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했던 대로 ‘윤-한 갈등’ 제2라운드가 펼쳐질 모양이다. 한동훈이 비대위원으로 추천한 김경율이 김건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교하자 이에 격분한 용와대가 한동훈 사퇴 카드를 꺼냈으나, 한동훈이 하루만에 서천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 윤석열에게 90도 폴더절을 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 후 한동훈은 김건희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못했다.
이종섭, 황상무가 윤-한 갈등 2라운드 점화하게 해
그런데 이번에는 이종섭에 이어 대통령실 시민사회 수석인 황상무가 일을 저질렀다. 황상무는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MBC는 들어라” 하며 36년 전에 벌어진 회칼 사건을 거론했다. 당시 군사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썼던 오홍근 기자가 정보사 군인들에 의해 회칼로 허벅지를 찔린 사건이 벌어졌는데, 황상무가 하필 그 사건을 거론한 것이다. 정부를 비판하면 누구든 다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종섭의 호주 출국, 정우택의 동봉투 사건, 도태우의 막말과 5.18 비하, 장예찬의 막말 퍼레이드로 공천을 취소해 당 분위기가 어수선했는데, 이번에는 엉뚱하게 대통령실 시민사회 수석이 초대형 사건을 저지른 것이다. 이에 수도권 및 격전지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지자 국힘당 내에서도 안철수, 나경원, 조정훈, 김은혜 등이 비판에 나섰다. 평소엔 말 한 마디 못 하더니 선거가 다가오자 겨우 입을 벌린 것이다.
한동훈의 돌려서 말하기
이에 침묵하던 한동훈도 수도권 출마자들이 들고 일어날 것 같자 하릴 없이 “이종섭 대사는 즉각 귀국하고 황상무 수석은 스스로 거취를 정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마음대로 귀국하고 마음대로 그만 둘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윤석열의 명령이 있어야 가능하다.
한동훈도 이걸 잘 알고 있을 텐데 윤석열에게 다그치지 못하고 책임을 이종섭과 황상무에게 돌리는 비겁함을 보였다. 이럴 경우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이종섭을 귀국하게 해서 수사를 받게 하고, 황상무 수석을 경질하십시오.” 하고 말해야 정상이다. 한동훈은 돌려 말하기의 명수다. 사직과 사직구장은 한 편의 코미디다.
또 약속대련?
이에 대통령실은 “사퇴는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바야흐로 ‘윤-한 갈등’ 제 2라운드가 점화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미동도 하지 않자 한동훈은 1차전 트라우마 때문인지 정례적으로 진행하던 '아침 브리핑'을 취소한 것은 물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도 이종섭 관련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야당에선 '제2차 윤-한 약속대련'이라는 조롱이 나왔다.
한동훈은 1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종섭 대사의 거취에 관련해 "공수처가 즉각 소환하고,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 이 문제는 총선을 앞두고 정쟁을 해서 국민들께 피로감을 드릴 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책임을 공수처에 돌리는 꼴이 정말 한심하다.
그러나 그뿐 용와대가 미동도 하지 않자 한동훈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는 모양새다. 괜히 더 공격했다가 또 사퇴 카드가 나오면 자신의 정치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속으론 ‘내가 어쩌다 이런 정권을 만나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며 부글부글 할 것이다.
국힘당이 탈환하려던 3대 벨트 일제히 고전
한동훈은 14일까지만 해도 이종섭의 출국이 도피라는 야당의 공격에 대해 "이미 아그레망(외교사절에 대한 상대국의 사전 동의)을 받고 나가 있는 것 아닌가. 본인이 수사를 거부하거나 그런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필요하면 언제든 들어와 조사받지 않을까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며칠 사이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국힘당이 탈환을 목표로 하고 있는 3대 벨트, 즉 한강벨트, 낙동강 벨트, 수원 벨트에서 국힘당 후보들이 대부분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태도를 바꾸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용와대는 18일 "공수처가 조사 준비가 되지 않아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한동훈의 말을 묵살해버린 것이다. 그후 한동훈도 입을 닫았다.
국힘당 내부도 부글부글
이종섭의 도피성 출국으로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격전지에서 국힘당 후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자 이번에는 후보들이 직접 나섰다. 서울 동작구을 후보인 나경원은 1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본인이 들어와서 조사받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실의 잘못이 없었다고 해도 당연히 국민들이 느끼기에는 '도피성 대사 임명'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경원은 민주당 류삼영 후보와 겨룬다.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지냈던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 성남시 분당구을 후보는 17일 페이스북에서 "이종섭 호주 대사는 즉시 귀국해 공수처 조사에 임하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는데, 대사는 자기 마음대로 귀국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윤석열이 불러야 온다. 따라서 김은혜는 이종섭을 경질하라고 말했어야 옳다. 한편 김은혜는 민주당 김병욱과 겨룬다.
이어 안철수, 조정훈 등이 같은 말을 하자 국힘당 지도부도 난감한 처지에 몰렸다. 더구나 안철수와 나경원은 공동 선대본부장이라 국힘당 지도부도 무시만 할 수 없다. 거기에다 수도권 출마자들이 사방에서 아우성이니 대통령실도 딜레마 상황일 것이다. 한 마디 꺼내고 쏙 들어가 버린 한동훈의 꼴을 보자니 8월 16일에 이불 속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 같다. 이래저래 수구들은 지금 자멸하고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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