민노총과 화물연대의 불법행위에 강력하게 대처하라”는 내용과 함께 새민연 회원 모집 광고가▲2023년 5월 10일에는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 축하 메시지를 담은 광고가 ▲같은 해 9월 13일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는 이상훈 예비역 육군대장(27대 국방부 장관) 애도 메시지를 담은 광고가 새민연의 이름으로 게재됐다.
새민연은 윤석열 후보 캠프가 관리한 선거운동 단체
김대남이 언급한 단체 ‘새민연’은 사단법인 ‘새로운민심 새민연(새민연)’이다. 새민연은 2022년 7월 9일 발기인 총회를 개최했고, 같은 해 9월 22일 행정안전부로부터 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다. 새민연 이사로 활동한 관계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소개 글을 보면, 이 단체는 2021년 4월 ‘윤석열정권교체 행동연대’에서 출발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후 ‘윤석열 충북지지연대’로 활동 중 해산했다가, 남은 회원들이 ‘민주법치사수국민연합(민법연)’으로 운영, 이후 전국 조직이 연합해 새민연으로 출범했다.
2023년 6월 27일, 인천 라마다호텔에서 새민연 인천 연수구지회 출범식이 열렸다. 이날 김대남 비서관은 대통령실 축사를 전달했다. 김 전 비서관은 최근 이명수 기자 공천개입에 나온 인물이다.
김대남과 그가 소속된 대통령실은 새민연을 각별히 챙겨왔다. 2022년 11월 17일, 대통령실 인근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새민연 창립대회가 열렸는데, 김대남과 강승규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행사에 축하 화환을 보냈고, 강승규는 축사를 했다. 김대남은 대통령실 재직 당시부터 올해 2월까지 새민연 지역 지회 창립대회, 토론회 등에 꾸준히 참석했다.
국정원과 합작해 '화이트리스트' 만든 박근혜 청와대 데자뷰
김대남의 '고발 사주' 발언은 과거 박근혜 정부 '화이트리스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건은 청와대 행정관이 대기업이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들을 지원하도록 하고, ‘관제 데모’ 방식으로 야당 정치인 낙선 운동을 하도록 배후에서 조종한 사건이다.
검찰은 허현준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허 전 행정관은 2020년 재상고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허 전 행정관이 근무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은 김대남이 근무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산하 시민소통비서관실의 전신이다.
김대남의 발언 중 일부는 공동취재팀 확인한 결과,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따라서 김대남에게 언론인 고발을 지시한 대통령실 윗선이 존재하는지 또 대통령실이 조직적으로 이 같은 행각을 벌인 것인지 앞으로 수사를 통해 정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전직 대통령실 직원의 입으로 확인된 언론장악 카르텔의 그림자
김대남은 20대 대선 때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캠프 조직위원회에서 조직국장으로 활동했다. 전국의 각 분야별 특별위원회 조직 업무를 책임지는 자리다. 2021년 출범한 윤석열 국민캠프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가 2022년 초 선거대책본부(선대본)으로 재편된 이후에도 김대남은 조직국장으로 유임됐다.
윤석열 캠프 선대위 조직총괄본부 부본부장은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강승규도 선대본으로 재편된 직후 캠프에 그대로 남아 조직본부 특별위원회 조직강화단장으로 보임됐다. 윤석열 캠프의 조직본부는 ‘강승규-김대남 투톱 체제’로 운영된 셈이다. 이 체제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에서도 이어졌다. 강승규는 대통령실 시민사회 수석으로 발탁됐고, 김대남은 시민사회수석실 산하 시민소통비서관실에서 근무했다. 이들은 사실상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1인자와 2인자로 통했다.
김대남은 지난해 10월, 대통령실에 사표를 냈다. 한 달 뒤, 새민연의 경기도 지부 회장이 됐다. 그다음 달에는 22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도 용인갑 지역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 선언했다. 그러나 이원모 전 대통령실 비서관이 전략 공천되면서, 김대남은 경선도 치르지 못한 채 탈락했다. 이후 김대남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나경원 후보 캠프에 합류해서 일하다가, 지난 8월 6일 연봉이 수억대에 달하는 서울보증보험 감사위원으로 선임됐다.
공동취재팀은 김대남 전 비서관, 김흥수 새민연 부회장 등에게 언론계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입장을 들으려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아직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대통령실에도 입장을 물었으나, "특별한 입장이 없다"는 답변만 내놨다.
●언론장악 공동취재팀: 박종화·연다혜(이상 뉴스타파)·박재령(미디어오늘)·문상현(시사IN)·신상호(오마이뉴스)·최성진(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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