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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익숙해져야 하는 바쁨 속의 단상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5/05 [17:26]

갑자기 익숙해져야 하는 바쁨 속의 단상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0/05/05 [17:26]


도저히 어디 앉아서 밥 먹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내일부터는 짐이 많아질 것 같으니 오전 6시 30분까지 출근하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소포가 많아진 건 아마존에서 물량이 넘쳐 이것을 우체국 쪽으로 넘긴 것 때문에 그렇겠지요.

갑자기 이렇게 소포가 늘어난 근본적 이유는 다음주 일요일이 어머니날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어머니날은 고급 레스토랑들의 대목이며, 화훼상의 대목이었겠지요.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 모든 평소의 '루틴'을 박살내 버린 겁니다. 예년 같으면 식구들이 이런 핑계로 모두 식당에 모여 거하게 같이 함께 하며 카네이션을 달아드렸을 날, 그러나 그 대신 선물을 보내는 것으로 갈음을 하는 겁니다. 식구들이 다 모이는것도 두려운 일이 된 것이지요.

그렇다고 아마존이 노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듯 합니다. 아마존 상거래는 미국에서만 하는 게 아니니까요. 국제 상품배송망이 막힌 상태가 되면서 아마존은 오히려 조금씩 손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이들은 자체 배송을 중단키로 결정하고 페덱스나 연방우정국에 물량을 맡기게 된 겁니다. 코로나 때문에 이들도 결국 자체 배달을 그만두게 된 것인데, 이는 이들이 고용하고 있는 인력들이 모두 해고되는 것을 뜻하니 슬픈 일이기도 한 것이지요.

아무튼 이런 변화가 생기면서, 주어진 시간 안에 배달해야 하는 저는 소포를 한꺼번에 엄청 들고 계단을 오르다 그만 발을 약간 삐끗하기까지 했습니다. 한참을 절룩거리며 배달을 하다 보니 온 몸에 땀이 비오듯 하더군요. 다행히 지금은 조금 가라앉은 듯 합니다. 걸어서 밥을 버는 놈이 걸음이 불편해지니 참 고역이었습니다.

아무튼 내일부터는 한 시간 일찍 일을 시작해야 하니 조기 숙면이야말로 오늘 필요한 것이겠지요. 아침에 서두르지 않도록 이런 저런 것들을 챙겨 놓아야 합니다. 도시락으로 싸갈 과일과 샌드위치도 만들어 챙겨 놓아야 하고. 오늘 아침엔 늦게 일어나 커피도 점심도 챙겨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블로그 이웃이며 제가 오래 전 일하던 배달구역에서 델리를 운영하고 계신 이삐꿀물님 부부께서 맛있게 싸 주신 샌드위치와 그 집의 커피를 제 잔에 담았지요. 마치 쿠바 샌드위치의 느낌이 나는 맛있는 샌드위치와 커피는 지쳐가는 제게 많은 활력을 불어넣어 주더군요.

경제란 것이 지금처럼 돈 많은 자들의 게임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요즘 더욱 깊이 실감하고 있습니다. 먹고 살면서 삶을 영위하는 건 생존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즐길 수 있는 무엇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누구에게나, 삶을 '누릴' 권리가 보장돼야 합니다. 우리가 정부라는 걸 만들어 놓은 건 그런 까닭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늘 한국이 부럽다는 말로 글을 맺게 되는군요.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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