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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海 민 족...한반도에서 유럽까지 고인돌 루트

유럽 고인돌 연대가 아무리 높아도 한반도 고인돌 연대를 못 따라 와..

윤복현 객원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1/11/20 [08:31]

大 海 민 족...한반도에서 유럽까지 고인돌 루트

유럽 고인돌 연대가 아무리 높아도 한반도 고인돌 연대를 못 따라 와..

윤복현 객원논설위원 | 입력 : 2011/11/20 [08:31]
▲ 한강 이북에서 만주에 분포하는 북방식 고인돌
고인돌 문화의 전파 경로 확인: 서유럽<-지중해<-흑해 연안<->인도<-인도네시아<-지나 절강성<-한반도

마고로 상징되는 여성을 상징하는 지석묘(支石墓)는 고인돌, 돌멘(Dolmen)이라고 부르며,환인.환웅으로 상징되는 남성을 상징하는 선돌(立石오벨리스크)과 함께 거석문화(巨石文化)다. 이러한 고인돌은 무덤(墓), 제단(祭壇), 묘표석(墓表石) 등의 기능이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대표적인 무덤의 하나가 고인돌이다.



고인돌의 분포(지도에서 노란색 지역)는 유럽, 북아메리카, 지중해연안, 아시아 등 거의 세계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나 각 지역마다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수가 분포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전남지방에 2만여 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가장 밀집분포된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1만년에 이르는 고인돌은 마고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한반도(특히 서남해 지역)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고인돌은 무덤이기도 하였고 제단이기도 하였다.



KNN다큐'고인돌 루트'화면.인도네시아 숨바 섬의 실제 고인돌 장례식의 동물 순장 풍습.이전에는 사람도 순장했다. 고인돌 문화와 관련한 파솔라(PASOLA)이라는 인도네시아의 전통 축제는 농사철에 대풍을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고대로부터 전승된 부족 간 창 싸움이나 돌 싸움을 통하여 풍요을 기원하고 각오를 다지는 일종의 제물 의식이라 한다. 필자도 어린 시절 정월 대보름날이면 옆 마을과 전투를 방불케하는 대나무 싸움이나 돌싸움을 하는 풍습을 가지곤 했는데, 이러한 한반도 고인돌 문화가 해양루트를 통하여 동남아로 전파되지 않았나 싶다.

부여의 순장제도가 바로 한반도 고인돌 문화에서 나왔다는 사실 또한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리고 고인돌에 시신을 안치하는 장례식에는 우리 민족과 함께 가족처럼 지낸 소와 돼지을 잡아서 바쳤다는 것이다. 이는 고대 땅이 비옥하여 농경문화가 일찍 발달한 한반도인들의 장례풍습이라 할 수 있으며, 고인돌 문화가 전파된 동남아 지역에서는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



KNN다큐'고인돌 루트'화면. 인도네시아 숨바 섬의 실제 고인돌 장례식 <덮개돌 운반 장면>

전 세계에 남겨진 고인돌의 수는 모두 6만개를 넘고 이 가운데 마고성에 해당하는 한반도에 남겨진 것이 절반에 이른다. 특이한 점은 고인돌이 남아 있는 세계 지역의 분포를 연결해 보면 한반도 일대에서 일본 큐슈 북부, 동남아와 인도를 연결하는 거대한 남방 항해로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바로 백제의 해상항로다.


몽골리안 루트가 동서양을 넘나 들었던 고대 한반도인들의 초원길이라면, 고인돌 루트는 세계 최초로 동서양을 넘나는 고대 한반인들의 바닷길이었다. 이 고인돌 루트는 과거 마한인들의 해양 실크로드의 거점이 된 지역이며 해상강국 백제의 해양루트로써 지금의 세계 최대 무역 항로를 그대로 이어 주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기금으로 KNN방송에는 <고인돌 루트>라는 제목의 다큐멘타리를 제작하였는데, 한반도에서 유럽에 이르는 7개국 30개 지역의 고인돌 취재를 통해 고대 해(환.한)민족을 비롯한 해양 민족의 활발한 해양 활동을 인류고고학적으로 재조명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방송의 목적이 다문화 다민족 국가로 나가야 한다면서 고인돌 연구에 있어 세계 고인돌 왕국인 한반도에서 유럽까지 전파되었다는 민족사관에 입각하지 못하고 유럽에서 한반도로 고인돌 문화가 유입된 것인양 주장하고 있는 점이 문제였다.

<고인돌 루트>라는 제목대로라면 고인돌은 유럽에서 해로를 따라 인도를 거쳐 한반도로 유입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고인돌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소개한 점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목적에 있어서는 극히 민족비하적이고 역사날조적인 방송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 그런지 지적해 보기로 한다.


유럽의 공동 묘지형 고인돌(한반도 북방식)



영국 아일랜드에 있는 고인돌 (한반도 북방식)

File:Hunebed-d27.jpg

네델란드에 있는 고인돌(한반도 북방식)

파일 : Dolmennormandy.jpg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는 고인돌(한반도 북방식)

만약 유럽이 고인돌의 고향이라면 유럽지역이 세계 최다 고인돌 지역이어야 한다. 그러나 유럽지역은 한반도 고인돌 양식을 모방한 고인돌들 밖에 없다. 원래 시원지는 원시적이고 규모가 작으면서 수효가 무지 많은 점이 특징이다. 한반도 고인돌들이 그렇다. 지나 동해안 지역(특히 월주지역)의 고인돌들도 한반도 고인돌에서 크게 벗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동남아와 인도,유럽의 고인돌들은 수효도 한반도 보다 적고, 규모도 큰 것들이 많다. 그러나 남방식.북방식이라는 한반도 고인돌 양식에서 벗어 나지 못한다.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수 많은 별자리(성혈)가 새겨진 한반도 고인돌

고인돌에 별자리들이 무수하게 표기해 놓은 이유는 1만 전에 태평양에서 사라진 무(마)대륙의 마고족이 해양족이고, 생존자들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로 이주하여 마고문명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마고족은 거석문화를 가진 해양족이다. 해양족이 항해하려면 별자리는 매우 중요하다. 마고족의 무대륙이 대서양에 있지 않고 태평양에 존재했다는 것이 단적으로 입증된다. 무대륙에 관한 신화와 관련하여 고대 인도인들도 자신들이 떠나 온 지역을 동방의 어머니 땅(마고지역=동북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인돌 천지인 해머리땅(한반도)이 엄연히 고인돌의 왕국인데, 당시 세계와 교류하던 과정에서 한반도 고인돌에 묻혔을 코카서스계 인종유골 몇개를 근거로 방송을 동원하여 유럽에서 전파된 문화인양 주장하는 것은 사대주의 사관이라고 본다.






고인돌 출토 유물들(토기.비파 청동검.돌칼.청동거울 등)

태양이 그려진 단군조선의 상징물인 비파청동검이 지나동해안이나 동남아 고인돌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이 단적인 물증이다. 땅이 비옥하여 태양신앙이 일찍 발달한 해머리땅을 환(한)반도라고 부르게 되는 이유가 해(태양=환=한=칸=간=안/환=헝=훈=흉)을 중시한 배경때문이다.

고대 한반도는 1만 7천년 전의 볍씨들이 출토(충북 청원)될 정도로 농경문화가 세계에서 일찍 발달했을 정도로 인구밀도가 높았고, 인구밀도가 높은 만큼 인원이 많이 필요한 고인돌 무덤들이 무더기로 산재되어 있는 고고학적 배경이다. 한자어가 아닌 순수 우리말로 사용하는 농경언어는 400여개 정도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인도인들이 사용하는 농경언어가 고대 한반도인들의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농경언어가 인도에서 유입된 것인양 날조하고 있다.



[사진설명]말레이시아 지역의 고인돌로 한반도 북방식인데 훼손되었다.동남아 고인돌지역에서는 '고인돌'을 배로 생각하고 있다.

변광현 고인돌 전문 연구가가 지나.동남아.인도.서남아.유럽의 고인돌들이 모두 한반도 고인돌 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주장이 그러한 배경이다. 그의 주장을 들어 보기로 하자.

"현재 우리가 알고 배우고있는 고대와 선사시대의 연대들은 가장 분명한 절대연대(絶對年代)라고 하지만, 오히려 가장 부 정확한 추정연대(推定年代)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대연대가 나오게 된 동기는 사실 영국과 프랑스 등지에 산재한 고인돌에 원인이 있었습니다...현재 알려져 있는 고인돌의 연대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주장되었으며, 그 연대를 대략 기원전 2000년에서 3000년 정도로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스페인의 어느 거석 묘지에서 기원전 4000년경이라는 엄청난 측정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데, 물론 이 연대를 가장 반겼던 이들은 영국 학자들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고인돌이 만들어지던 시기를 기원전 2000년에서 4000년경으로 확립시키고 이를 보급시켰지요. 그런데 이렇게 억지로 때려 맞추다 보니 프랑스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프랑스 서해안의 브르따뉴(Bretagne) 지방에 널려진 고인돌을 비롯한 초대형 거석유적들이 전설에서는 그저 기원 전후의 골(Gauls)족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영국과 보조를 맞추어 이제는 골족이 아닌 그 한참 이전인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의 고대 선사시대 역사에서 무려 2000년이라는 가공할 시간적 공백이 생기게 된 것이지요.

또한 여기에 맞추다 보니 유럽의 고인돌이 외계인(外界人)이 만든 유적이라고까지 말하게 되었는데, 더욱 가관인 것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엉터리 작가들이 여기에 상상으로 완벽하게 포장하여 그러한 거석 유적들이 1만년전 또는 2만년전에 만들어졌다는 등, 아예 선사의 역사를 상상과 허구로 멋지게 꾸며 놓았지요.

해양족이였던 고대 한반인들은 서쪽으로 항해하면서 베트남(Vietnam)을 거쳐 인도(India) 북부, 그리고 팔레스타인(Palestine) 지역, 그 다음에 이디오피아(Ethiopia), 그리고는 지중해(地中海)에서 위력을 과시하였습니다. 이스라엘(Israel)을 비롯하여 요르단(Jordan), 그리고 터어키(Turkey) 중부, 러시아(Russia) 남부의 흑해(黑海) 연안 까프까즈 지방까지 배를 통하여 그들의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중해 연안의 유럽인(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동부)들의 원조들 고대 한반도인들의 고인돌에서부터 영향을 받아 점차 더욱 커다란 고인돌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곧이어 대규모의 거석 건축물들을 만들기 시작하였지요. 그러나 지중해로 이주한 일부 한국인들은 알프스(Alps) 계곡을 지나 독일(Germany) 남부로 들어가 또 다른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가 현재의 영국(Scotland)과 아일랜드(Ireland)로 건너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지요. 그러니 브리튼(Britain) 섬에서의 둘레돌(環狀列石, Stone Circle)은 우선 이베리아(Iberia) 반도인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다시 한국인들의 영향권에 들어 갔습니다.

한반도 고인돌과 관련하여 영국(英國), 즉 잉글랜드(England), 웨일즈(Wales), 스코트랜드(Scotland), 그리고 아일랜드(Ireland)와 영국의 식민지(植民地)인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는 지금부터 4,000년 전 이상되는 과거에 아시아인(Asians)들이 서쪽의 죽음의 땅을 찾으러 갔다가 살게 된 곳입니다.

선사시대(先史時代)에는 죽음이 또 하나의 '저 세상(the other world)'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많은 아시아인들이 브리티쉬(British) 제도(諸島)로 이주(移住)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이 남긴 언어(言語)는 아직도 웨일즈 지방에 방언(方言)으로 남아있으며, 스코트랜드와 특히 아일랜드에서는 가장 분명하게 남아있습니다. 즉 문장(文章) 마지막에 동사(動詞)가 따르는 우리 한글의 문법(文法)이 이들 웨일즈와 아일랜드 고어(古語)에 남아 있으며, 또한 수 많은 고인돌(Dolmens)과 거석유적(Megaliths)들은 대부분 아시아에서 이주한 비이커족(Beaker People)들이 만들었지요. 스토운헨지(Stonehenge)와 애브버리 둘레돌(Avebury Circle) 등 수많은 영국과 아일랜드 유적들은 대부분 아시아에서 이주한 비이커족이 남긴 것입니다.

그런데 비이커(beaker)라는 것은 바로 신의주(新義州)에서 평양(平壤) 사이에서 많이 출토되는 '미송리형 단지'와 같은 것입니다. 또한 한반도(韓半島)의 많은 고인돌들은 이스라엘(Israel)과 요르단(Jordan), 러시아(Russia) 코카사스(Caucasas) 지방에서 발견된 고인돌들의 원형(元型)이며, 지중해(地中海)의 코르시카(Corsica, Corse) 섬에서는 돌널무덤(Cists)과 함께 우리나라의 개석식(蓋石式) 고인돌과 탁자식(卓子式) 고인돌이 발견됩니다. 또한 이같은 고인돌들은 피레네(Pyrenees) 산맥에서도 발견되면서, 프랑스와 그리고 브리티쉬 제도로 연결되지요.

그런데 유럽의 모든 대형 거석유적들은 모두 우리 한반도의 고인돌에서 파생(派生)된 것들입니다. 인도(India)의 고인돌은 한참 늦은 시기에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브리티쉬 제도의 둘레돌(環狀列石, Stone Circle)은 원래 스페인(Spain)과 포르투갈(Portugal)에서 건너간 한반도 고인돌 종족의 후손(後孫)들의 영향을 받아, 우리말로 '뫼'라고 부르는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에서 비롯된 구조입니다. 그러니 영국에서의 둘레돌이 얼마나 늦게 만들어졌는지 알만 하지요. 이 '뫼'라는 말은 영국에서 무어(Moor)라는 말로 남아있으며, 이 무어인(Moors)들이 바로 웨일즈 지방과 잉글랜드 서남쪽의 콘월(Cornwall) 지방, 그리고 아일랜드에 살던 아시아인들의 후손(後孫)입니다.

무어(moor)는 보드민 무어(Bodmin Moor), 다트 무어(Dart Moor), 엑스 무어(Exmoor), 노스욬 무어(North York Moor) 등 영국 중남부 지역의 황무지 고원지대를 일컫는 말인데, 그 원래의 뜻은 개활지(open land)로서, 평원에 솟은 언덕 정도로 여기면 적당합니다. 이 고원지대에 크고 작은 거석문화 유적지들이 지천으로 산재하고 있는데, 현재는 일년 내내 거센 비바람을 맞아 기후가 최악으로서 아무도 살지못하는 지역이지만 청동기와 철기시대에는 나무와 꽃이 피고 샘이 솟는 기후 좋은 지역이었다는 점이 고고학적인 자료를 통하여 드러나고 있습니다."

유럽의 고인돌 연대가 지금으로부터 4-5천년전에 불과하다면 한반도 고인돌 연대는 8천년이전까지 올라 간다. 그리고 세계 해안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고인돌들이 한반도 고인돌 양식을 하고 있다면 엄연히 세계 고인돌 왕국은 한국이 될 수 밖에 없다. 해양활동을 하더라도 고인돌 문명인들이 아니라면 해안 지역에 고인돌들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 만큼 고대에 해양족이였던 한반도인들이 해양활동을 주도했음을 증명하는 고고학적 물증이라 할 것이다.



산악지대의 적석총(피라미드)과 초원지역의 적석목곽분 무덤양식의 토대가 되는, 서남해 지역의 남방식 고인돌 무덤양식의 특징으로 돌로 만든 관(석관)을 사용하였던 종족은 오로지 한반도(한국)민족으로서, 요동(遼東)과 길림(吉林), 산동(山東), 남북한의 한반도(韓半島), 쿠슈(九州), 오끼나와(沖繩)에서만 발견되는데, 그 중심되는 지역이 바로 한반도다.

영국 최고의 전설인 아더왕과 마법사 멀린(Merlin) 이야기는 스토운 헨지(Stonehenge)와 고인돌과 관련된 전설이며, 영국에서 절대왕권의 도구는 단순한 돌덩어리와 검(劍)이었다. 영국의 국회 의사당과 유명한 교회 안에는 이와 비슷한 돌이나 직검(直劍)에 관한 유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직검의 원형(原型)인 돌단검(石短劍, 磨製石劍)이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다. 또한 진시황(秦始皇)의 무덤에서 출토된 보검(寶劍)도 직인검(直刃劍)이 아닌 곡인검(曲刃劍)으로서, 한반도와 요동지역에서만 출토되는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에서 변형된 것이다.

또한 이 비파형 청동검도 요동(遼東)지역이 아닌 남한에서 출토되는 돌단검에서 변형된 것으로, 돌단검의 검날(劍身)과 검자루(劍把)가 함께 이어 지고 여기에 다시 또 다른 검자루가 덧붙여지면서 만들어진 형태다. 그러니까 만주에서 출토되는 비파형 단검은 바로 남한의 남해안 지역에서 먼저 만들어지고, 그 후에 한반도인들의 이동으로 만주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코카사스와 그리이스에서 출토된 청동검들은 남해안에서 출토되는 비파형 단검의 변형으로, 입사귀와 비슷한 엽인검(葉刃劍)이며, 영국과 유럽에서 출토되는 직인검은 남한에서 만들어진 돌단검과 형태가 비슷하다. 이를 보고 일제시대에 일본의 어느 유명한 고고학자(考古學者)는 유럽의 검을 모방해서 우리나라의 돌단검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였는데, 남한의 고인돌에서 돌단검들이 엄청나게 출토되면서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분명 고인돌과 그 고인돌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을 보면 유럽의 고인돌과 유물들은 한반도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유럽 학자들, 그 가운데 특히 영국의 고고학자들은 자신들이 거창하게 세워놓은 절대연대(絶對年代)와 그 연대기(年代記)를 나열하면서 오히려 거꾸로 유럽에서 한반도로 전파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이러자 민족 주체성을 강조하는 북한에서도 이같은 유럽식 절대연대 측정 붐이 조성되어 영국이 만든 절대연대와 비슷하게 맞추어 놓았다. 그래서 북한과 남한에서는 고인돌 제작연대가 서로 2,000년 이상의 차이가 있다.

남북한 고고학계는 서양사관에서 속히 탈피하여 민족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연대와 유물 비교분석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검증방법으로 한반도지역이 세계 고인돌 문명을 낳은 발상지임을 세계에 널리 알려야 겠다. 아일랜드의 선 고인돌(한반도 선돌모양) 지역은 년간 관광객이 50만이라고 한다. 한반도 고인돌들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만큼 그 문명사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세계에 널리 알려 세계 관광객들도 넘쳐 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문화시대를 맞아 정부차원에서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와 문화재 연구 및 철저한 보존관리를 전제로 세계에 홍보하여 관광사업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이 절대 필요한 이유다. 정치판도 사대매국주의가 판치고 사학계도 고인돌이 유럽에서 한반도로 들어 왔다는 식의 사대매족주의가 판치는 한 대한민국과 해민족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정부와 정치인들과 사학계는 각성하고 분발해야 한다. /영상자료[고인돌 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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