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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의 벗님들이 보내주신 마스크를 쓰고 일하면서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6/02 [23:37]

고국의 벗님들이 보내주신 마스크를 쓰고 일하면서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0/06/02 [23:37]

6월의 첫날, 뉴스는 온통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분노하는 시위에 관한 것들입니다. 토요일 일 마치고 스테이션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저는 참 오랜만에 보는 광경을 봤었습니다. 사과탄을 굴리는 경찰의 모습, 그리고 얼굴에 두건을 쓴 시위자들의 모습. 그것은 오래 전 제가 서 있던 그 거리와 겹치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언제 그런 비가 내렸냐는 듯 화창합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거나 혹은 쓰지 않은 채로 거리에서 햇살을 쬐며 달리기를 하거나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말에 한국에서 날아 온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걷다가, 지금 친절한 어느 손님의 집 앞 데크 테이블 옆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네이버에서 와인카페와 인연을 맺은 건 2004년부터? 처음 여기에 블로그를 만든 때부터였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다음카페의 '와인리더 소믈리에'에서 이 카페로 옮겨 오신 분들이 많았으니 그때부터의 인연이었을 겁니다. 그 당시 와인은 핫한 아이템이었고, 뭔가 시대의 상징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와인엔 괜히 뭔가 스너비한 것들이 얹혀 있기도 했지요. 그 바람에 솔직히 바람도 잔뜩 들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그 안에서 꽤 쓸만한 정보들을 나눠 주는 분들이 있었고, 그 분들과 저는 글로 서로 맺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지금은 변호사 개업을 하신 판사 출신 지객님이 연구원 자격인가로 시애틀에 오시면서 이곳에서 오프로 모여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와인카페의 운영진이던 웅가님은 워싱턴주 와인 어소시에이션의 초청을 받아 이곳에 왔다 갔었고 우리는 그날 정말 '미친 밤'을 함께 보냈지요 ^^. 호텔 방에서. ^^;;

그리고 이곳에 자주 출몰하시는(?) 별도 님, 그리고 아직 얼굴을 뵙지 못한 그랑크뤼 님께서 함께 갹출하셔서 한국에서 마스크를 보내 주신 거지요. 저는 그 덕에 제 큰 얼굴도 확실히 가려주는 그 마스크를 쓰고 벗님들께 감사하며 오늘 6월의 첫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참 어지럽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승은 잦아들 줄 모릅니다. 이곳은 오늘부터 일부 자가 격리조치가 해제되긴 했으나, 바이러스의 확산세는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벗님들께서 마음을 모아 보내주신 마스크는 제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미국산의 덴탈마스크(아마 이것도 미국산이 아니라 중국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보다 더 안전하게 제 큰 얼굴도 커버해주는 마스크로 무장하도록 도와주신 건, 아마도 안전하게 일 잘하고 있다가 언젠가 건강하게 만나 와인 한 잔 웃으며 나누자는 배려였겠지요.

국제 익스프레스 소포로 날아온 이 마스크를 보며 온갖 생각이 다 듭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증오의 바이러스까지도 날아다니고 있는 미국에서 암튼 잘 버티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님들 다시 시애틀에 모습을 드러내신다면, 그리고 제가 한국에 갈 수 있는 그 날이 온다면, 즐겁게 와인 나누면서 "그때 이런 일도 있었지." 라는 회고담들을 나누며 크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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