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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쌀국수 식당가서 점심 잘 먹고 나서 드는 생각들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6/13 [23:03]

월남 쌀국수 식당가서 점심 잘 먹고 나서 드는 생각들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0/06/13 [23:03]



어제 어머니와 월남 쌀국수 집에 가서 점심을 먹은 후, 몇 시간 안 돼 시애틀 동쪽 이사쿠아란 곳에서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동서 형님의 식당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형님도 꽤 오랫동안 테이크아웃 장사만 하시다가 몇 달만에 손님들을 안에 받고 있었는데, 아무튼 뭐 심부름 좀 해 드리고 나서 연어회와 차가운 사케, 그리고 우동 한 그릇을 먹고선 집에 왔습니다.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게 정상적인 삶이었는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비정상적인 걸 정상으로 알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우리가 꽤 오랫동안 살아왔던 방식대로의 삶은 조금씩 우리의 발밑을 파고 있었는데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조차도 비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20세기 초중반의 미국을 자세히 그려낸 화가 노먼 락웰의 사실주의적이면서도 코믹한 그림들에 묘사된 미국인들은 거의 모두 비쩍 말라 있습니다. 우리가 산업 혁명 후 몇 세기동안 지구를 말렸고 자원을 고갈시키며 살아왔던 방식들, 이 코로나 판데믹은 그 방식을 우리에게 다시 돌아보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도 동란 이후 60년대 산업화시대를 거쳐 70년대와 80년대 고도성장기를 지나며 풍족하게 먹기 시작한 겁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렇게 먹을 걱정 안 하고 지낸 건 겨우 반 세기란 거지요. 그러나 그것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방식 하에서 가능했을 겁니다.

인간은 가축들을 더 빨리, 많이 키워내고 소비하기 위해 그들을 너무나 학대적인 방식으로 가둬 길렀고, 그런 환경에서 가축들이 병에 걸려 죽어가자 항생제를 대량 투여했고, 그러다가 결국 인수공통전염병인 신종플루(처음엔 스와인 플루, 즉 돼지독감이라고 불렀지요) 등 온갖 질병들이 창궐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것이 지역 단위로 확산하다가 끝났지만, 결국 인간이 세계를 돌아다니는 길이만큼이나 넓게 퍼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밥 잘 먹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하는 것들이 그렇지만, 애초에 이 풍부함들은 리스크가 분명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영양학적으로 분명 우리는 한 세기 전의 인류가 누리지 못했던 만큼의 풍부함을 누리고 있지만, 그것은 지구를 거의 파멸에 가깝도록 착취한 후에 이뤄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화석연료에 기대어 성장해 왔던 이 문명의 종말이 가까워질 때 즈음 이렇게 세계에 널리 퍼진 이 바이러스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생존 방식을 재고하라고 요구하는 것이지요.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만족스럽게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저는 이 대량 섭생의 시대의 초입에 태어나 평생을 잘 먹고 잘 살아 왔습니다. 우리 세대가 겪은 이 풍요는 경쟁과 착취라는 씨줄과 날줄이 되어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자본주의라는 방직기 위에서 직조되다가 그만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돌멩이 하나가 그 방직기에 끼어 버리자 기계 전체가 옴싹달싹 못하게 되는 그런 상태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곳들에선 식당 같은 경우 정원의 25%만 받아야 하고, 당연히 손님들 간의 거리를 충분히 떼어 놓아야 합니다. 과거엔 생각도 못했던 제약들 때문에 식당들은 문을 열고 반갑게 손님을 맞으면서도 울상을 짓는 형편입니다. 아무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새로운 사회를 사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도 현실입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지도자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 개인 개인들에게 모두 필요한 때인 듯 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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