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 광주에서 겪은 비상계엄을 또 불 줄이야
45년이 지난 지금, 그 전설 같은 ‘비상계엄’이란 소릴 또 들었다. 그것도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고 집권한 윤석열이 선포한 것이라 충격이 크다. 이제 생각해 보니 대선 때 윤석열이 “전두환이 정치는 잘했다”고 한 말이 실감난다. 그 말이 논란이 되자 윤석열은 ‘개사과’ 사진을 올렸다. 사과는 개나 주라는 소리다. 놀랍게도 윤석열의 롤 모델은 바로 전두환이었던 것이다.
윤석열의 내란을 기획하고 실행한 사람은 삼성 장군 출신이자 윤석열 정권에서 경호처장, 국방부 장관을 했던 김용현이다. 그가 부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불러 내란을 기획하고, 심지어 북한에 무인기를 보내 북한의 도발을 유도한 것이 드러났다. 내란 일당은 이재명, 한동훈, 우원식 등 정적들을 백령도로 싣고 가 죽인 후 북한 소행으로 조작하려 했다는 것도 드러났다.
45년 후 다시 등장한 비상계엄
1980년만 해도 비상계엄이란 말은 일반 국민들에게 그렇게 심각한 단어가 아니었다.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이 집권하자 대부분 비상계엄이 내려질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5.18을 직접 겪은 광주 시민들은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몸소 실감했다. 계엄군은 총칼로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모든 정치 활동이 중지되었고, 언론 보도도 일일이 통제를 받았다. 이에 광주 시민들이 나섰지만 전두환 군부 독재는 장갑차와 총칼로 광주 시민을 잔인하게 죽였다. 시민들 일부는 알 수 없는 곳에 매장당해 사망자 수가 정확하게 얼마인지 아직도 알 수 없다. 심지어 발포 명령자도 규명하지 못했다.
작가 한강 ‘소년이 온다’로 5.18 아픔 그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이 그때 죽은 광주 시민들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아 소설 ‘소년이 온다’를 썼고, 그 작품으로 한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한국의 수구들은 스웨덴 한림원에 한강이 역사를 왜곡했다며 노벨 문학상을 주지 마라고 압박했다. 김재둥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 때도 그랬다. 하지만 한강의 작품들은 불티나게 팔려 세계적으로 500만 권 이상이 팔렸다. 제주 4.3의 아픔을 그린 ‘작별하지 않는다‘ 도 노벨문학상에 포함됐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도 폭력을 거부한 소설이다. 작가 한강은 국가 폭력으로 쓰러져 간 사람들의 아픔과 내면을 시적인 문체로 감동적으로 그렸다. 그녀는 1970년 광주 증흥동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친이 바로 소설 ’아제아제바라아제‘를 쓴 작가 한승원 선생이다. 필자는 한승원 선생이 심사한 신춘문예로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한강의 결혼식에도 직접 갔다. 그때 필자가 “아따, 한강 작가 볼라고 광주에서 올라와 부렀당게”하자 한강이 활짝 웃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필자의 운명을 바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그 후 필자는 신춘문예에 소설에 이어 시, 동화도 당선되었으나,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허무하게 하늘로 가자 생업을 포기하고 다음 아고라에 ’coma‘라는 닉네임으로 6000편의 정치 칼럼을 써 소위 ‘스타논객‘으로 통했다. 그때 같이 활동했던 닉네임 ’바람부는 언덕’이나 ‘늙은 도령’은 명문장가들이었다.
아고라가 일베들의 농간으로 결국 폐쇄되어 그들도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아마 촛불 집회 어딘가에 그들이 서 있을 것이다. 그후 필자는 서울의소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6년 동안 2000편이 넘은 정치 칼럼을 썼다. 그때 팬들이 서울의소리 구독자가 되어 응원해주었다.
“58년 개띠들은 정신차려라” 화제
2022년 4월 11일, 필자가 국회 앞에서 ‘개딸’들 앞에서 “전국의 58년 개띠들은 정신차려라!” 하고 외쳐 화제가 되었는데, 그래서인지 최근 60대도 민주 진영을 더 많이 지지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때 넥타이 부대가 지금의 60대들이다.
그런 그들이 어찌 윤석열 같은 친일매국 세력을 지지할 수 있겠는가? 민주 진영의 지지가 가장 높은 40대와 50대는 2002년 월드컵 4강 세대들이다. 이제 20대와 30대도 민주 진영을 더 많이 지지하니 앞으로 있을 모든 선거에서 국힘당은 참패할 것이다.
다시 듣는 정태춘의 노래 ‘5.18’
45년 전 5월, 광주 금남로에서 보았던 ‘비상계엄’이란 말을 4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듣게 될 줄 정말 몰랐다. 하도 마음이 아파 정태춘의 노래 ‘5.18’을 다시 듣는다. 그때 청년들이 이제 60대가 되었고 그들의 아들딸들이 ‘남태령 대첩’에 이어 ‘키세스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정의도 유전된다.
정태춘의 노래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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