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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갑-공희준 대담(진행:나꼼수 김용민) 3

한화갑 "구사일생 5번x9=45, 즉 45사일생 ‘김대중 대통령’은 필연이었다"

공희준 | 기사입력 2011/11/21 [01:32]

한화갑-공희준 대담(진행:나꼼수 김용민) 3

한화갑 "구사일생 5번x9=45, 즉 45사일생 ‘김대중 대통령’은 필연이었다"

공희준 | 입력 : 2011/11/21 [01:32]

‘김대중 대통령’은 필연이었다

- 김용민 (이하 김) :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의 용인술과 관련해서 예전에 여러 유머들이 인구에 많이 회자되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YS는 예를 들면 누구 경조사가 있다고 하면 지갑에 있는 돈 세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줬고,DJ는 세어본 다음에 공평하게 나누어줬다는 얘기가 정말입니까?

= 한화갑 (이하 한) : 나는 그런 경우를 한 번도 못 봤습니다.

- 김 : 그렇다면 그건 낭설이었네요.

= 한 : 순전히 지어낸 말입니다.

- 공희준 (이하 공) :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두 분이 DJ 서거 직전에 서로 화해했다고 들었습니다.

= 한 : 화해는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사과하고, 그것을 피해자가 받아들였을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가해자가 자기 혼자서 사과했다고, 화해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내가 그때 했던 말이기도 한데 당시에 누가 그걸 글로 옮겼더라고.

- 공 : 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무슨 ‘화해 인증샷’ 찍어오는 줄 알았습니다. YS가 사이월드에 미니홈피 계정 가지고 있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웃음) 물리적 측면에서 위해를 가한 걸로 보자면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장 괴롭힌 사람이 박정희와 전두환이 되겠지만, 정치적으로 DJ를 제일 강하게 공격한 사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도동 측에서 특히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소재가 이른바 ‘20억 플러스 알파’ 아니었습니까? 강삼재 씨가 총대를 메고 그걸로 계속 김대중 대통령 쪽을 밤낮없이 몰아붙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노태우 회고록’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 쪽에 20억 곱하기 100쯤 되는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고 폭로되어 있습니다. 아, 3000억 원을 주었다고 하니까 20억 원의 150배 정도 되겠네요. 대표님께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 측과 김영삼 전 대통령 측이 진짜로 그 정도 규모의 정치자금을 주고받았다고 보십니까?

= 한 : 과거의 정치적 관행을 참작하면 그만한 천문학적 액수의 숫자가 오고가는 것은 누구나가 다 짐작하고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야당은 몇 년째 계속 가뭄인데, 반면 여당은 매일 소나기 쏟아지는 일이 독재시대부터 우리가 체험한 일입니다. 또 여당의 경우에는 집권당의 총재이기도 한 대통령이 당의 운영자금을 대줬습니다. 청와대에 불려 가면 전부 돈 얻어가지고 나오는 것이 한때는 일종의 관례였습니다. 과거에는 그런 일들을 죄의식 없이 으레 하곤 했었습니다.
(편집자 주 : 노태우 회고록에 언급된 청와대-상도동 간의 정치자금 수수 부분과 연관된 더 상세한 언급은 부득이하게 생략했음을 독자들께서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 김 :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을 보니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해놨습니다. YS에 대해서는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는 식의 글이 있었습니다. DJ에 대한 盧의 우호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평화민주당을 뺀 3당 합당이 성사된 이유가 뭡니까? 김 전 대통령의 손익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 한 : (김용민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그와 관련해 제가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합당하자는 얘기가 청와대에서 와서 김 전 대통령이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 공 : 저는 김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합당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이 당연했다고 봅니다. 광주항쟁의 원인이 유언비어 때문이라고 아직까지도 믿는 사람과 손잡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인데.

= 한 : 김대중 대통령께서 그런 일로는 아주 철저한 원칙주의자였습니다. 타협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용기란 그런 데 있는 거예요.

- 공 : 하지만 그러한 원칙을 철두철미하게 지켜나간 덕분에 선거에서 몇 번씩이나 거푸 지셨잖아요? 좀 곤혹스런 질문을 드리겠습니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누구한테 졌을 때 가장 분하고 억울해하셨습니까?

= 한 : 모르겠습니다. 그런 건 직접 물어본 적이 없어서. (웃음)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선거에 번번이 질 때마다 참 애통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통령이 될 거라는 확신을 떨쳐버린 적은 없습니다.

- 김 : 세 번째로 대선에서 떨어지신 그 순간까지도?

= 한 : 그렇습니다. 1992년 낙선하지마자 정계은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걸 듣고 모두들 울었습니다. 동교동에 막 들어가니까 다들 응접실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왜들 그렇게 웁니까? 이대로 정치가 끝날 것 같습니까?”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달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계은퇴를 선언한 이후임에도 나는 꼭 ‘총재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대통령이 되실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김 대통령은 다섯 번이나 되는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극적으로 살아 돌아오신 분입니다. 나라에 큰일을 해야 하는 분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살려주신 거겠죠. 한번 살아나도 그걸 구사일생이라고 합니다. 다섯 차례의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나셨는데, 뭔가 할 일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이 살려주신 거지, 한번 살아나도 이걸 구사일생이라고 합니다. 5x9=45, 즉 45사일생입니다. 뭔가 할 일이 있으니까 하늘에서 번번이 살려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 때문에라도 나는 반드시 대통령을 하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한 1980년도에 우리들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일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다들 울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울지 마라, 걱정할 것 없다. 네 번까지 살려주셨는데, 하느님께서 일이 있어서 살려주신 것 아니냐? 그러니 다섯 번째는 안 살려주시겠냐!”고 했습니다. 그만큼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할 거라는 좌절감을 품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 공 : 아까 좀 전에 서열과 권위를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저 또한 권위주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믿긴 합니다만, 저는 우리나라 정치에서 마땅히 존재해야 할 서열과 권위마저 무차별하게 파괴된 것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뿌리에 대해 너무나 잘못된 맥락에서, 너무나 경박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제가 오늘 본의 아니게 김대중 전 대통령 진영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세력을 자꾸 분리시키려고 드는 것처럼 보이는 질문을 하게 되네요. 그럼에도 저는 서로 뿌리가 다른 집단을 억지로 봉합해놓는다면 그 후과가 실로 치명적일 거라고 확신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정치일선에 복귀해 국민회의를 창당했을 때 거기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반발했던 집단들 가운데 하나가 나중에 친노세력으로 불리게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시민 전 장관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상당히 극단적인 언사까지 써가면서 김 전 대통령의 정계복귀를 비토를 했거든요.

= 한 : 그 사람은 책까지 썼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될 일은 없을 거라고.

- 공 : 유시민 씨는 어쩌면 참 대단한 분 같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조갑제 씨 같은 사람들이 아무리 오랫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난해왔지만 DJ가 대통령 될 일은 없을 거라는 내용의 책까지 써낸 적은 없거든요. 그런데 이런 현상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한국정치의 고질적 맹점이 아닐까요?

= 한 : 그거야말로 우리나라 정치만의 특수성일 거라고 저는 봅니다. 왜냐? 오늘은 나를 욕하는 사람이 내일은 내 지지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선거운동도 해줄 수 있고요. 아직도 우리는 이념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당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표 얻는 데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서로 모인 거지.

- 공 : 제가 엊그제 강준만 교수가 쓴 ‘강남좌파’란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보고서 조금은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강남좌파’란 말은 제가 처음으로 조어해낸 말인데 왜 강 교수가 지어냈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한 : 그거 딱 특허청에 등록하면 돼. (웃음)

- 공 : 제가 지적재산권 전문가에게 문의해봤는데 안 된다고 합니다. (웃음)

= 한 : 제가 민주당 대표를 할 당시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측에서 만나자는 요청이 와서 박 대표와 점심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2002년 대통령 후보 경선 이전인 2001년부터 이미 ‘국민을 편안하게, 나라를 부강하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박근혜 대표 역시 ‘국민을 편안하게, 나라를 부강하게’라는 슬로건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허락 없이 내 주장을 가져다 쓰느냐고 식사자리에서 추궁했지. (웃음)

- 공 : 박근혜 씨가 수첩을 즐겨 지참하고 다니는데 아마도 그걸 주로 표절할 내용들을 기록하는 용도로 사용하나 봅니다. “오늘은 이거 베껴가야지.” 하면서…. 자기가 무슨 인간복사기라고. (웃음)

= 한 : 우리 정치인들과 국회의원들도 이제부터는 남의 지적재산권을 좀 존중해주면서 정치를 했으면 좋겠어요. 참모나 보좌관들이 정보를 얻어오면 자기 걸로 소화시키는 데만 급급하지 출처를 안 밝혀. 이건 보좌관이 알려준 정보에 바탕했다고, 이건 다른 정치인인 아무개의 아이디어에 기초한 거라고 정직하게 말해주면 얼마나 멋있겠어요. (웃음)

- 공 : 제가 왜 강준만 교수를 언급했느냐면, 강 교수가 자신의 책을 통해서 개진한 의견에 근거하자면 지금의 진보와 보수 간의 대립은 이념 투쟁이 아니라, 이념 투쟁의 탈을 쓴 엘리트들 간의 밥그릇 싸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충분히 동의하는 견해이고요. 서로가 서로를 표 찍어주는 기계로 바라보는 까닭에 우리 정치가 출세한 엘리트들 사이의 밥그릇 다툼 수준에 여전히 머물고 마는 게 아닐까요? 예컨대 제가 현역 정치인이라면 여기 제 옆에 앉아 있는 김용민 선생은 용미니즘, 그러니까 독립된 이데올로기를 지닌 독자적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표에 지나지 않게 보일 테니까요. 그냥 단순한 한 표밖에 안 되는 겁니다.

= 한 :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또 한 가지 다른 측면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똑같은 일을 시작해도 누가 맡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 공 : 우리나라 정치에서 누가 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 일이 뭐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 한 : 국회의원을 하면서 느낀 건데 똑같은 상임위에 있으면서 똑같은 상황을 가지고 활동해도 더 돋보이는 사람이 있고, 지지부진한 결과밖에 못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겁니다.

노무현 정부에 버림받은 무안공항

- 김 : ‘한화갑 공항’으로 세간에서 알려진 무안공항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한 대표적 사례란 비판적 시각에서 빈번히 거론되는 사업입니다.

- 한 : 그 일에 관해서만큼은 내가 이번 기회를 빌려서 분명하게 밝혀두고 싶습니다.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잘못이 큽니다. ‘한화갑 공항’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화갑이 공항을 만들었다는 걸 부각시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적자 공항을 한화갑의 주장으로 말미암아 정치적으로 만들게 되어서 국가에 손해를 끼치게 되었다고 일부러 강조하려고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을 때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대통령을 얼마나 극심하게 공격했습니까? 조선일보에서 쓴 것을 동아일보가 다시 받아쓰는 식이었습니다. 그때 군수의 주장으로 신안군 14개 읍면을 전부 국도로 연결했습니다. 거기에 다리 놓고 하는 것은 전부 국비로 해야 했습니다. 이걸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는 대통령이 직접 지시해서 자기 고향 마을들을 전부 국도로 이었놨다는 식으로 악의적으로 보도했습니다. DJ도 모르게 진행된 일들을 DJ가 시켜서 진행된 것처럼 왜곡한 거지요. 그런 왜곡을 막으려니 공항도 한화갑이가 지었고, 국도도 한화갑이가 놨다고 하게 된 겁니다. 무안공항에 관해 한마디 하자면 세계적으로 그렇게 좋은 위치에 들어선 공항도 드물 겁니다. 일기예보 통계를 보면 1년 가운데 안개가 끼어서 비행기가 못 뜨는 날이 20일도 안 됩니다. 14일에서 19일 사이가 평균입니다. 들어서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섰다는 소리는 말이 안 됩니다.

- 김 : 사실 인천보다는 무안 쪽이 훨씬 입지적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 한 : 훨씬 좋지요. 노무현 정부 때 싱가포르 정부에서 무안공항을 목포 신외항과 같이 빌려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때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던 연세대 문정인 교수가 나한테 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내가 싱가포르 대사를 직접 만나 얼마나 투자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으니 10년 내지 15년 사이에 10억 불부터 15억 불을 투자할 계획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청와대에서 'No!'라고 해버렸습니다. 싱가포르 당국의 설명에 의하면 무안이 자기네 나라와 캐나나 밴쿠버의 중간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무안에서 항공기가 급유를 받으면 좋답니다. 중국과 싱가포르 사이를 오가는 관광객들이 탑승한 비행기에 급유를 하는 데도 무안공항이 최적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국가기간시설을 왜 외국에 빌려줘야 하느냐며 그만 거부한 거야. 이게 과연 말이 된다고 봅니까? 안목 없는 사람들의 못난 생각이지. 우리가 뉴욕의 케네디 공항에 가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비행기들이 계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지 않습니까? 케네디공항 측에서 시간을 지정해주고 사용료를 물게 하는 거지. 그리고 뉴저지나 시애틀의 항구에 가보면 우리나라 화물선들을 위한 한진 부두가 있고, 현대 부두가 있습니다. 그 안에서는 사용료를 내고 해운회사 마음대로 쓰는 거야. 세계 어딜 가도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 공 : 이건 너무 적나라한 질문일 수가 있는데 무안이 호남에 있기 때문에 청와대에서 속된 말로 ‘뺀찌’를 놓은 것이 아닐까요?

= 한 :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을 잘못하는 바람에 청와대 사람들이 효과적인 공항 활성화를 대책을 거부했다고 볼 수도 있겠죠. (언성을 높이며) 무안공항이 잘못 지어져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건 아니란 말입니다. 외국인 싱가포르 사람들도 그걸 활용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왜 우리 한국만 못하냐는 말입니다.

- 공 : 만약에 무안공항이 부산경남 쪽에 있었다고 해도 청와대에서 ‘No’라고 했을까요?

= 한 : 그런 것도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겠죠.

- 김 : 지금 짓겠다는 동남권 신공항을 보면 산을 20개를 깎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예 바닷가에 흙을 부어다가 공항을 만드는 식입니다.

= 한 : 그건 어떻게 보면 완전히 정치적인 공항입니다. 김해공항조차 지금도 수요가 공급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 공 : 저는 두말할 나위 없이 참여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한나라당에 정권 빼앗긴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권 빼앗긴 일이야말로 무슨 변명을 둘러대든 납득이 안 되는 잘못이지요.

- 김 : 대표님, 2007년 대선정국에서 정말로 청와대가 마음만 먹었다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씨를 그전에 정운찬 씨 주저앉혔듯이 낙마시킬 수 있었다고 보십니까?

= 한 : 그건 모르겠습니다.

- 김 : 가능했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 한 : 이건 나도 전해들은 얘기입니다. 정동영 씨가 집권여당 대통령 후보로 딱 확정되고 나서 청와대에 전화해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하니까 “나는 당신을 도와주지 못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 공 : 그건 정식으로 언론에도 보도된 사실이기도 할 겁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청와대에다 “형, 나 좀 도와 줘.”라는 통사정했다가 “누구?” 하는 식의 퉁명스런 면박만 들었다는 겁니다. 노무현 정부 아래서 겪어본 제 경험론에 입각하자면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는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더 지역주의자의 면모를 짙게 드러냈습니다. 너의 지역주의는 정확히는 호남 지역주의는 타파해도, 나의 지역주의 즉 영남 지역주의는 그냥 내버려두자는 식이었습니다. 이계성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며칠 전에 조국, 안철수, 박경철 이런 사람들을 두루 언급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온갖 그럴 듯한 이유들을 갖다 붙이긴 했지만 방금 거명된 인물들의 근본적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들 영남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경상도라는 거지요. 그런데 저는 대놓고 물어보고 싶어요. 문재인이건 박경철이건, 조국이건 안철수건 국민들에게 그 실체가 제대로 알려진, 즉 검증된 사람들이 단 한 명이라도 있나요? 대표님이야 지금 인터뷰 중이기에 일단 빼놓고 차라리 박준영이나 최재천 이런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훨씬 검증된 사람들 아닌가요? 비록 영남 출신이 아니더라도 괜찮은 사람들은 찾아보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데 증권시장에서 작전세력들이 주가조작 하듯이 조직적으로 키워주는 대상을 살펴보면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석연치 않을 정도로 한결같이 경상도 사람들입니다. 방귀가 잦으면 똥이 되듯이, 우연이 잦으면 필연이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실 필연도 아닙니다. 사기나 야바위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 한 : 나는 지역주의를 없앨 수 없다고 봅니다. 없어질 수도 없고요. 타 지역에 대해 적대감만 가지지 않는다면 지역주의는 지역발전에 보탬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럼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사람들은 누구냐? 지역주의가 일어나야 이득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지역주의가 위세를 떨치게 되면 누가 이득을 보느냐? 인구가 많은 쪽이 이득을 보기 마련입니다. 인구가 적은 쪽은 지역대립이 심화되면 손해를 보기에 지역주의가 강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반면, 인구가 많은 편에서는 지역대립이 격해져야 더 많을 것을 얻게 되니까 자꾸만 대립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 공 : 문제는 지역구도의 관점에서 호남이 먼저정치적으로 무장해제를 했다가 그러한 무장해제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사실만 더욱더 적나라하게 확인됐다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요즘 인터넷에서 단연 유행하는 말 중에 하나가 이른바 ‘홍어드립’입니다. 정치기사를 보면 기사의 종류를 불문하고 김대중 대통령을 비하하고 호남을 폄하하는 댓글이 꼭 달립니다. 특정 동물인 ‘홍어’를 이용해 자행하기 일쑤입니다. 한 가지 꼭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불미스러운 현상들이 노무현 정부 후반기부터 나타났다는 겁니다. 지역화합을 제창하면서 집권한 참여정부 시절 호남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감이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어느 단계까지 갔느냐? 소녀시대라는 아이돌 그룹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멤버가 태연이라는 아가씨입니다. 이 아가씨가 전주 출신인데 소녀시대가 관련된 기사마다 기사의 성격을 불문하고 약방의 감초처럼 꼭 따라붙는 악성댓글이 있습니다. ‘태연=전라도’입니다. 김태희 관련기사에 ‘김태희=경상도’란 댓글은 당연히 없고요.

= 한 : 호남에 대한 편견과 혐오감을 의도적으로 유발시키려는 목적에서인가요?

- 공 : 물론 그렇습니다. 물론 호남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호남에 대한 반감과 혐오감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무현 정부가 진실로 진정성을 가지고, 보다 적극적 자세로 지역통합 정책을 펼쳤다면 과연 호남에 대한 인터넷상의 악의적 공격이 참여정부 후반기에 본격적으로 대두했을지 의문이 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호남에 대한 사이버공간에서의 악의적 비방공세는 노무현 정부 후반기부터 봇물을 이루며 활개 치기 시작했습니다.

호남 혐오주의자들에게 저렇게 비굴해서야

= 한 : 국민의 정부가 물러난 다음부터는 청와대에 호남인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처음에 누구더라, 인사수석 정찬용, 비록 호남 사람이지만 인사 문제에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한 건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대신에 유시민 씨 같은 철저한 호남 혐오주의자들이 도리어 득세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유시민 씨가 자기 홈페이지에 호남에 대한 장문의 글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 공 : 저도 대충 기억납니다.

= 한 : 그런데 그 글에서 참으로 기가 막힌 인식이 드러납니다. 호남에 대한 적대감은 단지 경상도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거야. 전국적으로 호남을 혐오하고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영남 대 호남 대립이 아닌, 전국 대 호남의 대립이라는 진단이었습니다.

- 공 : 설사 유시민 씨의 주장이 현실과 부합되는 측면이 다소 있더라도 적어도 진보적 정치인이라면 그러한 잘못된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유시민 씨 같은 사람들은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태평스럽게 분석만 하고 끝나곤 합니다.

= 한 : 유시민 씨가 고양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서 내가 그곳 호남향우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거기에서 향우회장을 지냈던 사람이 유시민 씨를 졸졸 따라 다니더라고. 유시민이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데. 그래서 내가 속으로 “호남을 혐오하는 정치인을 저렇게 비굴하게 모시고 다니니 어디에서 쓸개 빠졌다는 소리나 듣지.” 하면서 혀를 끌끌 찾습니다. (비분강개하는 어조로) 진짜 쓸개 빠진 인간들이야!

- 공 : 정세균 씨가 민주당 당대표를 할 때 차마 웃을 수 없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연출된 적이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영남편중 인사를 규탄하겠다면서 민주당에서 청와대에 인사정책에 관련된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막상 받아보니까 민주당이 질의한 특정한 고위직의 호남 출신 비율이 이명박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보다 외려 더 높게 나왔습니다. 결국 민주당이 알아서 깨갱했지요. (웃음) 저도 예전에는 영남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주로 호남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다가 방향을 전환한 계기가 영남 사람들, 정확히는 소위 영남 민주화세력은 남들이 자신들을 비판하지 않으면 이걸 화해하자는, 연대하자는, 통합하자는 선의의 의사 표시로 받아들이지 않음을 발견한 일이었습니다. 그러기는커녕 “저것들이 드디어 우리한테 백기를 들었구나!”라고 그릇되게 해석하면서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오방방자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같은 잘못된 시그널을 영남 민주화세력에게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너희에게 굴복하지 않겠다.”, “우리는 너희와는 타협하지 않겠다.”, “우리는 너희한테 비굴하게 구걸하지 않겠다.”고 온건하게 말하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제 경험칙상 안 되더라고요. 일단은 공격해야 했습니다. 대화하고 통합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격부터 하고 봐야 하는 비참한 상태가 영남 민주화세력을 중심으로 조성된 셈입니다. 너무나 무기력하게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주는 바람에 이와 같은 모순적 상황이 초래됐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나간 과오에 대한 참다운 반성이 결여된 사람들까지 무조건 포함하는 ‘원칙 없는 묻지 마식 통합’에는 시종일관하게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이제 마지막 질물을 드려야겠네요. 김대중 대통령 당시에 국민들에게 보여줬던 성공적인 민주정부, 유능한 민주정부, 나라를 맡길 만한 믿음직한 민주정부를 다시 한 번 더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보통은 야권통합이 시급하다고 하는데요.

- 김 : 하나 더 추가해서 질문을 드리자면 요즘 진보진영에서 나오는 아젠다가 무상복지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한 : 나는 민주정부를 또다시 탄생시키려면 국민이 똑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천독점, 정치독점, 국회독점의 세 가지 독점의 타파가 중요합니다. 이것들은 국민들께서 투표독점을 타파해주셔야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민주정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중요합니다.

- 공 : 대표님께서 생각하고 계실 민주정부의 개념 규정이 궁금합니다.

= 한 :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세계 각국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기술적 면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정치는 전부 자기 울타리만 쌓아놓고 국내에서만 경쟁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경쟁대상이 없으니 정치가 경제에 비해서 자연히 낙후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국민이 똑똑해야만, 곧 인물을 보고 투표해야만 민주정부의 재탄생이 가능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정치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정직성을 꼽고 싶습니다. 정치인은 모름지기 정직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아닌 것은 솔직하게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과 발언에 대해 당당하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애국심과 정직성을 갖춘 정치인과, 똑똑한 국민이 만나게 된다면 새로운 민주정부의 탄생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무상복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 대신 얼마나 효과적으로 복지의 혜택을 넓혀 가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 : 이를테면 무상급식과 관련해서는요?

= 한 : 저는 무상급식은 찬성합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기 때문입니다. 의무교육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학교를 다니는 제도입니다. 부자라고 더 많은 교육을 받지는 않습니다. 국가에서 책임지는 교육이므로 먹는 것도 똑같이 책임져야 합니다. 의무교육은 차등이 없는 교육입니다. 의무교육에 차등을 둔다면 급식에도 차등을 둬야 합니다. 그런데 의무교육에는 차등이 없지 않습니까? 장기표 씨가 녹색사회민주당을 창당한다고 들었습니다. 장기표 씨가 한 인터뷰를 보니까 무상급식 찬반 투표를 실시하는 데 투표비용이 180억 원이랍니다. 그런데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일에 드는 비용은 220억 원이랍니다. 220억을 절약하려고 180억을 들여서 투표를 할 필요는 없다는 장기표 씨의 지적에 나는 공감이 갔습니다.

- 공 : 오세훈 씨가 재주는 정말 탁월합니다. 망하는 재주는. (웃음)

- 김 : 참 어설픈 사람입니다.

= 한 : 내가 볼 때는 오세훈 씨가 경륜이 짧아서 그렇습니다. 미국이 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한번 보세요. 여소야대 정국을 견뎌내면서 협상에 임합니다. 이번에도 백악관 입장에서는 좀 불만스러운 결과겠지만 결국은 타협의 창구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 경우를 봅시다. 나는 과연 서울시장이 민주당이 장악한 시 의회와 얼마나 진지한 자세로 대화와 협상을 시도했는지 의문입니다. 서울시 의회가 제출한 예산에 시장이 “그래, 하자!” 해버리면 그것 역시 시장의 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이 너무나 좁아요. 내가 오늘 누구와 낮에 점심을 함께하면서 물어보니까 자기는 오세훈 시장에 대한 반대의 표시로 기권을 하겠답니다. 투표해서 반대하는 것은 시장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거랍니다.

- 김 :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사실은 저도 2007년 대선에 투표를 안 했습니다. 오후 2시쯤에 집에 들어와서 상황을 알 만한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더블스코어가 아니라 거의 세 배 가까운 격차가 났다는 거였습니다. 정동영 후보를 찍어봐야 투표율만 괜히 높여줘서 이명박 후보만 덕을 보게 된다는 생각이 결국은 들었습니다.

= 한 : 나는 정동영 후보 찍어주러 투표장에 갔습니다.

- 공 : 저는 축적이 있는 정치를, 그것이 올바르고 정당한 전통과 권위라면 기꺼이 존중해주는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노장 축에 든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아직은 멀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보다 더 나이 먹고 이런 얘기를 하면 자기가 이득 보니까 하는 소리라고 평가절하를 당할 수가 있으니까요. 축적이 이뤄지고, 전통과 권위가 살아있는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이제부터라도 해야겠습니다.

= 한 : 우리가 이렇게 가끔 주제를 가지고 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전화번호 좀 달라고. (웃음)
[끝]

* 진행 : 김용민ㆍ공희준 / 기록 및 정리 : 김정 / 편집 : 공희준
출처:수복(본 대담전문은 유료이므로 무단전재 퍼가기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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