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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상처 위에 바르는 연고같은 밴드, DUSKY80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6/01 [23:37]

영혼의 상처 위에 바르는 연고같은 밴드, DUSKY80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0/06/01 [23:37]

또 다시 새벽을 열었습니다. 일요일, 어제는 너무너무 지쳐 있었던 모양입니다. 일을 다 마치고 우체국으로 복귀하는데 길이 꽉 막혀 있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평화적 시위가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일어난 거지요. 그런데 이 평화적 시위가 폭동으로 번지고 나서 주 방위군까지 소집되는 사태가 일어났고, 시애틀 시내에서도 차량이 불타고 많은 상점들이 약탈당하고, 길은 막혔습니다. 사방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경찰관이 내가 대학생 때 봤던 그 '사과탄'을 군중 사이로 굴려 넣는 장면까지 보고 저는 갑자기 숨이 턱 막히며 울먹거림이 올라왔습니다.

슬픔과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으로서의 시위가 저렇게 약탈과 폭력이 동반되면 그 진정성을 호소하기 어렵습니다. 왜 이들의 시위란 건 꼭 이런 식의 폭력성으로 나타나는가, 이곳에서 몇 번의 시위를 봤습니다. 1999년 WTO에 반대하는 시위가 시애틀 다운타운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세계를 놀래켰을 때, 저는 당시 미국의 소리 VOA 방송의 기자 자격으로 시위 현장을 취재했었습니다. 그 시위도 결국 폭력과 폭력의 충돌로만 소개했던 당시의 미디어들은 어제 시위도 그 시위의 본질보다는 그 파괴성을 집중해 보도했습니다.

미국의 시위대 안엔 꼭 사회에 가진 불만을 이런 식으로 표출하는 이들이 이곳엔 많았습니다. 뭘까요, 이건 그들이 가졌던 사회적, 그리고 실제적 박탈감의 표현일까요. 우리의 시위에선 별로 볼 수 없는 장면이어서 너무나 이질적이었습니다. 평화적 시위를 통해 정권교체까지 이뤄낸 우리의 선진적인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런 장면을 눈으로 봐서였는지, 아니면 1주일 내내 하루 열 시간씩 일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무척 피곤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테이크아웃만 되는 동네 식당에서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음식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와선 마시다 남은 이태리 수퍼투스칸 와인을 한 잔 따라 마셨고, 아내와 오늘 길거리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이야기하며 두 잔쯤 마시던 빌라 푸치니의 토스카나가 내 혈액을 따라 한 바퀴 돌았다는 느낌이 들 즈음,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한 음악 밴드에 꽂혀 있습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소개됐던 프렌치 집시 음악 밴드 'DUSKY80' 입니다.

사실 이곳에 살면서 영혼에 상처 입을 일들은 별로 없습니다. 집과 우체국, 그리고 내가 맡은 구역의 거리,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리고 어쩌다 부모님 댁에 가는, 늘 똑같은 일상 속에서 제 영혼이 그리 상처받을 일이 없는데다, 혹여라도 상처라도 받게 된다면, 상흔을 남긴 주체는 한국의 정치 돌아가는 상황이라던지 혹은 멀리 있는 내게 정치적 입장 차이를 이유로, 그들의 키보드를 칼 삼아 내 몸도 아닌 내 블로그나 내가 남긴 글에 휘두른 그들이 가진 잔인함과 무개념 등이겠지만, 이미 물리적 거리가 떨어진 만큼이나 저는 그 사람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게다가 아고라 시절부터 악플에 단련된 멘탈은 어지간한 악플은 웃어 넘기고 우리 부모님이나 아이들 안부를 묻는 경우엔 그냥 차단 및 신고로 대응하는 데 익숙해 있는지라.

그래도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상처받습니다. 상처엔 항생제 발라주고 연고 붙이고 하면 되지만, 마음의 상처를 다루는 데 가장 좋은 약은 사랑하는 사람의 대화,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음악이지요. 어떤 음악은 그 상처를 더 크게 후벼 파지만, 어떤 음악은 살포시 상처에 바르는 연고처럼 다가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소개된 더스키80에서 찾은 거지요.

다행히 블로그질 하면서 파워블로거가 될 때마다 네이버에서 페이포인트를 줬었는데, 그걸로 지금까지 꽤 많은 BGM과 mp3들을 구매했고, 이번에 그들의 음악을 찾아 내 컴퓨터와 전화기에 담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저는 평론가 따위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의 프렌치 집시 뮤직이 어떤 식으로 어쩌구 저쩌구 할 능력도 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코디언과 바이올린, 그리고 기타가 어우러진 가운데 섞인 편안한 보컬이 제겐 가장 맞는 '마음의 약제' 조합 같다는 거지요.

그런데 한 사람의 음악 소비자로서, 이들의 음악이 내 영혼의 상처받은 부분에 도포되는 연고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그 말은 여러분도 이 뮤지션들의 음악을 구매해 주십사 하는 거지요.

과거 내가 어렸을 때는 음반을 그냥 샀으면 됐었을텐데, 지금은 공연에 직접 가거나, 혹은 EP나 음악파일을 구입하는 것이 뮤지션들에게 수익이 갈 수 있는 방법이겠지요. 문제는 이들 공연을 보러가고 싶어도, 내 '한국적 정서'가 스물 한 살에서 멈췄던 그 시간부터 시애틀에 30년째 거주하는 저에겐 쉽지 않을 것이며,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들 지금같은 코로나 시대에 그런 공연은 거의 불가능해진 것 때문에, 저는 더스키80이란 밴드를 소개하고 그들의 곡을 다 구입해 기꺼이 결제버튼을 누르고, 그리고 여러분께 소개해 더 많은 분들이 듣고 구입하게 만드는 것으로 제 감사함을 이들에게 표시할까 합니다. 덧붙여, 이 분들의 유튜브를 구독하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도 힘이 되겠지요, 요즘 세상엔. 유튜브 링크는 글 말미에 붙여 놓았습니다.

아마 어제 그 시위, 그리고 그 전의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런 것들이 저를 참 우울하게 만들었었는데, 오늘 아침, 커피와 함께 하는 이들의 음악이 저를 많이 어루만져줍니다. 아마 감성이란 건 나이와 상관없이 커피 한 잔과, 혹은 와인 한 잔과, 아니면 피곤해 누운 잠자리의 머리맡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고, 그 손길이 바로 음악이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제겐 그들의 음악이 참 코드에 맞습니다. 이런 밴드를 찾아 소개시켜주는 김어준이란 사람도 대단하고.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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