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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이기는 데만 관심이 있는 대통령

"대통령이 정부와 의사와의 갈등을 의사와 국민과의 갈등으로 프레임 바꿔"

노환규 의사 | 기사입력 2024/03/13 [00:03]

오직 이기는 데만 관심이 있는 대통령

"대통령이 정부와 의사와의 갈등을 의사와 국민과의 갈등으로 프레임 바꿔"

노환규 의사 | 입력 : 2024/03/1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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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가 물었다.

"정부가 진짜 전공의들을 면허를 정지할까요?"

"아뇨, 못할 겁니다."

"할 것 같은데요?"

"아뇨.. 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요?"

 

"2/6 정부가 대규모 의대증원을 발표했습니다. 전공의들의 반발을 예상한 정부는 발표 당일에 빅5 병원에 경찰을 배치했고, 다음 날엔 전공의들의 핸드폰 번호를 입수해놓았습니다. 그리고 계속 처벌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죠. 

 

정부는 기계적으로 법을 집행하네, 예전과 같은 선처는 없네, 구제도 없네,, 언제까지 돌아오면 처벌 안할 거네,, 라고 했지만, 그 사이 처벌하겠다고 말만 하면서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오늘 3/11인데, 처벌 받은 전공의가 한 명이라도 있나요? 

 

처벌을 진행하고 있는 건, 전공의들이 아닌 의협 비대위원들과 노환규라는 일개 개원의 뿐입니다. 이들을 자꾸 미디어에 노출시키는 것은 정부가 이렇게 강력히 대응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시위용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공의 사직에 전혀 대응을 못하고 있죠.

 

정부가 이렇게 말과 달리 미온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건, 전공의들을 처벌하는 순간 그나마 진료현장을 지키고 있던 교수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리고 법리적으로도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의사면허정지 처분을 하는 것이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법의 전문가들이 말합니다. 사직이 유효하면 업무개시명령이 무효하기 떄문에 불이행이 불법이 아니라는 것인데, 법 전문가들은 사직서를 제출하는 순간 유효하다고 말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지금의 상황은, 범죄자들만 상대해왔던 검찰출신의 권력자가 의사들도 협박으로 겁을 주면 겁을 먹고 수그리고 들어올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통하지 않고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자 당황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중대본의 언론 브리핑을 하는 자리에서 그 동안 의사들에게 모욕적이고 자극적인 발언을 지속해온 박민수 차관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전병왕 실장으로 대체된 것도, 더 이상 의료계에 강압적인 정책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가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처벌 이전에 돌아오면 선처하겠다는 발언도 정부의 태세전환이라고 생각됩니다. 선처란 없다는 과거 발언에서 바뀐 것이죠. 정부가 이제 의사 달래기에 나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세요?"

 

"절대 대한민국 의료는 2/6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비가역적인 상황으로 바뀌었어요. 젊은 의사들은 의대정원 숫자조정이 목표가 아닙니다. 숫자가 조정된다고 돌아가지 않아요.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와 의사와의 갈등을 의사와 국민과의 갈등으로 프레임을 바꿔버렸잖아요. 거기서 시작된 의사에 대한 악마화 작업 때문에 의사들이 상처를 너무 많이 입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의사들이 의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회의에 빠져 있습니다.

 

일례로 00대병원에서 흉부외과 전임의가 10명이 단체로 사직을 했는데, 지금 어디에도 취업을 안하고 있습니다. 흉부외과 의사를 하기 싫은 거죠. 모두 멘붕상태에 있습니다. 그중 2명이 저희 병원에 며칠간 진료참관을 왔다가, 오늘 고향에 내려간다고 둘 모두 내려갔습니다.

 

아마도 정권이 바뀌어서, 새로운 대통령이 매우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모를까 이미 마음이 상할대로 상한 의사들은 직업에 회의를 갖고 더욱이 필수의료를 외면하게 될 겁니다.

 

이번에 윤대통령이 필수의료를 하는 의사들은 헌법적 책무를 갖고 있는 직업인이기 때문에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잖아요. 그런 얘기를 듣고 어느 의사가 필수의료를 선택하겠습니까.

 

그리고 정부는 간호사/한의사/약사들에게 의사 업무를 나누어주고, 현행법에 불법인 원격진료를 전면개방하는 등 의사들이 늦게 돌아올수록 손해라는 메시지를 주면서 의사들을 자극해왔지만, 그럴수록 의사들에겐 돌아갈 이유가 점차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돌아갈 징검다리의 돌들을 치워버리는 일을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이죠. 진정한 의료대란이 점진적으로 상당기간 퍼져나갈 것으로 봅니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귀중한 생명들이 피해를 입을지... 모두 대통령 한 사람의 고집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정말 큰일이군요."

 

"네.. 정말 큰일입니다. 그리고 예전과 다른 게 또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의대생이 휴학을 하거나 전공의가 파업을 하면 부모님들이 걱정을 하고 빨리 복귀하라고 종용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부모님들이 그러지 않습니다. 함께 상처를 받았거든요. 교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총선이 끝나면 좀 나아질까요?"

 

"아뇨, 저는 총선과 무관하게 더 심각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 그렇죠?"

 

"대통령이 고집을 꺾지 않을 테니까요. 그는 오직 이기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죠. 의사에게 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의사들에겐 승리라는 게 없습니다. 정책을 막기 위한 투쟁이기 때문에 잘해봐야 본전인데 투쟁해서 원위치로 오는 게 어떻게 승리가 되겠습니까.

 

어쩌면 윤대통령은 이참에 의사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의사들을 카르텔로 바라보고 억압정책을 쓰는 건데, 그건 범죄자들에게나 통하는 것이고 의사들에게는 완전히 반대의 역작용을 내는 방법입니다. 상처입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중심으로 진료현장을 떠남으로 인해 발생하는 진정한 의료대란이 이제 고작 시작 단계인 건데 정부가 아직도 그 심각한 상황을 모르는 듯 합니다."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정말 윤대통령은 떠난 의사들이 돌아오도록 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데만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확한 표현을 해주셨네요."

"해결책은 있을까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 있다. 대통령이 머리숙여 국민과 의사들에게 진지하게 사과하는 것... 그런데 내가 아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참고로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보수 성향 인사로 대한정맥통증학회 회장 및 하지정맥류클리닉 하트웰의원 대표원장이다. 노환규 전 회장은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부추긴 혐의로 고발돼 지난 9일 경찰에서 11시간 넘게 조사를 받기도 했다.

 

노환규 전 회장은 지난 11일 페이스북을 통해 “5년 전인 2019년 6137명의 의사들이 조국 전 장관의 퇴진과 (입시비리 혐의를 받는) 조민의 퇴교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라며 “그렇다. 내가 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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