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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 버터의 교훈과 트럼프 낙선을 위한 기원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9/11 [01:01]

아이리시 버터의 교훈과 트럼프 낙선을 위한 기원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0/09/11 [01:01]



다시 맞은 새벽, 내 하루가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어젯밤 충전 해 놓아야 할 것들을 제대로 플러그에 꽂아 놓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황급히 충전들을 시작합니다. 출근 전까진 충분히 충전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 토스터에 빵을 넣고 굽습니다. 그리고 냉장고를 뒤져 버터를 찾습니다.

아이리시 버터가 나옵니다. 아내는 꼭 케리골드 버터가 맛있다며 이 아일랜드 산 버터를 쟁여 놓습니다. 이 동네 산 버터들도 있는데, 저렇게 아일랜드 산 버터를 고집하는 건, 나름 이 버터가 맛있기 때문이겠지요. 하긴, 저도 요리할 때 쓰는 버터로는 이 동네에서 나오는 데어리골드를 쓰는 걸 선호하지만, 토스트 한 빵에 발라먹는 버터라면 케리골드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버터 맛이 거기서 거기일 것 같은데도 이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고 말하면 재수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다른 건 다른 겁니다. 미국 생활 오래 했다고 해서 버터 맛이 상표별로 다르다는 걸 느낀다고 하면 과장이라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오래 먹다 보면 그 맛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녹을 때에 조금 다른 면도 있고.

웃기는 건, 아내가 좋아하는 이 버터가 2018년 전까지는 미국 중부의 위스컨신 주에서는 그 유통이 불법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위스컨신 주는 낙농업과 인삼 재배로 유명한 주입니다. 애팔래치아 동부에서도 인삼은 오래 전부터 상업적으로 길러졌고 심지어는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도 영국과 싸울 당시 인삼을 팔아 군자금을 마련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인삼 수출은 꽤 번성한 산업이었는데, 18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삼을 파운드 당 25센트 원가를 주고 재배자에게 구입해 중국에 5달러에 팔아넘겼고 이 인삼은 '화기삼'으로 불리웠지요.

아무튼 그 이야기는 따로 길게 해도 될 정도로 재밌으니 오늘은 맛뵈기로 이만큼만 해 놓고 넘어가고, 다시 버터 이야기로 돌아가려 합니다. 2017년, 일단의 위스컨신 주민들이 주 법원에 제소를 합니다. 이들은 평소 자기들이 선호하는 아이리시 버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케리골드 버터를 사먹기 위해 주 경계를 넘어가 구입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위스컨신 주에서 수입 버터의 유통이 불법이라고 규정되어 있는 주 법이 비합리적이며 자기들에게는 원하는 버터를 먹을 권리가 있다며 제소합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이듬해인 2018년, 수입 버터는 처음으로 위스컨신 주에서 판매가 가능해지게 됐습니다. 이 소송에도 비용이 들어갔을 것이고, 저는 이것이 케리골드 버터의 가장 큰 판매처라고도 할 수 있는 코스트코와 케리골드 버터 회사가 이 뒤에 있었을 거라는 데 오백원 걸 의향이 있긴 합니다만.

아무튼 위스컨신 사람들이 자기들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 소송까지 제기해 가며 사 먹을 권리를 쟁취한 이 버터를 저는 참 쉽게 빵에 발라 먹고 앉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재밌는 건 낙농업에 관한 법령이 생긴 이래 바뀌지 않았던 점입니다. 그 법 때문에 위스컨신 주에선 꽤 오랫동안 케리골드 버터가 유통되지 못했다는 겁니다. 아무튼, 이 주는 여러가지 농작물 외에도, 밀러, 팹스트 등의 '미국 부가물 라거 맥주'들로도 유명하고... 정치적으로는 조셉 매카시라는 또라이 상원의원을 배출, 미국 뿐 아니라 세계에 해악을 끼친 적도 있습니다. -_-;

미국엔 이런 불합리한 법들이 꽤 존재했고,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법들이 모두 법에 적힌 문구 그대로 해석되어 처벌받는 건 아니지만. 워싱턴주의 경우 주 경계를 넘어오는 포도주는 무조건 불법으로 배척당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법이 1978년인가 철폐되고 나서야 워싱턴 주에선 캘리포니아 산 와인이 유통되는 것이 허용됐고, 오히려 그것이 워싱턴주 와인의 발전을 가져왔지요.

그 때는 그런 것들이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될 여지란 것이 있었습니다. 미국이 벌인 희대의 뻘짓 중 '금주령'이란 것이 있지요. 10년간의 기간동안 사람들이 술을 안 마셨을 리 없고, 그래서 마피아들이 밀주 사업을 통해 거대하게 성장했지요. 이 실패한 실험은 결국 유명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금주령 폐지를 공약하고 당선이 되고, 이후 미국에서 유일한 4선 대통령이 되는 기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실험'이 통하지 않는 때가 됐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인류의 공멸, 더 나아가 지구상 생물의 공멸을 막기 위해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또라이 트럼프가 앞으로도 4년간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는 건 미국을 위해서뿐 아니라 세계 모두를 위해서도, '매우 매우 안 좋은 일' 이 될 겁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처음 한 짓이 기후 협약을 탈퇴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재임 마지막 해인 올해,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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