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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군부독재가 빼앗은 영남대엔 새마을기만 나부낀다...부동산 투기의 효시는 박정희!!

1981년 최태민, 2021년 최외출이 지배하는 영남대, 40년 지나도 너무나 똑같다. 그 배후는 여전히 박근혜다

문해청 | 기사입력 2021/03/19 [09:50]

박정희 군부독재가 빼앗은 영남대엔 새마을기만 나부낀다...부동산 투기의 효시는 박정희!!

1981년 최태민, 2021년 최외출이 지배하는 영남대, 40년 지나도 너무나 똑같다. 그 배후는 여전히 박근혜다

문해청 | 입력 : 2021/03/19 [09:50]

  

 


[국민뉴스=문해청 기자] 이용우 회장(영남대 민주동문회)은 최근 영남대 총장이 반성 없는 감정적 감사로 대학교 교수회 대상 인권억압교육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보며 대학교와 지역사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SNS 정보관계통신망을 통해 일침을 가했다. 

 
현재 영남대가 전. 교수회의장 이승렬 교수님을 징계할려는 첫째 이유인 경주최부자 후손 최염 선생 초청강연회 때문이다. 마지막 경주 최부자 최준 선생과 박정희-박근혜에 얽힌 영남대 간략한 역사는 이렇다.  

 
최준 선생은 경주 최부자 만석꾼 토지를 담보로 백산무역을 설립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다 파산한다. 해방 이후 조선식산은행에서 담보물을 돌려받은 토지를 비롯하여 살던 집과 조상들의 산소가 모셔진 선산까지 포함된 전 재산을 다시 교육사업에 투입하여 민족교육에 헌신했다.  

 

 


다음은 영남대학교의 역사적 흐름을 살펴 본다.  

 
1947년에 설립된 민립대학 대구대 설립(독립운동가로 상해 임시정부 재정의 60%을 부담했던 경주 최부자 최준 선생을 비롯한 영남 유림의 공동 출연으로, 경주 교리 종가집, 조상들 묘지가 있는 선산도 기부함)했다. 1950년 최해청 선생이 시민대학으로 설립한 청구대이다.  

 
1960년 419혁명을 짓밟고 박정희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다. 최준 선생은 대구대의 발전을 위해 삼성 이병철에게 대구대학의 재단이사장을 댓가 없이 넘긴다. 

 

 


이병철은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대구대를 최준 선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에게 바친다. 1967년 12월 15일, 영남대로 합병되는 과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처럼 꾸몄다.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은 각각 이사회를 열어 두 학교의 합병안을 통과시켰고, 그 직후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휘로 영남대설립이사회가 열려 미리 준비된 합병약정서를 통과시키고 문교부는 바로 다음날 설립인가를 내주었다.  

 
마치 박근혜 / 최순실 국정농단에 의해 K스포츠 재단이나 미르재단의 설립인가가 하룻만에 나온 것과 흡사하다. 영남대의 설립이사들은 대부분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이나 정권실세들이었다.   

 
초대 이사 : 이효상, 이후락, 신현확, 김성곤 등 등 임명 

 
1968년 경산지역 교지확보 - 이후락 비서실장을 내세워 폭압적 토지 몰수했다. 105만평 : 3억 2천여만원(토지보상 2억8천만원 / 평당 265원, 5천만원 / 이전 보상, 분묘이장비 등) 토지소요자 수 : 2,800명 / 정주민 : 130세대 / 분묘 4,000여기

 
박정희는 강제 매입한 경산 학교부지 중 10만평을 조폐공사에 매각해 막대한 차익으로 영남대를 건설했다. 

 

 

 


부동산 투기의 효시는 바로 박정희이다.  

 
지금 대구의 중심가 노보텔 자리는 원래 청구대학이 있던 자리였다. 청구대학을 건물을 세금 걷는 대구지방국세청에 매각하였다.  

 
국가가 아주 비싸게 사립대학의 자산을 매입한 것이다. 영남대는 박정희가 부일장학회를 빼앗아 이름 바꾼 516장학회 / 이후 ‘정수(박정희+육영수) 장학회’와 함께 훔친 장물이다. 박근혜는 그것을 유산이라고 우기고 있다. 

 
통합 이후 1979년까지 절대권력 유신독재자 박정희를 등에 업고 비약적으로 교세 확장한다. 1979년 박정희가 부하에게 총살당하고 다시 쿠테타로 정권을 전두환의 비호 아래 1980년 4월 24일, 29세의 박근혜가 영남대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영남대 학생, 교수들은 유신잔당척결, 민주재단 건설, 학원민주화 요구하며 1만여 명이 경산캠퍼스에서 대구 대명동 캠퍼스까지 가두투쟁을 전개한다.  

 

 

1980년 11월 18일 박근혜는 허수아비 이사장을 세워 놓고 이사로 수렴청정 한다. 

 
1984년 ~1988년 박근혜, 박근영 자매가 이사로 앉아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 1987년 6월항쟁으로 1988년 여소야대 국회가 만들어지고 사립대학에 대한 초유의 국정감사가 영남대학교에 실시되어, 박정희-박근혜가 영남대학교에 기여한 돈이 한 푼도 없다는 진실이 들어났다.  

 
박근혜 재단이 들어선 후 8년 동안 박근혜는 영남대에 딱 한차례 방문했다. 박근혜의 비호 아래 최태민 일가 4인방(의붓아들 조순제 영남투자금융 전무 / 조순제 아들 조용래 1987년 경제과 부정입학)을 영남대 각 기관에 심어놓고 부정축재와 부정 입학(1인당 3천만원)등 온갖 비리를 자행했다. 

 
하물며 경주 최부자집 조상 묘가 안장되어 있던 선산까지 후손들의 반대에도 팔아 먹는 패륜적 작태를 저질렀다. 이렇게 마련된 축재 자금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종잣돈이 되었다. 

 
1988년 박근혜 재단 퇴진 / 총장 직선제 등 학원 민주화를 이룩했으나 박근혜 적폐 추종 세력을 축출과 온전한 민주성과 공공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미완의 과제로 남겼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 노무현 정부에서 민주적으로 개정된 사립학교법을 재개악하는데 앞장섰다.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영남대가 임시(관선)이사회 체제에서 정이사로 전환하게 되었고 새누리당 대표이자 차기 유력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에게 정이사 4인 추천권이 주어져 박근혜 재단이 다시 복귀했다. 박근혜 재단 복귀 이후 대학 발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가. 영남대학교에 박정희 새마을대학원을 설립하여 박정희 우상화,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왜곡에 혈안이 되었다. 나. 이사회 권한 강화와 함께 비대화, 관료화되어 대학의 각 기관에 군림하게 된다. 다. 무리한 업무지시와 독단적 학사운영개입 등 폐해가 날로 심화되었다.  

 
박근혜 재단이 다시 들어서고 2011년 4월 총장, 의료원장, 직선제 폐지되었다. 영남대 총장실에는 박정희의 대형 영정을 모시고 역대 총장들의 작은 사진이 쪼로니 붙여져 있다.  

 
영대병원 의료원장실에도 박정희 영정이 똑같은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다. 현재 영남대는 박근혜를 누님이라 부른다는 최측근 마름이자 박근혜 재단이 다시 영남대에 들어온 지난 10여 년 동안 영남대를 박정희 새마을 대학으로 유신독재를 미화의 장으로 만든 최외출이 박근혜의 낙점을 받아 총장이 되었다. 

 
지난 2월 1일 총장에 취임한 최외출은 그동안 영남대 에서 박근혜 재단 퇴진과 민주적 총장 선출 투쟁에 앞장서 온 전 교수회 의장 이승렬 교수와 사무국장 김문주 교수를 징계하겠다고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다. 영남대의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에 정통성을 가리고 유신독재의 강탈 장물에 새마을운동으로 치장하는데 혈안이다. 

 
아직도 경주 교동 최부자집은 영남대 소유이며 영남대 총장은 관리인이다. 경주시에서 최부자의 정신을 널리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영남대는 계속 못마땅해 하고 있다. 

 
지난 74년 역사의 영남대의 정통성은 (구)대구대, 청구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엄청난 국고 지원으로 발전하였기에 대학의 운영권은 구성원인 교수, 학생, 직원과 국가와 지역사회에 주어져야 한다. 

 
"독립운동 정신에 뿌리를 둔 영남대는 독재자 박정희를 지우고 민족대학, 민립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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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미안 2021/04/17 [11:45] 수정 | 삭제
  • 이게 기사인지... 푸념인지.. 단어 선택이 굉장히 엉성하고 논리적인 전개는 찾아볼수가 없네요. 어디 개인 일기장에나 나올법한 글들을 쓰셔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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